지금은 아이도 낳고 아줌마가 다 되었지만 여전히 아내는 조용한 편 말이 없다. 여태 살아오면서도 항상 웃으며 \"네\"라고만 하였지, \"아니요\"라는 말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나 불만 사항 있으면 가슴에 묻어두지 말고 털어놓아라 하지만 그냥 빙긋이 웃기만 한다. 연애 시절에도 내가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애정표현을 한 경우가 아내가 그렇게 한 경우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아내와 나는 모두 시골에서 살았는데 아내 집과 나의 집은 바로 옆 동네이고 채 300미터도 안 떨어진 곳이라 동네 오빠나 다름없었다. 나는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 와서 시립도서관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고, 아내는 학교를 졸업하고 과외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래서 연애기간 2년 반 동안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만나 뻔질나게 놀러 다녔다. 동네 다리 어귀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내가 보이면 자전거에 태워 도서관에는 가지 않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싸준 도시락을 공원에서 둘이서 나눠 먹었다.
하루는 아침 일찍 만나 멀리 경주 토함산에 놀러가기로 하였다. 아마 겨울의 한가운데쯤이었는데 토함산은 온통 눈으로 쌓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만드는 하얀색의 형상은 경외롭기까지 하였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걸어가면서 서로 넘어지고 눈싸움도 하면서 올라갔던 기억이 낡은 필림 속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첫 사랑이면서도 마지막 사랑이었기에 서로 다른 사랑의 추억은 없다. 그래서 어쩌면 과거의 또 다른 사랑을 회상할 추억이 없어 아쉬울 때도 있다.
그날 여섯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토함산에서 부산으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는 모두 피곤하여 고개를 젖히고 잠들어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손장난과 재미난 얘기로 여독을 즐기고 있었다. 창밖에는 키 큰 갈꽃들이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가을 길옆의 코스모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차창 밖이 어둑해지면서 나도 졸음이 몰려오는가 했는데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저어, 10원짜리 동전 10개 있어요?\"
그래서 내가 \"왜 그러는 데요?\" 하고 되물었다.
\"동전이 필요한데 그 10원짜리 하나에 1000원으로 바꿔 드릴게요\"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저 밑바닥에서 뭔가 뭉클하며 따스함이 밀려왔다.
아마도 아내는 데이트비용을 내가 부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항상 웃기만 하는 이 말없는 아가씨가 데이트비용을 자기도 부담하고 싶었는데 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해 낸 생각이 10원짜리 동전인 모양이었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배려하려는 마음의 표시였나 보다. 그 당시 나는 어떡해서든 그녀를 내 아내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 상태였고 아내는 날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었으므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데이트비용만큼은 내가 전적으로 먼저 지불하였던 것이다.
그때 버스 안에서 꽉 잡은 손을 지금도 잡고 있다. 나이 차이가 나지만 성품이 뛰어 나고 인자한 어머니 같은 아내. 어떤 땐 출근하는 아내의 등을 볼 때가 있다.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참 할 말도 많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