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히 밀려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맞기고 누워있노라면 지그시 눈이 감기고 나른한 꿈속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지금은 주변여건을 만들어주어도 꿈한번 제대로 꾸지 못하고 길고 긴 밤을 정처없이 헤매다가 새벽에 눈을 뜰때가 많습니다.
어릴적엔 참 꿈도 많이 꾸었습니다. 그러고보면 꿈이란것이 순수함과 무슨 비례관계가 성립되는 듯 합니다.
어린적 기억속에 꿈이라는 커다란 집에서는 무서운 아저씨, 괴물, 짐승, 귀신들을 자주 만나곤했습니다.
그 형상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고 신기했으며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별난 모습이었습니다.
때로는 뿔달리고 입가에 흉직한 송곳니가 달린 괴물의 모습이기도 했고
때로는 하얀 소복에 머리푸른 귀신의 형상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킹콩이나 죠스와 같은 무서운 동물일때도 있었고
때로는 해리포터처럼 하늘을 날으는 마법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편한 맘으로 되새겨보면 그때 그 시절 만났던 귀신들은 모두 귀엽고 앙증맞고 청순하며 순진한 귀신들이었던것 같습니다. 단지 어린마음에 지레 겁먹고 훌쩍훌쩍 울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어린시절 귀신과 괴물이 출몰하는 악몽을 꾸고 난 후 눈을 뜨면 새까만 세상이 나의 조그만 눈으로 파고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꿈속에서 만났던 무서운 귀신과 괴물과 마법사들보다 침침한 작은 방의 어둠이 더 무서워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이불 속 깊숙히 넣곤 했습니다. 어둠이 어흥하고 달려오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졌기에 조용히 일어나 형광등을 키는 것조차 겁이 났습니다. 고요한 정적이 이불의 맨 끝자락에서부터 천천히 스물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꿈속에서 헤매다 허기진 아이처럼 식은땀을 닦고 돌아누우면 또다시 꿈속으로 헤엄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땐 조그만 두 눈을 꼬옥 감고 징끄리는듯한 표정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있곤했습니다. 꿈속에서 스쳐지다갔던 무시무시한 괴물과 귀신들이 난잡한 잔치를 끝내고 조용히 사라질때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생각만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꿈을 꾸며 잘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울타리를 넘어가는 보들보들한 털복숭이 양떼들을 세어보기라든가, 푸르른 바다위에서 철퍼덕 철퍼덕 뛰어노니는 돌고래떼과 노니는 상상을 한다던가, 목숨걸고 친구들로부터 딴 딱지와 왕구슬로 배부른 보물상자를 떠올리기도하고, 크리스마스 캐롤같은 상쾌하고 들뜬 기분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뽀뽀뽀 친구들에 나오는 뽀미누나와 뽀식이 형을 애타게 찾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면 다행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생각을 차근차근 줄지어 놓듯 자기 체면을 걸어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을때가 더 많았으니까요.
털복숭이 양떼들이 무서운 늑대에게 습격당하고, 푸른바다에서 뛰어노는 돌고래떼들이 상어한테 잡혀 검붉은 바다가 혀를 내밀고, 아끼고 아끼는 보물상자에 구멍이나서 조금씩 조금씩 보물이 흘러나갈 것을 바라보기만 해야하고, 악몽의 크리스마스, 괴물에게 잡혀가는 뽀미누나와 뽀식이 형 등등등.
괴물과 귀신으로 뒤범벅이 된 어린시절 꿈속의 악몽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빨리 새벽이 와서 온세상이 환하게 밝아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밤을 꼬박 새우게 됩니다. 단지 새벽이 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단지 태양이 떠오르리기를 바라면서 조그만 두 눈을 꼬옥 감고 몸을 잔뜩 웅크린채 밤을 지샜었습니다.
훌쩍 커버린 지금.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아주 가끔씩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악몽의 주체가 괴물이나 귀신이나 무서운 동물이 아닙니다.
텔레비젼과 영화의 홍수속에 예전에 보았던 공포영화의 주인공이나 이야기들속으로 빨려들어가곤 합니다.
지금의 저는, 악몽이다싶으면 자의적으로 눈을 뜹니다. 무서움에 벌벌 떨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는 본능같은 것이겠지요. 악몽이라는 것이 어릴때나 지금이나 모두 똑같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에게 당하는 고통스런 악몽은 아직 꿔 본적이 없습니다.
배신, 모욕, 굴욕, 상처, 아픔, 괴로움, 미움, 고통, 따돌림, 무관심 등등등.
세상밖에서 너무나도 많은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은 인간들에게 부지불식간 저질러지는 이러한 행위가 꿈속에도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견딜 수 없는 악몽일 것입니다. 이러한 악몽에 비하면 어릴적 견딜 수 없는 악몽은 한결 따뜻한 꿈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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