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고 있는 울산교육연수원은 울기등대공원에 있다. 연수원의 문집을 창간하는데 연수원 정문 앞에서 40년이 넘도록 좌판행상을 하시는 할머니가 출퇴근 길마다 눈에 띄었다.
어느 날 문집 편집을 맡고 있는 이성룡 연구사는 사진을 담당하고 나는 할머니를 취재하였다.
안타까울 정도로 어렵게 생활하시는 할머니의 삶은 암울했던 시대의 우리 나라 모든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이었다.
할머니의 삶과 애환이 담긴 울기등대공원을 찾는 분들께 세상사는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다.
김둘이 할머니를 보세요. 모두들 할머니께 힘내시도록 격려해주시고 열심히 살아가세요.
**** 울기등대공원의 파수꾼 김둘이 할머니 ****
푸른 솔의 향내음이 동해의 굽이치는 파도바람에 날리는 울기등대 입구에는 7순을 넘긴 할머니가 어제도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울기등대를 찾는 행락객을 맞이하고 있다.
\"군밤이나 고동 사이소\" 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마치 이곳에서 40년이 넘도록 똑같은 먹거리를 팔아온 할머니의 애환이 담긴 목소리로 들려온다.
김둘이 할머니(75세)는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울기공원을 지켜온 파수꾼이자 울기공원의 산증인으로 자긍심 또한 대단하신 분이다. 생계수단으로 시작한 장사는 이제 한 평생을 이곳 울기공원에서 보냈다.
바닷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굵게 패인 주름은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족관계를 묻자 할머니의 눈가는 금새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청초한 눈물이 굴렀다. 장애인인 막내아들과 손자 2명을 며느리도 없이 혼자서 보살피고 생계까지 맡아야 하는 할머니의 삶은 암울했던 시대의 한국 어머니상을 연상하게 한다. 할머니의 삶은 울기공원의 역사적 애환과 어쩌면 운명을 함께 하신 것 같았다.
\"이제는 세상이 변하여 이런 것은 사먹지 않아요. 배운 것이라곤 이 짓 밖에 없고 아들과 손자를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요\"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시며 가슴에 쌓인 한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1906년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일본이 군사상 요충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세운 울기등대는 지금의 철망이 쳐져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지금의 울울 창창 푸른 솔인 해송은 일본사람에 의해서 심어졌고 광복이후에는 등대 관리소에서 소나무 낙엽을 모아 일반인에게 판매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당시의 땔감으로는 소나무 낙엽은 고급이 아니었던가?
광복이후에는 항만청에서 관리해왔고 근래에 와서 울산시가 항만청으로부터 공원으로 지정받고 지금의 울기공원이 되었다.
울기공원에는 어둠의 망망대해를 밝혀주는 등대가 있고 유적으로는 \"댕바위\"가 있는데, 신라 30대 문무대왕의 수중능이 있다는 설이 전해오는 대왕암을 말한다. 할머니는 울기공원의 총각바위와 처녀바위에 얽힌 사연과 용굴에서 용이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신명나게 해주셨다.
울기공원의 환경보전을 위하여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울기공원은요. 우리나라에서도 참으로 좋은 관광지라요. 그런데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러 버리기 때문에 걱정입니더. 그라고 관리사무소 입구에 있는 수돗물도 좀 틀어주면 행락객들이 손도 씻을 수 있을텐데 우짜그런지 맨날 물이 잠겨서 답답네요, 아무튼 모두다 깨끗이 해야 사람들이 많이 찾지요\"
울기공원 아래 몽돌해변에는 여기저기에 쓰레기들이 너절하다. 연수원에서 학생들이 자연보호 차원에서 청소는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할머니의 말처럼 환경보전을 위하여 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야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의 좌판을 둘러보았다. \"요즘은 연탄 값도 못 벌겠어요. 그래도 장사를 안하면 네 식구 목구멍에 거미줄 치니까 이렇게 쭈그리고 있어요\" 할머니는 푸념을 늘어놓지만 아직도 해맑은 눈망울은 천성이 고운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머니의 좌판은 연탄 화덕이 4개가 있는데 한 개는 고구마와 밤을 굽고 다른 한 개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홍합(담치)이 올려져 있었다. 또 다른 화덕에는 튀킴어묵이 담겨있었으며 마지막 화덕에는 간장에 콩나물이 조려지고 있었다.
조림콩나물은 아들과 손자들의 반찬이라고 하는데 다른 반찬보다 값이 싸서 지겹도록 먹는다고 한다.
이 겨울에도 수건을 목에 감고 굵어진 손마디로 군고구마를 뒤집고 계시는 할머니의 삶이 조금이라도 윤택해질 수 있도록 행락객들이 많이 이용해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비가 오면 방까지 빗물이 들어오는 나지막하고 침침한 오막살이 방에 누워 있는 장애인 아들과 어머니 없이 외롭게 공부하는 두 손자를 위하여 일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이곳 울기등대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7순을 넘긴 할머니의 소박한 모습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보였다.
하늘을 우러러 본다. 아주 푸르고 드높았다.
할머니의 애환을 내내 지켜본 울기등대의 푸른 솔이 할머니의 굳센 의지력처럼 하늘을 향하여 곧게 서있다.
\"할머니! 건강하시고요, 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