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달째 강남역 사거리부터 양재에 이르기까지 온통 화장터 반대 플랭카드가 널려있다.
운전중에 그럭저럭 지나치곤 했지만 이젠 좀 짜증이 난다.
서초구 00회, 00부녀회, 00장애인 연합회, 바르게 살기운동 서초지회, 새천년 국민운동 00회...
어쩌고 저쩌고 잡다한 단체들의 한결같은 구호.
"화장터 건립 결사반대"
장례문화가 화장으로 점차 바뀌고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70%라고 한다.
그 조사결과가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친척들도 화장을 했고
나 역시 화장을 원하고 있고 부모님도 그걸 원하신다.
"니네 땅엔 되고 내 땅엔 안된다..."
그럼 어디다가 지으라는건지...
화장터나 장례식장 설계는 일반 건축물 설계와는 다르게 더 신중하게 한다.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 향후 지역 발전과 맛물려 인간생활의 깊숙한 성찰과 고뇌의 과정을 통해 지을 수 밖에 없다.(제 직업은 건축설계입니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배제하고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밝은 공간으로 설계풍토가 바뀌는 것도 이 같은 의식의 반영때문이다.
예전 분당 살적에 인근에 장례식장이 들어선다고 부녀회에서 반대서명 운동을 벌인적이 있었다.
자녀교육 환경이 어쩌고 하며 우리집에 와서도 당연히 찍어야 한다는듯 도장부터 달라는걸 거절해 버린적이 있다.
"왜?" 를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일단 찍어라"라는 반응에 나는 냉소로 답했다.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었지만 아닌건 아닌것이다.
그런 지역 이기주의는 동조하고 싶지 않다는게 우리가족의 생각이었다.
화장터 지어진다고 집주변이 페허로 변하나?
집값 떨어져서 거리로 나서기라도 하나?
생활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끔찍한 환경 저해인가?
멀쩡하게 학교다니는 애들이 전부 우울증이라도 걸리고 장의사라도 되나?
도데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드는 사람들을 보면 납득할 수가 없다.
자기자식 중한 줄은 알고 남의 자식은 중한줄 모르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요즘사회에 만연하는 왕따, 개인주의들은 모두 그건 마음들,
그런 의식을 가진 어른들, 부모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난 생각한다.
스스로 자초한 결과니 남 탓할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중에도 죽으면 화장터로 갈 사람들이 분명 있을터인데
장례문화를 개선한다며 화장을 장려하던 지역의원까지 개거품을 물고 반대에 앞장선다니
정말 웃기는 족속들이 아닐수 없다.
말로는 별의별 좋은생각들은 잘도 말하면서 "한번 나서봐"하면 백가지 핑개를 대며 얼버무리는 닫힌 마음들... 이기주의들.
그래가지고 어디 더불어 산다고 할 수 있는지...
그러고도 언제나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 그러나 먼저 나서기는 껄끄러운 사람들..
그 모습들이 싫다. 정말 힘빠지게 만든다.
차라리 그런 말 말고 조용히 사랑하지 집앞쓰레기 하나나도 줍지 자기나 잘하지...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 동조하지 않으면 무조건 이기적이라고 몰아붙인다
"왜?"
청소활동 사진 크게 붙여놓고 "우리는 이런 좋은일만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 입니다"
아름다운건 뭐지? 그래야만 아름답나?
얼마전 신문기사에 새로 이사올 사람을 위해 그곳에 살던 집주인이 지역정보부터 집안 구석구석의 잘잘한 문제들을
A4용지 다섯장에 빼곡히 정리해놓았다가 이사온 사람에게 주어 화제가 된적이 있다.
복받을 마음이다. 더불어 사는게 무엇인지 잘 아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신문 기사를 읽으니 서초구 어느 아파트에서는 화장터 반대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2만원 벌금을 내야 한단다.
화장장 건립의 유무를 잠시 떠나서 벌금2만원, 아니 그 걷는다는것에 확 열이 받는다. 그리고 힘이 빠진다.
반대의사를 표명하는데 2만원을 내라는 말인가. 그 돈은 어디로 가는가,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결정한 일인가 그걸 따르는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기사에 실린 그 마을 사람들, 그걸 동조하고 따르는 사람들.. 정말 우울한 사람들이다.
사람들.. 희생정신 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아니 생각자체의 깊이가 너무도 경박스럽다.
확 떼다가 달나라에 보내주고 싶다.
"그래 니들끼리 잘 살아라"하고...
2만원을 걷는다.. 풋 발상 자체가 가볍고 용렬스럽기 그지없다.
나 라면 그런식의 동조는 생각하기 힘들다.
서울이, 서초구, 강남구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후~~
차라리 우리집 옆에 다 지어라.
적어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테니..
그렇게 그 지역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거 짓는대신 그 시설들을 계기로
더 나은 환경개선을 위해 요구사항을 제시하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익산시와 이리시가 통합되게 됬을 때 이리시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의식처럼 말이다.
후~... 나부터 잘하자.
진짜 웃기고 있어.
-청촌-
------------------------------------------------------------------
기사내용입니다.
화장터'반대' 안하면 벌금2만원
우리 집에 처음 놀러온 친구들은 집에 전화한다면서 02를 누른다. 앞뒤로 산이 있는 좀 한적한 동네가 서울처럼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우리 동네는 그런 동네이다. 아파트가 죽 이어져 있고, 시원한 8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산이다. 산이래봤자 동네 야산 수준이지만, 요즘에 안 건데, 이나마 강남구에선 유일한 산이라고 한다. 우리 동네는, 친구들은 절대 믿지 않지만, 강남구이다.
동네에 '강남구에 하나뿐인 대모산 등산로에 화장터가 웬말이냐'는 플랭카드가 붙었다. 그러나, 거의 밖에서 사는 나는 간만에 일찍 들어와 엄마랑 수다를 떨다 뒤늦게 이 얘기를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찌라시(전단)를 챙겨든 엄마는 조금 신이 났다. 엄마가 대변한, 주민들의 반대 입장들은 대충 이러하다.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화장터 연기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고, 조객들로 인해 교통이 복잡해질 것이다 등. 환경오염이나 행정구조에 대해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지대했는지 조목조목 떠들어대면서, 묘하게도 환경정화시설 건립이나 주민자치구조 개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젠장.
엄마에게 투덜투덜 '그러니까 그게 바로 집단이기주의'라고 얘기하던 끝에, 밑천이 바닥난 엄마는 나름대로 마지막 방어에 들어갔다. '그래두... 안 가면, 벌금 내야 되는데...'
엄마의 말에 따르면, 이기적으로 자기만 편하게 안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벌금을 걷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내가 반대 안한다는 데, 의견이 다르다는 데 드는 돈이 2만원이란 말인가? 그걸 걷는 것이 합법하냐, 어떤 자치회 단위에서 걷는 거냐, 그걸 가지고 어디다 쓰냐. 엄마에게 꼬치꼬치 물어봤지만,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 자신이 전혀 몰랐던 것이다. 경악하는 딸을 보며, 엄마는 서둘러 아직은 확정된 건 아니라고 그저 그런 얘기가 있었노라고 했지만, 황당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 아침 집을 나서다가 때마침 울려퍼진 아파트 방송을 듣고 말았다.
"4월 11일 화장터 결사반대를 위해 삼성동에서 시위를 합니다. 이 날 참여하지 않으신 분에게는 2만원의 벌금을 징수하기로 아파트 동대표와 통장 회의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단결된 힘이 필요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4월 11일..."
내가 화가 나는 것은 화장터 문제를 이렇게 밖에 보지 못하는 조약한 논리 때문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홍보찌라시와 거기에 딸린 '인원 체크합니다'라는 문구 때문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난다. 합의된 구호를 따라하지 않는 데 드는 돈 2만원이 '당연하다'는 생각들, 한 목소리를 안 내는 건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라고 몰아붙이는 눈길들, 그것이 얼마만큼 걷혀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 지도 모르는 채 '벌금'을 내는 손길들에 새삼 화가 난다. 다른 의견의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들, 그 파시즘의 정서에 막막하도록 화가 난다. 그리고, 그러한 광기의 일상 속에서도, 내 가족이 나가서 구호를 따라하는 그 순간에도, 아무 일 없듯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 아니, 조금 겁이 난다.
하니리포터 박효원 기자 i10zzung@han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