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는 하늘을 소유하고 있었어.'
그녀는 이따금 전날밤 꿈 얘기를 들려주곤 했는데-대부분 슬픈 결말이었지만-
어느날인가 달에서 황금마차를 타고 멀고먼 길을 달려 마침내 지구라는
행성에 막 착륙한 생명체와 날이 밝기까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는 머리가 하나에 주먹만한 눈이 두 개. 그리고 길쭉하고 주름진 코가 하나.
오른팔은 엉덩이까지 축 늘어지고 왼팔은 그보다 조금 짧고 통통했어.
음. 그리고- 눈이 멀만큼 아름다운 에매랄드 색 빛을 발하는 몸 전체가
마치 달 표면처럼 울퉁불퉁 패이고. 주름지고 상처투성이였어.
희뿌연 안개로 쌓인 각막을 깊숙한 곳에서 고양이 눈의 그것과 비슷한 짙은 노랑의 햇살이
필사적으로 뚫고 나오려는 듯이 보였지만
안개는 끝내 걷히질 않는 거 있지.
너무나 이상하게도. 그 역시 그걸 원하지 않는 듯이 보였단 말이야.
분명 앞이 흐릿하게 보여 아주 답답했을텐데.
아까 말했듯이 눈망울은 내 주먹만 했어. -그녀는 이 대목에서 직접 주먹을 쥐어 내 눈앞에서
이거 보란듯이 흔들며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손은 어림잡아도 내 손의 두배는 될만큼 커다랗어.
내가 그 손바닥위에 내 손을 포갰을때. 그가 손가락을 내 손위로 구부렸을때
적어도 내 것의 세 배정도 될법한 끝이 동그랗게 잘 다듬어진 그 손톱안에ㅡ
맙소사. 너 정말 믿을 수 있겠니?
가슴이 벅찰만큼 새파란. 파랗고 파란 하늘이 숨쉬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순간 나는 꼭. 심장이 방망이질치듯이 두근거리고 아파서
장난꾸러기 꼬마녀석처럼 볼을 가득 부풀려 얼른 숨을 가득 들이마셔야 될것 같은 기분.
놀랍게도 파란색 매끄러운 손톱안에 인간의 것과 똑같은 흰 반점꽃이
피어올라 몽실몽실 구름이 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구.
그 순간 온몸 구석구석, 땀구멍 하나 핏줄 하나,하나에 가득 스며들었을 공기방울 만큼이나
나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하늘 속으로 흡수될 수 있을 것 같은
그 조그만 하늘 속으로 비상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
그리고 나 우습게도 눈물이 나는 거 있지.
그녀는 들뜨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던지 내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위에
가만히 갖다대었다. 심장의 고동이 불규칙적으로 손끝에 전해져 흘러들어왔다.
그녀의 심장이 말했다.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 아슬 아슬하게 고동치며 살아가고 있는걸.
그는 지구의 하늘을 사랑한다고 했어.
신체부위의 어디든 원하는 보물을 한가지 담을 수 있다.라는 말도 함께.
나는 그 하늘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어. 구름은 흘러가서 마침내 사라지고
이내 또다른 구름이 피어오르고. 이내 소멸되고. 그리고 또다시 커지고.
구름이 예뻐요. 요기요기 흰 반점 말예요.
언젠가 아주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내 손톱을 깎아주면서 이런 반점은
몸이 약해졌다거나. 몸속에 노폐물이 쌓여있다거나 하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했었는데.
그쪽은 노폐물이 구름으로 배출되네- 신기해. 우습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아, 나는 그 때를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거야.
그 불투명한 안개가 가득 덮힌 눈에서 햇살이 녹아내리듯이
끈적하고 미끈거리는 노란 액체가 한방울 또로록 떨어져내리던 그 순간을.
그는 입을 열지않았어. 아무런 진동도 귀를 때리진 않았지만
나는 그 때만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그의 심정을 확인했어.
외로움의 돛을 달고, 오로지 순수한 애정을 내건 키를 잡고 시작한 고독한 항해.
외로움이라는 모래알갱이만한 염증이,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자갈만해지고
마침내 돌덩이만큼 커다래져서 곪아 터질때쯔음에는
그 자리에 새하얗게 차려입은 한송이 청아한 꽃이 되어 피어나는 거야.라고,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니?
그는 외로웠던 거야. 그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걸로 족했을만큼 오래전부터
아주 많-이.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을 맺었다.
나는 그녀의 손등에 내 손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투명한 메니큐어가 발려진 그녀의 작고 예쁜 손톱위로 투명한 하늘의 영상이 겹쳐지는 듯한 착각과 동시에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어쩐지 쓸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마주잡은 손이 가슴이 아려올만큼 따뜻하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국 내용도. 결말도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을 이야기.
솔직하게 말하면 단순히 그냥. 신비하고 묘한 공기를 조성해 그것에만 흠뻑 취할만한 글에 빠져
지독히 서툴고 어설프게나마 따라해보고 싶었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듯 싶다.
어느날 갑자기 정말로 되도 않는 글로 공책 한바닥 통째로 장식해보고 싶었어.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울고 웃고.
물론 의도했던 분위기 조성에 대 실패. 마음으로 느끼는 것도 불가능.
머리와 가슴이 연결된 언어로, 단지 상상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쉽게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길 언어를 그리고 싶었던 욕심이 얼마나 말도안되는 어린 치기였는지.
너무 솔직해서 조금 짜증이 일만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주욱 써내려가는 동안은 그 어느때보다 즐거울 수 있어 참 좋았어.
언젠가는 지극히 도피적 성향을 띈 이글을, 그리고
마음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불안한 열여덟의 중턱을 오르고 있었던 자신을
돌이켜보며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나는 그 때를 조용히, 천천히, 기다리고 있으렵니다.
2005. 08. 21. p.m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