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다. 아무도 있다. 그러나 없다. 아닌가 있나?
없는것 같아. 아니야 있어. 없다고 했지.
그것은 진실. 진실은 있다. 있다는 거짓. 거짓은 있다. 있다는 진실.
아무도 몰라. 아무도 없어. 그래서 몰라. 아무도 있어. 그래도 몰라.
정답은 있다. 아니다 없다. 있다는 진실. 없다는 진실.
없다는 거짓. 있다는 거짓. 진실은 거짓. 거짓은 진실.
나는야 몰라. 아무도 나야. 나는야 아무다.
누구도 나도 나는야 누구도 될 수 있다.
진실이 거짓이 되듯.
마피아 게임이라고 혹시 알아?
'시민'이라고 적힌 쪽지를 집은 선량한 시민과
'마피아'라고 적힌 쪽지를 집은 악당 마피아가 등장하는데,
이 게임의 유일한 규칙은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철저히 '혼자'.
시민은 누가 마피아인지 알지 못하지만 마피아끼리는 서로 누가 시민이고 마피아인지를 잘 알고 있지.
시민은 마피아와 섞여있는 상태에서 마피아를 가려내어 죽여야하고
마피아는 시민인 척 가장하고 시민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마침내는 죽이도록 만들어야 해.
때때로 마피아가 '살아남기 위해서' 같은 편 마피아를 버리는 수도 있지.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의심을 사지 않아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심받고 있는 자를 몰아넣어서 어떻게든 죽이고 그걸로서 시민들에게
'자신은 마피아가 아니라는' 철저한 믿음을 주어야 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돼.
따라서 시민은 마피아가 모두 죽음을 당하기 전까지는
즉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누가 마피아인지를 절대로 알 수 없는 거지.
가장 마피아일 것 같은 사람이 누구냐고 우리들 중 누군가 묻자
나를 제외한 아이들 모두가 주저없이 그 녀석을 지목했어.
게임 내내 결코 어떤 감정의 동요도 표정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 때 그 녀석. 가슴이 시릴 만큼 차가운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봄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는
나는 K가 마피아인 것 같은데, 라고.
순간 철문이 덜컹하고 열리는 소리가 나고 열려진 방속으로 내밀린 나는
끝이 없는 어둠속으로 홀로 떨어져내리는 느낌.
눈앞에 몸 속에서 막 떨어져 나와 팔딱팔딱 꿈틀대고 있는 손바닥만한 심장이 놓여져있고
이내 그것이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마침내는 내 머리 위로 올라가
머리를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고 그 속에 갇혀버린 것 같았어.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고동치는 심장소리만이 머릿속을 가득 울리고 식은 땀이 흐르면서
온몸에 열이 오르고 이내 호흡이 가빠져옴을 느끼는 거야.
이건 게임일 뿐이야.
그런데 너는 어째서 내앞에 무서울 만큼 진지한 태도로 꼿꼿이 서있는 거니.
내 몸에 남아있는 모든 가죽이 홀딱 벗겨지고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박살나
더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했어.
진실이 탄로나는 순간 모든 것은 끝장 나고 만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절대로 내비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두운 내면의 꿈틀거림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찬찬히 훑고 있는
그 녀석의 시선을 못본척하고는 아무런 흔들림없이
아니, 오히려 보란 듯이 부드럽게 생긋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어.
나는 정말 시민이야. 마피아가 아니라구.
그런데 분명 그 말을 하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그 눈빛에는 마음을 아프게하는 무엇이 묻어있었다,고.
옆에 있던 친구 M이 천진난만하게 미소짓고 있는 나와 그 녀석을 번갈아보고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자 여전히 나에게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뱉았어.
만약 네가 마피아가 아니라면, 그 땐 나도 그냥 죽을께.
'그냥 나는 마피아가 아니다' 이 한마디로 자기 변호를 하기는 커녕
자진해서 죽겠다-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시민인척 가장하고
아이들을 속여 나 혼자만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녀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모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에 '소중한' 목숨을 내놓은 셈.
자, 그리고 아이들이 누구를 죽일까 혼란스러워하는 때마침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자연스럽게 게임은 거기서 끝.
나는 분명 '시민'이었고
게임이 끝나고 녀석이 던지고 간 쪽지에는
분명한 글씨로 '마피아' 라고 씌여있었어.
멀어져가는 그 녀석의 모습을 좇으며 그런 생각을 했어.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마음속에 가만히 새겨보았어.
그 때 녀석 역시 사실은 나처럼.
목청이 터질만큼 간절히 소리쳐 말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닐까.
다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너는 정말 마피아가 아니냐, 하고.
마피아. 서로를 속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는 게임.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전부야.
함께 했던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보이는 한 단어.
너무나 닮아있었어. 나는 늘 '마피아'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
마음깊은 곳에서 그 애를 향해 미친듯이 뛰고 있는 이상을 담아 보여주고 싶었고
내 소리에 내가 놀라 기절할만큼 크게 소리질러 … 고백하고 싶었어.
하지만 말하는 순간 그저 옆에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테니까.
'자격'이 박탈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자는 떠나야하는 법이니까.
그 흔한 사귐도 고백도 이별도 없었던 만남.
그리고 그것은 아마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을테지.
그 녀석을 사랑했냐고 물었지?
너는 아마 직접 사랑해보지 않는 한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거야.
사랑하는데 어째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지를.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테고.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그 녀석‘이니까.
사랑은 절대적인 것안에 내재된 감정일 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것,
나는 그 움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냥, 감사할 따름인 것.
새파란 달에 잔뜩 묻어있는 얼룩만큼 마음속에 아주 많이 번져있어서
지우려면 표면을 뜯어내는 수 밖에 없으니 지울 수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그러들어 형체가 희미해져갈지도 모르지만.
있잖아… 나는 아무도 모르는 보물을 영원히 묻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해.
언제나 무언가 가슴을 간질이는 듯이 애틋한 마음을 남겨두고 있는 거야.
아, 그 녀석 얘기를 하다보니 또 저절로 이렇게 말이 길어지고 말았네.
일말의 유머러스한 부분도 비극도 없는 내 얘기가 너무나 지루해서,
돌아서서는 금방 잊어먹게 되더라도
이거 하나만은 이해해주고, 알아주었으면.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
세상에는 이런 방식의 '사랑'이 결코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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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랑.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상'에서 벗어나있는 사랑.
이런 방식의 '사랑'은 대상에 따라 어떤 사랑으로든 해석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써내려갔는데- 의미전달이 힘들었을듯 느껴지는.
2005. 04. 06 p.m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