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개요: (1) 사춘기 - (2) 배신감의 느낌 - (3) 가정해 보자. - (4) 조금 더 독하게
(1) 내 나이가 올해로 열여덟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청소년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요즘은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의 운명이 기구하다거나, 내 앞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힘들다거나.
‘나이도 어린 주제에 별 생각도 다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은, 누구든 거치게 되는 사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 나는 이 사춘기 시절에-지금도 사춘기이지만- 참 많은 좌절을 겪었다.
내 딴에는 잘 쓴 것 같은 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나, 잘 했다고 콧대 세우고 있는데 잔소리를 한다거나 등.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은, 삶이 나를 속였다는 것이었다.
노력한 것에 성과가 없었을 때, 세상이 나를 속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 일이 있었다.
그 느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중학생 시절, 나름대로 머리를 돌리고, 글 쓰는 연습을 해서 썼던 글이 겨우 이 백 명도 채 안 되는 학교에서 입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 배신감, 너무 화가 나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던 그 느낌.
지금도 치가 떨리는, 그런.
(3) 푸쉬킨의 시에 보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고 말했다.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참고 견디면, 반드시 삶이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지금도 치가 떨리는 그 배신감, 그 것을 묵묵히 참고 더 매달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때 멈춰 버렸던 글쓰기를 계속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히 지금쯤은 날 배신했던 세상이 그 보상을 찾아 들고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4) 늦더라도, 반드시 그 속인 것에 대하여 삶은 보상을 들고 올 것이다.
푸쉬킨이 시에서 말 했듯이.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오래 참음’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그 때 버렸었던 글쓰기를, 지금은 더 지독하게 해 보자고.
지금은 날 속이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후에는 반드시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지금 삶이 나를 배신한다고 해도 화내거나 울거나, 예전의 나처럼 포기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