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된 시간 3─사랑
조 병 화
나에게 배정된 시간에 당신이 없는 하늘이 너무나 많아요
줄어드는 내 시간에 당신이 없는 하늘이 너무나 많아요
깊은 바다와 같이 당신 눈 속 깊이 당신은 가라앉아 눈물가에
당신은 잔물결치는 그리움만을 보내줄 때가 너무나 많아요
보리바람처럼 나는 당신 물가에 후줄근히 불어왔다간
검은 눈기슭 깊이 너무나 깊은 바닷속 깊이 당신은 가라앉아
나 홀로 후줄근히 돌아갈 때가 너무나 많아요
밤은 깊이 잠들고 새벽잠 잃은 먼 별들
나의 창가에
영원처럼 기다리다 질 때가 너무나 많아요
프란시즈 쟘의 당나귀 이야기도 토끼 이야기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미 사철나무 이야기도
전쟁 이야기도
나 혼자만이 이야기하고 말 때가 너무나 많아요
나에게 배정된 시간에 당신이 없는 하늘이 너무 많아요
줄어드는 내 시간에 당신이 없는 하늘이 너무나 많아요.
언젠가 시 모음집을 보는데 유난스레 저 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시
모음집이었고, 내 것이 아니라 북 까페에 잠깐 보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
리에서 난 펜과 종이로 저 시를 열심히 필사해야 했다.
뭔가 가슴에 울리는 시였다. 배정된 시간.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시간이
영원할 리는 없을 테고, 시간은 한 사람 당 평균치로 얼마씩 배당되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거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시인은,
이 눈물겹도록 그리움이 주체가 된 시를 쓴 시인은.
바로 시간이 배정되어 있다는 것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배정된
시간 안에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시간이 적다는 것을 서글퍼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비중을 인생의 시간에서 늘리고 싶은 것.
나에게 배정된 시간,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허락된 하늘 아래 그 사람과 좀 더
많은 시간을, 좀 더 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한 시인의 읊조림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부모? 연인? 자식?
아무튼 분명한 것은..
조용히 읊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이 그립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내게 허락된 시간에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진다면 그 순간으로 시간을 채우고 싶었다고 하는,
차라리 절규 보다도 더 사무치는 어떤 그리움을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시인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그리워 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가졌다는 것.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짧든 길든 배정된
인생에 깊게 심어넣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그리움은 누가 될까?
하나님께 몸을 솎히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그리워 할
이를 과연 누구로 배정해 주실지. 단 하나 바라는 것은.
하나님, 그 사람을 위해서 내게 배정된 시간을 올꼼히 쓸 수 있도록, 그 사람으
로 하여금 내가 내게 배정된 시간을 저 시인의 읊조림처럼 되뇌이게 해 주시
도록 바라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
그리고 그것은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게 허락된 시간, 그 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당신이 없는 하늘
이 너무 많아서 나는 당신이 그립고 안타깝지만, 앞으로 남은 나의 세월에 당신
의 비중이 큰 의미로 남을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몸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인생의 한페이지 바로 그곳에 - 그
마음과 추억만은 함께 있기를...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그리움을 감당하며 당신에게 웃어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