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뵈도 미련쟁이 집착쟁이 욕심쟁이다.
근데 그게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살면서.. 욕심 한번없이 이루는 것에대한 기쁨을 알기는 힘드니까.
마더 테레사야 다른 무언가를 본 것이겠지만
나는 지금 惡으로 부터 무언가의 통찰을 넘겨보고 있다.
겨우 17살이 별소리를 하는구나.. 도를 넘어선다...
그것은 중요치 않다.
살며 80을 산 노파와 23살로 요절한 젊은 랍비중에
세상에게 더 많은 것을 남긴것은 랍비였다.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직접 실천하였기에 그는 80살이상의 것을 가졌다고
나는 생각하는 바이다.
오늘 창작시방을 보며.. 그리고 예전 나의 글을 보며
속상한 마음이 그리운 마음보다 더했다.
창가에 보이지도 않을 슬픔을 내깟것이 어찌 안다고
그것을 다 아는 양 쓰네 다네 하는 말들이야말로
페시미즘에 대한 환상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있잖은가 세상을 등진 문학가의 로망스.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한 나이에
死의 찬미 한구절 없는 삶이 또 어디 있었겟나.
또 세상을 행복하게 보는 것도 순진무구하고 어리석은 짓임을 왜 모르겠는가.
다만 세상이 눈물지을 때 누구 한사람은 좀 기쁘게 웃었으면 좋겠다.
꿈에서 잠겨서 조금은 허우적 거리면서도 살수있지 않을까.
이렇게.. 창작방에 작별까지 고했던 내가 다시
이곳에 글을 남긴것은 단지 그런 이유이다.
그냥 내가 있던적에 그냥 소녀의 맘을 간질이는 상업작품이라 할 지라도
그건 꿈을 그리워 하는 게 아닐까.
늘 영리한 척을 해야하는 피곤한 청춘에
잠도 필요하다.
잠에 달콤한 꿈이 있다면 잠 한번 잘잤다고 아침보다 밝게 웃을 수도 있겠지.
꿈을 그리워 한다면 아직은 세상이 회색만은 아니다.
분명히 어디에선가는 파스텔이 달콤한 미소를 짓지는 않을까.
雪<ゆ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