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입니다.
나보다 7살이나 위였던 누나.
그러니까 아마도 누나는 당시 사춘기에 접어들었었나 봅니다.
그해 봄 누나가 직접 집 울타리를 따라서 호미질을 하고
모나지 않은 돌을 땅에 반쯤 묻어가면서 옹졸망하게 꽃밭을 만들었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 되었던 어느날
어디에선가 얻어온 백반에 화단가득 피어난 꽃 '봉선화'를 으깨고 있었습니다.
"이걸 비닐로 쌓아서 손에 한참 바르고 있으면 봉선화 물이 들거든
그리고 첫눈 오는날까지 이 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져"
그렇게 누나는 친구들과 손에 봉선화물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에이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쪽팔리게...."
열손가락 모두 비닐로 쌓아가면서 손에 물들이고 있는 누나가
나에게까지 손에 물 들인다고..
백원줄께.. 이백원줄께....
강제로 물들이는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비겁하게 금품으로 날 회유하려고까지...
하지만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도망다니면서 난 손톱사이에 떼낀것 빼고는
그 아무것도 뭍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얼레????
누나는 끝끝내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손가락마다 벌겋게 봉선화물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때 정말로 얼마나 울었었는지
챙피하다고 학교에 안간다고 징징 짜기만 하다가 결국
어머니께 죽어라고 종아리 맞구...
하염없이 쏟아지던 눈물이 진정을 되찾게 되었던 건
명절날이나 어느 특별한날에 겨우 한번씩 만져볼 수 있었던 거금.
천원짜리 한장을 누나에게서 받았을때에야 우리는 봉선화물 사건에 타협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누나에게도 천원이라는 금액은 결코 작은액수가 아니였었습니다.
주머니속에 든든한 거금이 들어있는 풍요로움은
학교앞 구멍가게에서 동무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이거 사먹고 저거 사먹고...
문론 난 동무들중에 대장노릇을 하면서 거만스러울 수도 있었고요.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오락실에 들러서 '보글보글','슈퍼탱크',' 겔러그' 한참을
놀면서 천원어치 만큼의 행복감을 충분히 즐기고 저녁늦게 집으로 왔습니다.
학교내내 나때문에 걱정이 되었는지 집에 와서는 유난히 맛있는 반찬
'계란을 묻힌 소세지'를 일부러 만들어서 밥상 내 앞에 슥 밀어주던.....
순진하고 이쁜 내누이.....
회사 현장문앞에 커다란 화분이 네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근무시작 하기전
아니면 식사를 하고 잠깐의 휴식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자판기 커피한잔을 즐기거나
한까치 담배를 맛나게 피워물면서 힘든 근로 전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근데 왜 아직까지 보지를 못했었는지...
아니, 보지 못한건 아니고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고 표현하는게 더 적당했을 겁니다.
요즘 계속되던 무더위 만큼이나 화분에 있던 꽃들도 지쳐서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화분속에 흙이 먼지가 폴폴 일어날만큼 건조해져서
네개의 화분에는 나의 누나에게 첫사랑의 설레임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있던
봉선화가 여러개의 줄기를 타고 말라가고 있습니다......
늦어서야 화분마다 바가지 가득 흡족할 만큼 물을 골고루 나눠줍니다.
많이 아쉽네*^^*
내일 아침이 되어서 회사에 출근하면 봉선화가 다시 활기를 찾았나 먼저 확인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