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왔다.
여름도 다 갔는데, 왜이렇게 비가 내리는 지 모르겠다. 가을 비도 있다긴 하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여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진짜 이상 기후기는 이상 기후인가 보다.
집에 오는 길에 우산의 꼭지와 엉켜버렸는지, 내 목걸이가 구슬이 풀려버리는 바람에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아아...마음에 드는 거였는데... 이래선 버릴 수밖에 없겠다.
꼭 비가 오는 날만 되면 이렇게 속상한 일이 하나씩 생긴단 말야...
난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 딱히 비 오는 날만 되면 우울해진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이유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같이 바쁜 때는 우울해지는 것이 오히려 사치일 정도이다. 차라리 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사는 편이 낫다.
다만, 밖에 나가고 싶을 때 우산을 받치기가 힘들 뿐이다. 나처럼 잘 치이고, 넘어지며, 무언가 들고 다니는 것이 많은 사람은, 우산 하나의 부피만 증가 해도 거리를 걸어다니기가 무척 고달파진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 아버지가 맞벌이를 하시는데, 1학년 때에는 동생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이미 글자나 숫자는 다 뗀 신동인 동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던 나는 늘 집에 혼자 돌아와 있어야만 했는데, 딱히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 한다거나, 싫어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비가 올 때면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꼭 우산을 가지고 아이를 마중나오는데, 나는 일부러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길 싫어해서 번번히 비를 맞으며 집에 오곤 했다. 물론, 그 다음날은 펑펑 앓아 누워버렸지만..
혼자서 길을 걷거나, 집에 있는 것은 상당히 좋아했다. 이래봬도 남들이 말하는 재주는 많은 편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취미는 많았기에, 혼자서도 잘 놀았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있는데, 내가 불편한 것은 싫었다.
비를 맞으면 집에 와서 물기를 닦아야 하고, 씻어야 하고, 마음대로 나가서 그네를 탈 수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비를 싫어할 수밖에.
나는 맑은 날이 좋다. 차라리 비가 올 바에야, 더워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바라만 봐도 상쾌해지는 푸른 하늘이 있는 날이 좋다. 어디를 가든지 가뿐한 두 손으로 다닐 수 있는, 흙의 향기가 있는 맑은 날이 나는 좋다. 아름다운 해님이 따뜻한 햇살로 집을 나서는 나를 맞아주는, 그런 날을 좋아한다. 암, 나한테는 그런 날이 너무 좋은 날이야.
그런데... 아~ 분하기도 하지.
그렇게 맑은 향기가 나고, 새 지저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유리같이 투명한 하늘이 있는, 푸르른, 그런 날은...
꼭 비가 내린 후에 생긴단 말이야.
왜 그렇잖아. 비 온 후에 날이 궂는다고. ...너무 분하지 뭐야. 이거 말이 거꾸로 말하면 비가 와야 날이 궂는다는 뜻이거던.
그러니까, 먼저 비가 먼지들을 다 쓸어내야만, 오염 냄새가 다 가시고 맑은 하늘도 나고, 흙 냄새도 나는 거잖아.
헤에~ 정말 분하게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