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K. 오랜만에 너를 찾았어. 누런 재활용지 위를 서걱거리며 지나가는 얼마
안 하는 만년필의 감촉도 너무 오랜만이야. 내가 보고싶진 않았니?
네가 없던 -너에겐, 내가 없던- 3개월 동안 나에겐 참 많은 일이 있었어.
그 중 하나는 할머니가 쓰러지신거야. 슈퍼엘 가시다 행인에게 부딪혀 넘어지
셨는데, 그대로 쇼크가 와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계셔. 그게 벌써 2개월을
훨씬 넘긴 얘기야. 소식이 좀 늦었지? 그리고 말야.. 또 하나는....
사실... 이런 얘기가 아무렇지 않아 지기까지는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 사람
감정이라는 게 노력으론 안 되는 불가항력이라지 만은, 정말 마음 가는대로 하
기엔 너무 지쳐. 몸도, 마음도 모두 그래. 애써 어쩔 수 없다는 걸 납득하려 하
지 않았다면 아마 난 지금도 심장만 뛰는 할머니의 몸을 흔들며 악다구니를 써
대고 있을지도 몰라... 얼마전까지도 난 그런 모습이었어. 의사나 간호사나 진
절머리가 나는지 할머니 병상 옆에 앉아있는 퀭한 내 눈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는 듯 징그러워했어. 그들은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내겐 하나뿐인 혈육인데
말이야. 나도 어쩔 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내 하나뿐인 혈육을 발악 한 번 해보
지 않고 보내기는 힘들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그
네들은 이미 너무도 죽음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건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
들은 정말 죽음이라는 게 어떤건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생물학적 죽음, 임
상적 죽음 따위가 아니라 말이야.
그들은 할머니가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했어.
K. 식물인간이 어떤건지 아니? 사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들 말로는 뇌사상
태래. 뇌는 죽어있는데 심장은 뛰고 있다나봐. 그럼 우리할머닌 죽은걸까? 사
람의 생명은 어디지? 심장? 뇌? 정말 그렇게도 간단한 걸까? 오늘 할머니의 맥
박은 너무도 약해져 있었어. 그런데도 심장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어. 그게... 생
명이었을까? 할머니의 영혼은 벌써 달아나 버렸을까? 영혼이 묶여있는 실은 어
디에 연결되어 있었을까..
어때? 내가 꼭 멋진 철학자 같지 않아? 하지만 내게 죽음이라는 건 머리 싸매
고 앉아 고민하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이야. 감상적이어서는 안돼. 그럴 수
도 없을거야. 그러기 전에 온 몸으로 느끼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뼈에 사무치
도록 깨달아야만 해. 하나뿐인 혈육, 하루종일 몸을 고단하게 놀리며 일을 해야
했던 이유. 내 꿈은 잠시 나중으로 미뤄야만 했던 그 이유. 힘들어도 몸을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 진짜 내 편.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 사라지고야 말 것이
라는 것, 이젠 없을거라는 것. 그래, 그건 정말 지독한 현실이야.
옛날 사람들은 철학을 함으로써 신의 세계에 가까워질거라고 생각했대. 결국
신의 세계는 궁극적으로는 죽음일 뿐이잖아? 그들은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
면서 사는거야. 모든 것의 종착역은 죽음이라는 걸 너무도 잘 깨닫고 있었지.
열 살도 안된 어린아이마저도, 그 진리에는 예외가 없었어. 정말 그들은 죽는
순간 행복했을까? 일생을 준비했던 그 죽음이 신체를 잠식시키는 그 순간에 정
말 그들은 담담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K. 난 그렇게 죽음에 담담해 질 수는 없어. 할머니의 죽음은 더더욱 그
렇지.
하지만 K. 난 그것에 담담해져야만 해. 이해할 수 있겠니? 마음놓고 우는 것도
이제 그만 두어야 해. 난 이제 곧 세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할 테
니까.
K. 나는 내일 병원엘 가서 할머니의 산소 호흡기를 내 손으로 거두어 낼거야.
그게 없으면 결국 할머니의 몸엔 죽음이 다가서고 말겠지. 그것으로 완전한 죽
음이 되고 얼마가 더 지나면 생의 흔적이 희미한 그 사체는 희뿌연 재로 화하
고 말겠지. 이게 너에게 전해야 했던 두 번째 소식이야. 위로 같은 건 하지 않아
도 돼. 나는 아직 이 지독한 현실에, 내 손으로 삶에의 희박한 희망을 잘라내며
속으로만 울부짖어야 할 처절한 비명에 담담해지지 못했어. 거울에 비친 내 얼
굴은 무척이나 노곤한 표정이어서 마치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단지 체념일 뿐이야.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체념. 절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에 대한 단념. 이런 종류의 감정에는 위로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있
니?
내일 아침엔 늦잠을 잘까 해. 너무 피곤하거든. 그리고 난 이제 잘 생각이야. 벌
써 12시가 다 되어가. 너무 늦은 시간의 방문에 괜히 미안해지는구나.
안녕- K. 어쩌면 죽음은 달빛의 어스름과 같은 걸지도 몰라.
덧붙임) 도무지-_-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입니다;
고2초에 썼던 글이네요. 그때부터 어렴풋히 진짜 하고싶은 일은 작가라는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 그냥 몇번 끄적거리던 습관
그런 것뿐이라 아직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욕심은 넘치네요
음... 저희 할머니가 이제 80이 넘으셨습니다 연로하신 나이지요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종종 내 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내뱉으십니다
그럼 나는 그 상황이 가끔 상상이 될때가 있습니다
죽음이라는게 어떤건가 나는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할머니를 통해서 어렴풋히 느끼는 것이고, 정말 할머니의 말씀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면 저는 제 측근의 죽음을 매개로 하여
그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겠지요 아직은 모릅니다
그냥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실감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해서
쓰는 내내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찝찝한 기분이었으나
(쓰는 건 세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고.. 그냥 언젠가 맞이할 일에 대한 두서없는 생각
그 쯤으로 여깁니다.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08.20
한때는 그랬던 적이 있죠.
내딴에는 나름대로 사춘기였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저그런 방황의 시간이였는지도 모르죠.
일종의 도망가는 방법으로 죽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그것도 한순간이더라구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고 나니까 죽음이라는게 두려워지더군요.
생각해보니 세상을 살면서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거예요.
여우야님의 글을 읽으면 님의 나이를 잊게 되고……. 또 뭐랄까, 그냥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읽게 되네요.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계속 건필하세요.
08.20
답변 감사해요. 루시퍼님! 제가 올린 시, 수필, 그리고 여기에도 모두 코멘트 남겨주셨죠?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 글을 읽어준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인것 같아요.
읽어준 사람이 제 글에 대해 나쁜말이라도, 좋은 말이라도 들려준다면 더할나위없이 행복해집니다
정말 힘이 되는 코멘트 감사드려요. 몰랐었는데, 창작글방에 루시퍼님의 소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읽어보겠습니다. 저한테 좋은 말씀 해주신 분이니 저도 인간인지라 그저 좋게만 생각되네요 하하;
좋은 분 만난 것 같아 즐겁습니다^-^ 감사해요.
08.21
-_-a 왜 K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신거죠? 의도가 전혀 엿보이지 않는 글쓰기 방식이네요;
기본기는 어느정도 탄탄하신 것 같고, 사고가 좀더 깊어지신다면 더욱 좋은 글을 쓰실 수 있겠네요.
건필하세요.
08.21
아, 조금 덧붙여서 설명 드리자면, 저 상황에서 K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 되려 했다면, 그 K라는 익명의 사람이 글쓰는 화자와 할머니와의 같은 기억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어요. 하지만 전혀 그 속에 K와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었죠. K가 단지 익명이라고 한다면, 저 글은 허공에 보내는 편지밖에 되지 못합니다. 허공에게 무슨 말을 해봐야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요? 차라리 일기 형식으로 써서 나 혼자 보는 것이 낫겠죠. 넋두리처럼.
뭐 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 더 보안하시면 좋은 글 쓰실 수 있으실 것 같아서, 부족한 지식이나마 이렇게 붙여 드립니다.
08.21
좋은 충고 감사드립니다 풍경님^-^ 음.. 안네의 일기에서 안네가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주신 걸 아시죠? 그리고 안네는 일기를 쓸 때마다
마치 일기장과 대화를 하듯이 일기를 써나갔습니다. 저는 일기를 잘 쓰지 않아요. 그냥 종종 생각 나는게 있으면 컴퓨터고 미니홈피고
마구잡이로 적어놓기는 하는데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이라 일기는 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기라면 저는 왠지 막막하거든요.
이 글은 일기예요. K는 여기서 글쓰는 사람이 정한 가상의 화자이고, 굳이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일기장이 되겠지요-
글쓰는 사람이 일기를 썼을테니 일기장에 이 사람에 대한 것은 많이 적혀있겠지만, 그것을 안다고는 표현할 수 없겠죠? 음... 무생물이니까요.
네가 없던 << 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그동안 바빠서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뭐 이정도가 되는거겠네요;
나름대로 의도는 이런 것이었으나-_ㅠ 많이 부족했는가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곁에 둔지도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 그에게 손 내밀 만큼의 용기도 없을 뿐더러 현실을 포기하기엔 아직 미련이 남는 게 많네요..
사춘기 때 죽음이라는 것에 묘한 매력을 느끼며 막연히 동경도 했었죠.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기엔 아직 미래에 대한 바람들이 정말 많아서
아직도 아둥바둥 무거운 그 그림자를 짊어지고 가네요...
고2때 쓰셨다구요? 왠지 성숙한 느낌이.........
하지만 감정의 흐름을 점차 고조되는 형식으로 구성해 보면 더 짜임새 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군데군데 감정의 격한 부분이 흩어져 있어 안정적인 구도를 살리지 못해 주제를 전달하는 힘이 약하네요..
(저 자신도 부족하면서 이러고 있네요..^^;;;)
08.21
아아...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노란우산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읽어보니 그런 것도 같아요.
다음에 쓸 때는 좀 더 염두에 두고 써야겠어요. 솔직히 저 글의 주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가 느끼는 죽음이라는게 어떤 건가.. 라는 것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죽음과는 한참 멀리 있는 제가요;
좋은 충고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