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집을 나섰다.
네살배기 작은 아들과 옷가방을 하나씩 둘러메고
구인사행 직통버스를 타기위해 동서울로 향했다.
출근시간대라 어찌나 분비던지..
빽빽하게 들어찬 인파속을 비집고 지하철에 겨우
발을 들여놓았다. 행여 놓칠새라 고사리 같은 손을
더욱 꽉 잡고 총총걸음으로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출발시간 무려 30분 전이다.
먼저 매표부터 해두고, 장시간 승차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약간의 간식거리도 사고 두루두루 볼일을 마치고
드디어 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한숨 돌리고나니 그제서야 함께 가지 못하는 남편 생각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고, 또 일주일 미리 내려가서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가며 엄마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큰아들을 만날 기대에 들뜨기도하고 그랬다.
막바지 휴가를 떠나는 차량들로 서울을 빠져나가는
톨게이트 부근에서 약간의 정체현상이 있긴했지만,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크게 지체되는 구간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주행했고 덕분에 지루함이나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무사히 읍내인 영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연쇄점에 들러 고기도 사고, 들일 나가서 새참 삼아 먹을
빵이랑 음료수도 사고, 꼬맹이들 간식거리인 과자랑
아이스크림, 요구르트도 사고, 슈퍼가 없는
골짜기 동네다 보니 일부러 사러 나와야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봉다리 봉다리 생각나는대로 가득 가득 담았다.
택시가 집앞에 이르자, 새까맣게 타서 촌놈이 다 된
큰아들 녀석이 언제부터 나와있었는지 이마밑으로 구슬땀을
줄줄 흘리며 길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뛰어온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이쁘고 안쓰럽던지..
순간, 가슴이 찡-하니 뭉클함이 느껴졌다.
이심전심, 서로 아무말 없이 그저 반가운 눈빛을 마주하며
한참을 얼싸안고 그렇게 눈물겨운 모자상봉(?)을 했다.
점심으로 연쇄점에서 사온 고기를 구워서 든든하게 먹고
오후부터 바로 작업(?)-고추따기-에 들어갔다.
바람 한점없이 뜨겁게 내리쬐는 땡볕에 현기증이
나는듯 했고 허리도 끊어지는듯 했다.
안하다 하자니 애들 말대로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말씀은 안하시지만, 잔꾀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거들어 드리기위해 열심히 애쓰는 며느리를
고맙게 여기고 대견스러워 하시니,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다.
그렇게 하루 한나절씩 고추 두물 따고,
참깨 하루 베고 하루 털고,
하루는 주방부터 시작해 집안 구석 구석 대청소하고,
또 하루는 꼬맹이들 데리고 시내버스 타고 온달동굴
가서 큰아들 방학 숙제도 할겸 답사도 하고,
남천 도랑에서 물장구치며 수영도 시키고,
빨가벗고 신나라 웃어대는 큰아들 작은아들
나란히 세워놓고 사진도 찍어주고..
잠자리채 들고 잠자리도 잡고 매미도 잡고,
밤이면 앞마당에 나와 초롱초롱 별구경도 하고
할아버지 딸딸이(경운기)타고 골 한번 돌면서
반딧불 구경도 하고, 7박 8일을 하루도 허송으로
보내지 않고 알차게 보내고 왔다.
김치, 호박, 양배추, 파, 마늘, 고추, 기름...
이것저것 챙겨주시느라 어머님은 새벽부터 수선이셨다.
바리바리 짐을 싣고 동서울행 첫버스에 올라탄 우리 삼모자는
서울에 거의 다 이르도록 일제히 잠에 취해 골아 떨어졌다.
터미널 하차장에 도착하니, 미리 마중나와 있던 남편이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잠이 덜 깨 멍하게 있던 두아들이
갑자기 나타난 아빠를 보며 좋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여보, 우리 왔어!! 우리 얼굴 좀 봐, 까맣게 탔지?
여보, 나 손 좀 봐, 물집도 생기고 굳은 살도 베고
만져봐, 손마디도 엄청 굵어졌지? 이것봐, 이것봐..\"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뭐 대단한 훈장을
자랑하기라도하듯 야단 법석을 떨어댔다.
신랑은 말없이 그저 씩 웃기만한다.
가벼운 애정표현으로 그냥 볼기만 두어번 툭툭 때려준다.
그래도 나는 눈빛으로 다 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다.. 말안해도 나는 다 안다.
시골 다녀온 후로,
평소에 의젓한 큰 아들은 재잘 재잘 말이 참 많아졌고,
입이 짧아 먹는게 항상 부실했던 작은 아들은
이것 저것 가리지않고 주는대로 잘 먹는다.
한 일주일 떨어져 지냈던 우리 부부의 금실은 더욱 좋아졌다.
아직도 나는 약간의 근육통으로 온몸이 뻐근한 상태다.
감기기운으로 코도 맹맹하고 목도 칼칼하니 아프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그 어느때보다 흐뭇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