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어차피 남남인 사람끼리 만나 평생이라는 긴긴 세월을
좋든 싫든 함께 살아야 하는 끝없는 생활의 지속이다.
그러므로 크든 작든 갈등과 마찰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가하면
서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차츰 줄어 소위 권태라는 따분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난관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문제들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간다면 오히려 더욱 깊이 있고 견고한 부부의
정을 이루는 데 좋은 기회로 작용되기도 할 것이다.
마치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지는것 처럼 말이다.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건 아니 변화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건
바로 이런 진리(?)를 몸소 느끼고 터득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우선 제일 큰 깨달음은 참고 견디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
형편이 넉넉지 못한 시골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또한 부모님이 하시는 논일 밭일을 따라다니며 그 나이엔
벅차고도 남을 만큼 힘든 일을 투정 한번 부리지않고 했었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참고 견디는 인내심 하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길러진 셈이고, 그런 은근과 끈기가 바탕이
되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모든 과정에서 무조건 참는것 만이 능사가 아님을,
어쩌면 후에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음을 최근에 깨달았다.
언젠가 잘살던 부부가 중년에 이혼하는 예가 많다고 들었다.
또한 주부 우울증의 대부분이 집안 살림에 헌신적이었던 사람이란다.
이는 모두 갑자기 발생한 특별한 문제가 원인이기 보다는
그동안 혼자 느껴왔던 불만과 불안, 혹은 소외와 고독이 더 큰
원인이란다. 아무리 헌신적인 사람이라도 대가를 기대하는
무의식적인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데, 그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아니 그런 것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가족들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서운함이 극에 달한 것이리라 여겨진다.
물론 미리 헤아리지 못했던 가족들의 무심함도 문제겠지만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참으며 자신의 속병을 키워왔던
본인이 보다 큰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원래 타고난 성격이 쾌활하거나 대범하지 못하다.
그래서 가족들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아주 예민하고, 좀 섭섭하고
서운한 점이 있어도 내 특기인 참을성을 발휘해 그냥 참고 만다.
아무일 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웃고 만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모르는 속앓이를 할 때가 간혹 있다.
그래도 아직은 병이 될 만큼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속으로 삭히다 보니 썩 개운치 않은건 분명한 사실이다.
내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 얘기 한다는 것,
자칫하면 서로에게 화근이 되어 다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투면서 이해하게 되고 양보하게 되며 정도 싹트게 됨을
나는 경험으로 터득했다. 때에 따라선 참을 줄도 알아야겠지만
무조건 참는것 만이 능사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결혼 생활 몇년만에 터득한 것이 또 한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지는것(져 주는것)이 이기는 거란 점이다.
어렸을 적에 오빠나 동생이랑 다툴때 마다 늘 들었던 말이다.
그때만해도 싸움을 말리려는 어른들의 얄팍한 속임수 인줄만
알았지 그 말의 참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터, 억울한 심정에
\"내가 져 준거니까 내가 이긴거야!\"하고 볼멘 소리로 토를
달면서 편치 않았던 속을 달래곤 했었다.
철이 들면서 왜 지는 사람이 결국 이긴 거라고 하는지 그 의미를
깨달았지만 사회 경험이 크게 없었으므로 직접 체험할 기회가
없이 바로 결혼 생활에 접어 들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가 그렇듯 아무것도 아닌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
밥먹듯 싸우면서 져 줌으로 이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제일 문제는 자존심이었던것 같다.
잘못을 알지만 시인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때로는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어도 역시 자존심이 문제였다.
결국 더이상 따지고 해명해야할 원인이 없어졌음에도 그 불필요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침묵을 깨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서로의 성격이 왠만큼 파악되고 상대 집안의 정서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지면서 그 소득도 없이 무의하기만한 자존심의
대결(?)에 지루함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즈음, 내 판단이 옳다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선
먼저 사과하는 법이 절대 없었던 옹졸하고도 못난 고집을 버리고
먼저 감싸안으며 조심스럽게 화해의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무슨 허점이라도 드러낸 듯 계면쩍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소득도 있었으니, 한발 먼저 물러난 자만이
느낄수 있는 그 후련함과 평온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실로 현명한 사람은 조금 밑져 줄 줄도 알고 져 줄 줄도 아는
너그럽고 겸손한 사람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우친 것이다.
요즘은 다툴일이 거의 없지만 다투게 되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은 아예 없다.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먼저 사과를 청하는 이의 진심을 외면하지 않는다.
매사에 실수가 없도록 철두철미하게 살피고 긴장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조금은 어수룩한 듯 실수도 하고 그래서 쑥쓰러워
할 줄도 알고 미안해 할 줄도 아는 넉넉한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