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일이다.
요즘 나는 밖에서 밥을 해결한다.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둘째형님의 형수님은 아무말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점점 집에서 밥먹기가 힘들어진다.
그런던 어제, 저녁을 먹으러 설렁탕집에 밥을 먹는데 깍뚜기가 너무 맛이 좋았다.
시원하고 상큼한, 아삭한 그맛, 덜매우면서도 달콤한 느낌이 좋았다.
나는 밥을 먹은후 수육포장을 주문했고, 내심 오랫만에 먹는 고기를 좋아하는 형수와
둘째형님을 기대하며 기분좋게 집으로 들어왔다.
형님은 조금 늦으신다고 한다. 형수는 이제 내가 들어가도 말한마디 안하신다.
내가 수육을 사왔다고 했다. 형님이 오시면 같이 먹자고 했다.
그저 시큰둥한 반응의 형수님은 TV화면만 주시하신다.
형님이 왔다. 나는 즐겁게 맞은후 수육을 먹기위해 방에서 나왔다.(형님이 오시기까지
나는 방밖을 나가기 힘들었다. 알수없는 압박감이 내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는듯했다.)
형수님은 수육을 먹을 상을 차리며,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으신다. 이게 뭔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무언가 이상하고 양도 적다고 하신다. 내가 大자로 사온것이라 말했다.
문득 생각이 난다. 포장 주문한사람이 나뿐이 아니었다는것이 혹시나 바뀐것이 아닐까란
말을 건네자, 형수는 얼씨구나 맞장구를 친다. 너무 작다고 얼마 주었냐고, 3만원이라고 하자
3만원이 뭐 이것밖에 안돼냐고 정말 잘못 들고 온거 같다고 사온 나보다 더욱 열성이시다.
나는 안바꼈을꺼라 말한다. 혹 바꼈다한들 우리가 3만원치 맛있게 먹으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
형님이 부족할것같으면 닭을 시켜 같이 먹자고 하신다. 닭도 주문하고, 닭이 배달되기전에
수육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나는 형님과 형수께 고맙다고 말한다. 내가 힘들때
도와줘서,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형님은 당연한걸 왜 그러느냐고 하시고 형수는
다 그럴때가 있다고 하신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다만 내가 사온 수육과 깍뚜기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없고, 수육은 이상하고 깍뚜기는 달기만하다는 형수님이 내 심기를 좋지 않게 한것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닭이 도착하기, 바로전 일은 터졌다.
아무뜻없이 나는 근처 시내얘기를 꺼냈고, 이야기를 하던중 형수는 계발얘기를 불쑥 꺼내놓았다.
거기서 둘째형님이 갑자기 짜증스러운 말을 꺼내신다. 계발 계발 얘기 하지말라며 당신의 동생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왜 그리 계발하는것에 목 메는지 모르겠다며, 계발 해봐야 우리랑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형은 몰랐다. 그것이 형수의 불화산같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시발점이 될줄은.
형수님은 얼굴은 심각하게 붉어지고 일그러지시더니, 언성이 3배는 커지기 시작했다.
화를 내시기 시작하자, 겉잡을수 없이 싸움은 커지기 시작했고, 형님은 조근히 말하려 했지만,
사과는 하실생각은 없으셨고, 형수는 꼭 싸움을 원하는 투사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쏟으셨다.
나는 어찌된건지 멍하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주문했던 닭이 왔다.
형수는 밥상에서 일어나 딴자리로 가버리시고, 거기서 계속 무어라 형님께 말한다.
자신을 무시했다며, 어떻게 도련님 앞에서 그럴수 있냐고 하신다. 형님은 그런뜻은 없었다 하신다.
그러나 이미 극점에 도달한 형수님은 무슨 말을 한들 모두 화나게 만드는 말로 들으시는것 같다.
형수는 형님께 이제 인격모독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신다. 머리가 비었다는둥, 세상을 미련하게
산다는둥, 내가 듣기에도 거북한 말들이 형님께 꽂아졌다. 형님은 눈을 몇번 부라렸지만, 이내
내가 참지, 하는 표정으로 외면하시고, 닭은 이미 포기하고 담배를 피시러 베란다로 나가신다.
나는 형수께 닭과 같이 온 콜라를 컵에 따라 전해드리고(형수는 먹기 싫다신다.) 형님을 따라
베란다에 나가 담뱃불을 붙인다. 나는 형을 위로하고, 형수는 왜 화가 나는지 알려고 했으나,
그것이 무의미하다는것을(경험으로 알고 있다.) 알고 이내 포기하고 조용히 상을 치우고,
내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무엇이 문제 였을까? 무엇이 이런 결과없는 싸움을 하게 한것일까? 그저 상처뿐인 싸움.
오늘 도서관을 가기위해 말없이 방에서 나온다.
형수는 엉망인 방에서 이불속에 누워 티비만 보시고 계신다.
인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곰곰히 생각 해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형수는 인정받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것이든 인정받기를
원한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형님은 그것을 무시했다. 형님은 사랑받기를 원하신다.
형수가 어머니랑 알수없는 닮았음을 내가 인지할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형님의 투정어린 무시에 형수는 불같은 감정으로 답했다. 나는... 관심받기를 원했다.
수육을 사올때도 그것에 좋아하는 관심을, 맛있게 먹는 관심, 그리고 고맙다는 말한마디의
관심을 말이다. 그러나 형님도 형수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인정받기 원했던 형수, 사랑받기 원했던 형님, 관심받길 원했던 나
그러나 실상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우리는 잘안다. 농사일을 하메 씨앗을 뿌리지 않고 수확을 많이 바라는것은 부질없음을.
시험을 치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서는 좋은성적을 바란다는것은 말도 않되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늘 특별한 무엇인가가 행운을 주기를 원한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 보는 형수가 남에게 인정을 바란것처럼.
다른이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 주지않는 형님이 다른이에게 사랑을 받길 바란것처럼.
누구에게 관심없이 나만 바라보던 내가 모든이가 나에게 관심주기를 바란것처럼.
우리는 하지 않고 받기만을 원했던것이다.
누구에게 사랑 받길 원하는가?
누구에게 인정 받길 원하는가?
누구에게 도움 받길 원하는가?
돈을 많이 벌기 원하는가?
권력을 잡길 원하는가?
명예를 얻길 원하는가?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을 줘야한다. 인정을 해줘야한다. 도움을 줘야한다. 돈을 줘야한다. 존경을 줘야한다.
원하는 만큼 얻기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두배,세배,네배, 심지어는 열배 이상으로 줘야한다.
그리고 준만큼 기대하지 말고 받은것에 감사해야한다.
기대를 하면 실망이 커지고, 실망하면 내가 주는것이 아깝기 시작하고 손해로 인식한다.
그러면 다시 돌아오는것은 그저 삶의 대한 좌절뿐. 나는 사랑받을수 없고 인정 받을수 없고, 도움받을수없는 나를 볼수 밖에 없다.
나는 문.사에 들어와서 글을 적으며, 솔직히 조회수와 댓글에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글이 다른이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고, 댓글도 많이 적어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선플이든 악플이든 무플만 아니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바꾸기로 했다. 농사꾼이 대부분 싹이 트지않겠지만 씨앗을 많이 뿌리는것처럼, 학생이 몇퍼센트 적중되지 않더라도 예상문제를 많이 푸는것처럼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을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댓글을 달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의 글에 대한 조회수나 댓글에 연연하지 않을것이다. 다만 한글자라도 적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함을 느끼고 그렇게 적을것이다.
이런 행위가 나에게 보탬이 될지 않될지 모르나, 나는 다만 그렇게 할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진심은 통할것이다.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