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쮜~ 땅에 떨어진 음식은 먹으면 안돼. 아야 한다."
어머님들은 갓난 아이에게 이런 말 한번씩은 해봤을 터이고,
우리는 그런 얘기를 많이 접했으리라.
우리는 이제 안다. 왜 어머니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그렇지만 당사지인 아이는 모른다. 그저 그렇구나 엄마 말이니까
지켜야하는구나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어라고 말하려 한다.
하하 들린다. 나는 악마인가? 아니면 남이 아픈걸 즐기는 변태자 인가?
그렇게 생각하는이들이 있으리란걸 잘안다.
자 그럼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얘기해볼까.
자.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면 분명히 아이는 배가 아야~ 할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죽나? 혹은 죽을수도 있겠지. 완전 완전 재수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아니 거의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아이는 두가지가 변한다.
한 가지는 먹으면 아야하는구나란 행동적 지식을 습득. 다시는 땅에 떨어진것을 안먹으려 할것이다.
먹으라고 하면 자신을 해치는 인물로 볼리라.
또 다른 한가지는 그 아이 몸속 변화이다.
그 아이는 지저분한 음식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그리하여 음식의 병균이나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 하실 분 있는가?
혹시나 한분이라도 있다면 다음 얘기로 넘어가보자.
어른은 아이들에게 되도록이면 고통을 주지 않으려 한다.
고통이 많이 힘든것을 알기에 자기 자식에게는 그것을 겪게 하는것이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안느끼고 성장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가? 고통 없는 성장은 없는 것을.
온실의 화초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으니 따로 말안해도 알겠지만, 다시 언급해보자.
온실의 화초는 고통이 없이 자란다. 자 자라니까 성장한거지?
과연 성장일까? 그러나 조그만 관리가 소홀해도 화초는 그저 힘없이 쓰러진다.
그리고 길거리에 방치된 민들레는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딱딱한 시멘트 사이로 자라난다.
민들레들은 어떠한 고처가 오더라도, 다시 자라고 또다른 민들레를 생산한다.
짧게 말해 우리는 인간이고 식물로써 비유하면 그렇겠지만, 우리는 평생 우리 아이들을 관리해줄수 없다.
자, 따분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을 하려면
그리고 가치있는 삶을 살려면 고통은 필요악처럼 우리에게 꼬리표 같은 것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인가에 고통스러운가?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은 어차피 생명이 겪어야하는 것이다.
피하지도 말고, 힘들어 하지도 마라.
다만 거쳐가는 단계일 뿐이다.
그리고 고통뒤에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결과물을 우리는 얻을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어라.
그리고 고통을 느끼고 세상의 진리를 배워보아라. 머리로 말고 내가슴으로 내몸으로 말이다.
'아~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면 이렇게 아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