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었어요.
장생주
한 때는 하늘이 노랗더군요. 아니 하늘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때가 있었어요. 정녕 내 마음 깊은 데서 죽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절망하고 좌절하고 그저 사는 게 괴롭고 처절할 때가 있었지요.
생각해보셔요. 육신은 불치의 병으로 죽어 가고 날마다 피를 토하며 먹지도 못하고 들어 누워 잠을 자지도 못하고 몇 날 몇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던 날들. 죽을 날만 조용히 기다린다 해도 차라리 행복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수많은 날들을 견딜 수 없는 통증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날마다 울부짖으며 죽여달라고 기도했지요. 전지전능하신 신께 매달려 차라리 어서 죽여달라고 기도했지요. 생각하면 너무도 억울했어요.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도 저질러 이토록 큰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가. 분했어요. 그러나 어쩝니까? 죽지 못해 사는 인생. 그것도 인생인데…….
어느 날 이웃집 할머니가 내 오두막집 뜨락에서 내게 한 마디 혼잣말처럼 건네주시더군요.
"사랑하라고……."
그 노파는 무식했어요. 아무 것도 가진 것도 없었어요. 혼자서 남 보기에는 불쌍하게 사는 목숨. 구차하게 사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 할머니는 슬픔이 없는 것 같았어요. 남 보기엔 초라해 보여도 그 마음속엔 정녕 사랑이 가득 넘쳐 났을까? 날더러 사랑하라고 했어요. 뭔가 선문답 같은 노파의 말에 내 생각은 내 마음은 차츰 변하고 있었어요.
'소위 고등교육을 받고 시골학교 교사까지 지냈던 위인이 한 노파만도 못하게 죽음만 생각하다가 갈 게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요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이제 사랑하기로 했어요. 아니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었어요.
피를 토하며 편지를 썼어요. 누군가에게…….
어느 날 라디오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서 불치의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한 소녀에게 편지를 띄웠지요. 답장이 오데요.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 온 그녀의 사연.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너무도 슬픈 사연. 함께 울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아가씨가 날 찾아 왔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스물 안팎의 아가씨. 그녀는 내 손을 덥석 잡고 서럽게 울더군요.
"선생님! 죄송해요. 전 육신은 건강하지만 5년간이나 사귀어 오다 결혼까지 약속한 약혼자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국립묘지에 안치되고 부터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래 라디오프로그램 환우들의 수기에 글을 올렸다가 ……."
속았지요. 물론 그녀도 마음의 병은 절망적이었겠지요. 그러나 이 얼마나 잔인한 장난입니까?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쩌다가 사랑해보았던 소녀에게 무참히도 배신을 당하고부터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세상은 어찌 사랑 없이 살 수 있던가요?
그래 또 사랑하기로 했지요.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었지요. 글을 썼습니다. 여기 저기 잡지에 눈물로 쓴 슬픈 사연들을 보내고 또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묘한 세상」이라는 내 졸고가 잡지에 게재되고 묘령의 아가씨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오더군요. 그래 답장을 하고, 또 답장을 하고 그러기를 몇 년.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인생을 기름지게 하나 봅니다. 병든 육신과 절망적이었던 마음이 언제 그랬나 싶게 치유가 되대요. 아! 물론 그녀와 이루어 질 수 없는 결혼을 초라하게 했지요. 그리고 지금은 너무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구요.
정녕 사랑은 행복의 근원이요 신의 축복인가 봐요. 정녕 지금도 아니 살아있는 동안은 미치도록 사랑할 거예요.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