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에게
- 여강 최재효
“얘, 뭐하니 어서 술 한잔 따라드리지 않고?”
“아니야, 괜찮아. 내가 따라서 마실게……”
수업을 마치고 막 집에 들어선 단발머리 여학생은 양 볼이 빨갛게
물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푸른 제복을 입은 청년에게 술을 따랐다.
술을 따르는 곱고 하얀 손이 바르르 떨렸다. 술잔이 넘치고 있었지
만 청년은 술잔을 계속 들고 있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학생의
어머니와 언니가 얼른 달려와 맥주병을 내려 놓으면서 무안해 했
다.
L양, 그때가 1983년 어느 여름날로 기억해. 내가 우연히 L양과 인연이 닿아 한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었지. 1년쯤 서신 교환이 이루어진 어느 날, 내가 L양의 집을 방문 했을 때 비록 긴 시간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L양과 첫 상봉 장면을 나는 내 인 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어.
오빠는 서울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위로 언니가 있었고 L양네 집은 H시장에서 신발판매점을 운영했었지. 이제는 L양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 L양도 이제 40중반의 아름다운 여인으 로 변신해 있을 테니.
비록 나이 차가 좀 있었지만 10년 정도는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우리네 정서로 봐서 우리의 숫자상 시간차는 크게 장애요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내가 군대를 제대하면서 망각의 무덤 속에 묻혀버린 그때의 동화(童話)를 나는 요즘 들어 자주 꺼내서 읽어보는 습관이 생겼어.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면서도 예정된 신의 계시(啓示)가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거대한 파도 같기도 해. 주변을 살펴보면 인연 아닌 것이 없지. 다만 인연의 끈이 짧고 긴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인연의 끈은 우연하게 맺어진 게 아니야. 종교가 무엇이던 간에 인연이 맺어지기 전에 이미 백천만겁(百千萬劫)의 선연(善緣)이 있었다고 생각해. 그대가 삼세(三世)를 믿는 다면 다행이지만 믿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어떤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가까운 지역에 태어난다는 것은 두 사람에게 축복이면서 동시에 눈물이나 탄식(歎息)을 동반할 수 있거든. 우리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에는 항하사(恒河砂) 보다 많은 영(靈)들이 존재하고 있어.
그 영들이 허공을 떠돌다가 전에 쌓은 업(業)에 의해 다양한 생명체로 환생한다고 나는 믿거든. 내가 천오백 년 전에 신라 달구벌의 어느 가문에 딸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수백 년 뒤 팔공산 먹구렁이로 태어 날 수도 있다고 믿어.
이렇듯 겁(劫)의 세월을 영의 상태로 허공을 맴돌다 어렵게 사람의 몸으로 염부주(閻浮洲)에 태어났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큰 축복이지. 그런데 부부나 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극락(極樂)을 의미하지. 극락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현세(現世)가
바로 극락이거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세(來世)에 천국이나 극락이 있다고 믿지. 현세에서도 극락을 모르는데 어찌 죽어서 극락갈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그대와 비록 많은 사연을 주고 받지는 못했어도 그때 만들어진 우리 둘만의 전설(傳說)도 역시 극락에서 이루어진 일이 분명해.
예정된 인연의 끈은 언젠가 반드시 맺어지게 되어 있어. 전세(轉世)를 잇다 보면 하늘에 떠있는 구름 알갱이와 에베레스트 산 지하 수천 미터 속에 작은 물방울은 인도양 어느섬 샘물에서 조우(遭遇)하게 될 수도 있거든 .
다만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야. 그러니 서두를 필요도 가슴 아파할 일도 아닌 게야. 다만 유한(有限)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우리 인간들의 한 평생이 서러울 뿐이지.
나는 청초하고 화사한 한 떨기 복사꽃 같던 그대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어. 단지 추억이라는 미명(美名)으로 간직해야 하는, 기쁨이면서 슬픔이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야.
지금쯤 그대의 아이들이 장성해서 사내라면 군대에 갔거나 아니면 고등학교 학생이 되어 한창 학업에 열중일 테지. 나도 이렇듯 그날의 추억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있으니 그대는 나 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날 나를 마치 백년지객(百年之客) 처럼 맞아주며 정성을 다해 맞아주시던 그대의 어머님과 아버님에게 지금에서야 고맙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 어쩌면 두 어른들께서 종종 내 이야기를 하셨을 거야.
그대는 그럴 때 마다 나를 야속하게 생각했을 테지.허언(虛言)을 남발한 나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고. 이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잖아.
지금도 나는 남녘으로 향하는 구름이나 새들을 보면 내 마음을 실어 보내고 있어. 특히 달이 교교한 날이면 만감(萬感) 교차하면서 긴 한숨이 나오곤 해. 그러나 어쩌겠어. 이미 서로의 곁에는 해로동혈(偕老同穴)을 약속한 사람이 있으니.
다만, 전국적으로 무서운 전염병이 돌거나 그대 고향에 태풍이 지나간다거나 혹은 얼마 전 처럼 지하에서 대형 인재(人災)로 많은 인명이 상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면서 기도를 올리지.
내가 그대의 집을 나섰을 때 단발머리 그대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입에 물고 차마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어. 그대 어머님과 아버님은 내가 당신들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지.
내가 멀리서 뒤돌아 보았을 때 그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나를 바라보지 못했어.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차역으로 향했지만 마음 한 자락을 그대에게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하고 싶어.
그때가 임지(臨地)에서 마지막 휴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한번 H시장을 찾았을 지도 몰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하면서 그대를 내 심연의 한 켠에 묻어 두었지만 늘 10년 묵은 체증(滯症)에 시달리는 심정이었어.
야속한 게 세월이면서 또한 무서운 게 역시 세월이라는 사실을 불혹(不惑)을 넘기면서 실감할 수 있었지. 푸른 제복의 씩씩한 청년은 어느새 중년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패를 가슴에 달고 지내야 하니 어찌 우울하지 않을까.
내가 세월의 무게에 점점 짓눌려야 하는 현실이나 그대가 자주 먼 하늘을 오려다 보았을 습관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해. 만약 내가 그대를 만나 본다면 나는 눈물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때 그대와 헤어질 때 그대의 모습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거야. 만약은 만약으로 끝나는 것이 어쩜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지.
단발머리, 백설보다 하얀 상의(上衣), 검정치마, 금방이라도 진주가 떼구르르 굴러떨어질 것 같은 그대의 커다란 눈망울. 나는 추억할 것이 있어 행복한 남자일지도 몰라.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은 남자가 되어 슬픔도 동시에 간직해야 하는 운명이기도 하고. 그래도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동화가 있어 행복한 사내라고 믿고 싶어.
“00야, 잘 있어. 공부 잘하고. 오빠가 시간 되면 또 들릴 게.”
그대와 작별하면서 나의 말에 그대는 촉촉해진 시선으로 대답대신 간신히 고개를 한번 끄덕였지. 그대는 나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을 테고. 그러나 세상이 나를 속이고 그대를 속이면서 나의 언약은 허공에 메아리가 되고 말았어. 사내 대장부의 말은 중천금(重千金)이라 했거늘. 이제 와서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나를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 바래.
파란 하늘이 있고, 그 아래 흰 구름과 새들이 조용히 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주 구름이 되거나 새가 되기도 했어. 또 어떤 날은 새가 너무 부러워 내가 새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아가는 꿈을 꾸기도 했었지.
꿈이 있기에 사람들은 웃음을 잃지 않나봐. 저기 서천 노을 아래로 한 무리의 기러기들이 남녘을 향해 날아가고 있네. 내 시야에서 저 기러기들이 사라질 때 까지 단심(丹心)으로 손을 흔들어 줘야 겠어.
- 창작일 : 2010.12.26.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