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령포 가는 나룻배
저승섬
- 단종임금을 追慕하며 -
- 여강 최재효
그 곳은 섬 아닌 섬이며, 저승 아닌 저승이었답니다. 나그네의 두 눈에는 이승에 속한 명계(冥界)가 분명했습니다. 범인(凡人)의 근접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고요와 적막의 땅이며, 한숨과 탄식과 울분이 아직도 생생한, 시간이 정지된 통곡의 섬이었습니다.
남한강 상류의 탕탕(蕩蕩)한 물줄기도 이 곳 서강(西江)의 곡(曲)진 물가를 지날 때면 비통한 심정으로 곡(哭)을 하지 않고 지날 수 없을 테지요. 조물주는 임의 한숨이 서린 이곳에도 만추(晩秋)의 수채화를 아름답게 그려 놓았답니다.
하얀 모래는 눈이 부실 정도이며, 수백 년 된 푸른 소나무는 임을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성삼문(成三問)과 박팽년(朴彭年) 같은 임의 충신(忠臣)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섬 아닌 섬은 신령(神靈)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어,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에도 행여 거친 숨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 임의 심기를 건드릴까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임을 몇 번 알현(謁見)하였음에도 밖에서 보는 모습과 안에 들어와 보는 섬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소슬한 바람소리,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관음송(觀音松), 임께서 단정히 앉아 있는 어가(御家), 곡강(曲江)의 천 길 낭떠러지 위에 통한의 눈물이 알알이 돌이 되어 쌓인 망향탑(望鄕塔), 임의 피맺힌 절규를 듣고 조용히 가슴 치며 멀리 북녘을 향해 나란히 서있는 육륙봉(六六峰), 산새들의 조용한 날갯짓. 섬 안의 모든 것이 친근하면서도 낯설기만 하답니다.
한때 조선(朝鮮)이라는 왕국을 다스린 스물일곱 분 임금 중에 도성(都城)에서 오백 리 이상 멀리 떨어진 곳에 유택(幽宅)을 마련한 분은 임이 유일하답니다. 결코 임께서 원하지 않던 일이겠지요. 임은 몇몇 수심(獸心)을 가진, 세상의 이치를 뒤바꾸려는 자들에게 희생양이 된 탓일 테지요.
임의 아버님께서 병약(病弱)하지 않았던들 임은 낯선 이곳에서 영면(永眠)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며,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추앙받는 성군(聖君)으로 추억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마로 땅을 치고, 가슴을 두르려도 시원하지 않을 가슴 아픈 역사 입니다.
임의 할아버지께서는 명군(明君)으로 천만세(千萬世)에 이름을 남기셨습니다. 나그네 또한 임의 조부(祖父)를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창제(創製)하시고 자손만대(子孫萬代)를 평안케 하신 수고로움에 깊은 신뢰를 보내며, 그 이름을 높이 칭송하고 있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임의 할아버님께서 둘째 아드님이신 진평대군(晉平大君), 유(瑈)에게 ‘고삐를 세게 채웠더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같은 사념(私念)은 나그네만의 의중(意中)은 아닐거라생각합니다.
임의 할아버님은 큰 아드님이신 임의 부친을 문(文)을 숭상하며 자애로운 군주로, 임의 숙부(叔父)인 진평대군을 무(武)를 기반으로 하는 동량지재(棟梁之材)로 가꿔 조선을 떠받드는 두 축으로 삼으려 하셨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숙부를 얼마나 믿으셨으면 종친(宗親)들을 관리하는 종부시(宗簿寺)의 제조(提調)로 삼았을까요.
할아버님의 이러한 조치는 조선이라는 마차를 두 아드님에게 끌게 하여 태평성대를 누리려 했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습니다.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삐져나오게 되어 있답니다. 자비로운 할아버님의 예상은 빗나갔고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결과를 부르고 말았답니다.
부친께서 일찍 승하(昇遐)하자 어린 나이로 보위(寶位)에 오른 임이 김종서(金宗瑞)와 황보인(皇甫仁) 등 권신(權臣)들에게 휘둘릴 것을 우려한 숙부의 빗나간 우국충정이 큰 재앙을 불렀지요. 지나 친 우려는 살생부(殺生簿)로 이어 졌답니다.
바로 할아버님께서 혈기왕성한 숙부에게 날개를 달아 드린 결과 아니었던가요. 할아버님께서 보위 승계의 원칙을 공고히 세웠더라면 임이 이곳 첩첩산중(疊疊山中)이 아닌 한양의 동구릉 어디쯤 선조(先祖)들과 편안히 영면하고 계실 텐데요.
어쩌면 임의 비극은 예정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할아버님 역시 위로 두 형님들을 물리고 정통 장자승계(長子承繼)의 틀에서 벗어나 보위에 오르셨잖아요. 그 같은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임의 숙부 역시 속으로 큰 뜻을 품게 되었고, 결국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대 사건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임을 폐위시키기에 이르렀지요.
임의 숙부는 이태조(李太祖)의 아드님들이 일으켰던 왕자(王子)의 난(亂)을 본받은 것이죠. 현군(賢君)이신 할아버님이 가장 큰 우(愚)는 바로 임의 비극적인 희생이랍니다. 특히 숙부는 저승에 들어도 마음이 편치 못하리라 짐작이 갑니다.
혹자(或者)는 직전법(直田法), 호패법(號牌法),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해 불경(佛經)을 번역하는 등 몇 가지 일로 삐뚤어진 욕망의 과오(過誤)를 덮으려는 일을 높이 사려고 하지요. 그러나 진평대군의 과오는 어떤 이유로도 희석될 수 없습니다. 그의 허물은 만대(萬代)에 걸쳐 오욕으로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때의 헛된 욕망은 자신은 물로 주변의 죄 없는 인사들 까지 영원히 이름을 더럽힌 다는 사실은 많은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답니다. 임께서는 오백 오십이라는 힘들고 괴로운 성상(星霜)을 이곳 영월 땅에서 보내고 계십니다. 너무나 긴 고독이어서 세월에도 이끼가 꼈답니다.
지금 먼 후대의 어떤 나그네는 임께서 도성을 바라보며 분루(憤淚)를 삼키며 지어미 이름을 부르짖었던 망향탑(望鄕塔) 옆에 멍하니 서서 북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답니다. 기러기 한 무리 남녘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저 기러기는 그때 임 걱정에 눈물로 밤낮을 지새우고 있을 지어미의 소식을 임에게 전해주는 전령사(傳令使) 노릇을 했을 테지요.
끼룩거리는 소리는 임을 찾는 소리랍니다. 경기도 남양주 땅 사릉(思陵)에 계신 지어미의 소식을 전하려는 게지요. 18세 꽃 같은 나이로 흥인지문(興仁之門)에서 영월 땅으로 떠나는 임과 눈물로 이별하고 날마다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임께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천지신명님께 빌고 빌었던 지어미의 통곡 소리를 듣고 계시는지요.
임께서 삿된 무리들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지어미는 임이 가시고 육십 사년동안을 영월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정업원(淨業院)에 작은 초가를 짓고 조석(朝夕)으로 동망봉에 올라가서 동쪽을 바라보며 임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명복(冥福)을 빌고 또 빌었답니다.
머리를 깎고 긴긴 세월 홀로 지냈을 지어미는 지금도 구천(九天)을 맴돌고 있을 겁니다. 저 기러기들이 행여 구천에서 보내오는 편지를 가져왔을지도 모르겠어요. 비록 미물이지만 슬픈 울음소리는 간장(肝腸)을 녹이기에 충분하답니다.
저 아래 천 길 낭떠러지로 흐르는 청령포 물은 임께서 흘린 눈물로 이루어진 통한(痛恨)의 강일 테지요. 임의 통곡이 얼마나 애절하고 단장(斷腸)의 고통으로 들렸으면 물도 저리 파랗게 멍이 들어 지금까지 가슴앓이를 할까요.
원칙이 고수(固守)되지 않을 때, 자연스레 흐르는 물을 거꾸로 되돌리려 할 때, 사람뿐만 아니라 산하(山河)도 편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건널 때 나그네도 강의 울음소리를 들었답니다. ‘우우우-’하는 소리는 임의 절규 아니던가요.
저 강물 속을 보고 계신지요. 무서리를 맞아 곱게 단장한 육륙봉이 저렇듯 지어미와 만백성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임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붉은 빛으로 대변하는데 강물에 비친 산 그림자는 웬일인지 파랗기만 하답니다.
그뿐이던가요. 임께서 밤낮으로 지어미를 부르는 소리와 임의 처참한 주검을 목격한 노송(老松)들은 그날의 참상(慘狀)을 후손들에게 이야기하려고 관음송(觀音松)이란 별칭을 얻어 저리 꼿꼿한 자세로 숲속의 어가(御家)를 향하고 있답니다.
조선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같던 이곳 청령포가 저승섬 처럼 된 것은 운명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오욕(五慾)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바(裟婆)를 일찌감치 벗어나 신선(神仙)이 되신 임에게 더할 나위 없이 호젓한 안식처(安息處)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승에 존재하는 저승 같은 섬, 저승이 곧 이승이고, 이승이 곧 저승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섬이 아닌 섬. 임께서 평범한 가문의 자제로 나오셨다면 한 평생 편안히 살다 모든 것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망각(忘却)의 강을 건넜을 테지요.
나그네는 차가운 술 한 잔 망향탑 주위에 붓고 하늘과 땅을 번갈아 쳐다봅니다. 임께서는 비록 이승에서 짧은 생을 사셨지만, 저승에 드시어 후손 만대(萬代)의 눈물 속에 살아 계시 답니다. 눈 뜨면 이승이고, 눈 감으면 저승인 것을요.
언제 이 섬을 다시 찾을 때 임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서설(瑞雪)이 내리려고 하는지 서천(西天)은 서서히 잿빛으로 물들어 가는데 까치 한쌍 관음송 가지 위에서 밀어(蜜語)를 속삭이네요. 나그네는 장릉(莊陵)을 향해 합장하고 만근(萬斤)이나 되는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 창작일 : 2010.11.6. 12:00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주] 1. 진평대군 - 세조는 보위에 오르기전에 진평대군(晉平大君), 1432년 함평대군
(咸平大君)에 책봉되었다가 이해 7월 진양대군(晉陽大君)으로, 다시
1445년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다시 책봉되었다.
2. 정업원 - 서울 흥인문(興仁門) 밖 숭인동에 있는 세칭 동망봉(東望峰) 서쪽 아래에
있으며, 조선 제6대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가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 살던 곳이다.
3. 장릉 -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임금의 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