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서 벗으로
- 여강 최재효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짙은 향내를 맡고 해조음(海潮音) 처럼 울려 퍼지는 천수경(千手經)을 들으며 나는 형님의 영전(靈前)에 절을 하였다. 지난밤 새벽2시가 넘을 때 까지 형의 맥박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가물가물했었다.
그래도 이 상태로 가면 하루 이틀은 연명(延命)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出勤)해야 하기 때문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조카는 내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형님이 이승의 끈을 놓았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검정색 투피스를 입고 조용히 앉아 있던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 기억에서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녀가 이 자리에 올 거란 상상 조차도 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형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영안실(靈安室)로 옮겨진 뒤였다.
하얀 국화 속에 파묻힌 형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촐하게 마련된 빈소(殯所)에 형제자매와 피붙이들이 넋을 놓고 앉아 멀거니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넋을 놓고 있는 가운데 한 중년 여인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처음 보는 여잔데, 누구일까?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 나는 검정색 투피스를 입고 다소곳이 빈소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눈 길이 갔다. 형님의 회사직원 아니면 먼 지인(知人)일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형수(兄嫂)가 낯선 남자를 맞이하며 그녀에게 안내하였다. 그 남자 입에서 형수에게 ‘처형’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는 그 남자 앞에 앉아 있던 그 여인을 다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하여 나는 밖으로 나왔다. 매발톱 같은 삭풍(朔風)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00라는 분을 아세요?” 신촌동 학사주점에서 몹시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탁주(濁酒) 잔을 비우고 있다가 엉뚱하게도 그녀의 입에서 사촌 형님의 이름이 나올 때 깜짝 놀랐다.
“아니, 그 분을 어떻게 알아? 우리 사촌 형님인데?” 그녀는 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곧 우리 형부가 되실 분이에요.” 그녀는 침통한 표정으로 간신히 대답하였다.
수 없이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힘없이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 하였다. 그녀의 말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나는 그녀와 늦은 밤까지 억울한 심사를 시원하게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도록 술을 퍼마셨다.
나는 대학 공부를 하는 처지였고 그녀는 회사원이었다. 서로 우연히 객지에서 만나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많은 의지가 되곤 했다. 서울에서 사고무친(四顧無親)이었던 나와 그녀는 친구 이상의 가깝고 정다운 사이가 되었다.
주로 이태원동이나 신촌동에서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단발머리에 하얀 치아, 늘 미소 띤 그녀에게 나는 많은 정을 주었고, 그녀 역시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나를 대했다. 학사주점에서 데이트 이후 우리는 한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연 사촌 형님이 그녀의 형부가 된단 말인가?’ 나는 자주 술과 담배를 그리고 강렬한 비트 음악에 나 자신을 내 맡기곤 했다. 많은 날을 고민하고 괴로워 한 끝에 나는 현실을 도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수많은 사연(事緣)들을 뒤로 하고 나는 군에 입대하였다.
3년간의 병영생활(兵營生活)은 또 다른 남자들의 세계를 경험(經驗)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군생할 3년간 세 번의 휴가(休暇)를 나왔다. 내가 첫 휴가를 나왔을 때 형님은 그녀의 큰 형부(兄夫)가 되어 있었다.
형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그녀에 관한 소식을 들려주었고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하면서 그녀의 이름이 나올 때 마다 심장이 뛰었다.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나는 그녀가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한동안 방황하였다.
그리고 30년이 거짓말처럼 흐르고 나는 그녀를 실족사(失足死)한 형님의 빈소(殯所)에서 꿈 많은 소년, 소녀가 아닌 중년(中年)이라는 명패(名牌)를 달고 다시 만났다. 그녀는 진작 나를 알아보았을 텐데 아무 내색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影幀) 속의 형을 보고 싶었다.
고인(故人)과 연적(戀敵)도 아니고 삼각관계도 아닌, 한국적 정서(情緖)로 인하여 비록 긴 세월 전혀 인연(因緣)이 없는 남남처럼 지내긴 하였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빈소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부군(夫君)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하였지만 발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30년 전 마지막 장면을 회상하였다.
“우린 이제 그만 만나야 해요.” 두 눈에 물기가 가득한 채 나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돌아서는 그녀를 나는 붙잡지 못했다. 용기를 내서 붙잡았다 하더라도 대학생 처지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녀를 하필이면 형님의 빈소(殯所)에서 다시 재회(再會)를 하다니. 발랄하고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던 아가씨는 간데없고 낯선 중년의 여인은 나를 서럽게 만들고 있었다.
‘바보, 그때 예뻤던 모습은 어디다 버리고......’ 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인지(認知)했는지 그녀도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못 본체하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影幀) 속 형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종연생종연멸(從緣生從緣滅)이라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는 현실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세상에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인연에 의해 사라져 가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랴.
밤이 깊어가자 지난해 암 수술을 받은 나의 사정을 잘 아는 형제들은 나에게 집에 가서 편하게 자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빈소를 지키고 있는 나는 잠자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 일찍 오겠다고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향하면서 그녀에게도 슬픈 눈인사를 하였다.
발인일(發靷日) 아침 5시부터 장례치를 준비로 빈소는 분주했다. 모든 형제자매, 친지들이 고인(故人)에게 술을 따르고 마지막 예를 올렸다. 고향 선산으로 운구(運柩)하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그녀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그녀의 곁에는 으례 그 남자가 앉아 있었고 모두가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옛 추억을 논하며 정담(情談)을 나눈 다는 게용납되지 않을 것 같았다.
큰 아버님 곁에 묘혈(墓穴)을 파고 관(棺 ) 위를 덮은 “學生海州崔公之柩”라고 쓴 빨간 명정(銘旌)이 혈육(血肉)들이 흙을 한삽 한삽 떠서 뿌리자 서서히 흔적을 감췄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서서 삽으로 흙을 떴다. 관 위로 흙을 뿌리고 나서 약속이나 한 듯 나는 "형님"을 부르고, 그녀는 "형부"를 부르며 통곡하였다.
마침 하늘에서 하얀 꽃송이들이 무수히 낙화(落花)하고 있었다. 온통 하얗게 변한 텅 빈 산에 빨간 집을 짓고 누운 형을 뒤로 하고 나와 그녀는 말 없이 산을 내려왔다. 아무것도 물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마주했을 때 그녀의 귀밑머리를 보고 콧등이 찡해지면서 다시 눈이 침침해졌다.
‘아아, 세월이, 세월이 이렇듯 사람을 몰라보게 만들다니. 그렇게 예뻤던 소녀는 어디가고......’. 운구 버스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
“바보, 나한테 허락도 없이 나이를 먹다니. 이제, 더 이상 나이 먹으면 안 돼.” 사춘기 소년 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나를 그녀는 물기 있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창작일 : 2010.12.15.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