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삶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집니다.
안으로 깊숙이 침몰해 가는 생에 대한 집착은 커져 가는 호흡을 빨라지게 만듭니다.
전날 싸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두 번 댜ㅏ시는 안 보겠다고 하던 만남도
단 하루도 견뎌 내지 못한 인내의 한계였습니다.
단 며칠이라도 참고 상대에게서 전화가 올 때까지 연락을 하지 말하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다툰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화기를 먼저 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날이 새롭게 시작되는 아침의 찬란한 여명의 눈부심은 늘 똑같이 시작되는 일과에
별 의미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고 어제까지도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던 만남은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한밤에 덧없이 뒤척인 몽상으로 비켜납니다.
밤이면 사람은 감정적으로 변한다고, 그래서 밤사이에 나눈 달콤한 속삭임은
한밤의 꿈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던 사람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외의 특별함이 나에게만은 허용되겠지'라는 뜬구름 같은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양심을 속이는 거짓입니다. 거짓을 싫어하는 내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도 시간이 지나고
30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은 느슨해진 웃음으로 여유롭게 받아넘길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생겼습니다.
약속 시간이 지나서 조금만 기다리려고 하면 기다림의 시간이 그렇게 아까워 돌아서 버리던 전과는
달리 기다림을 오래 인내하게 되었으니 그 또한 많은 발전의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여자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엄한 가르침에 그릇되고 바른가를 구분 짓는 마음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던 마음도 친구의 강요에 못 이겨 배우기 시작하 맥주 반잔이 어느새 한 잔을
비울 수 있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술이 입 안에 들어가면 달콤해지기보다는 쓰게
느껴지는 걸 보면 술에 익숙하기까지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상하거나 우울한 날이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수예를 놓습니다. 그것이 나의
치료법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상하거나 또는 위와 같은 증세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술을 마신다고
내게 충고의 말을 하면 나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을 하곤 합니다.
왜 꼭 술과 마주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이 있어야만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가끔씩 윤활유 역할은 되어
줄 수 있다고 보지만 술이 꼭 치료의 특효약이라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적당히 취한 사람은 보기가 좋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이성을 잃고, 평소에는 순한 양 같던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횡설수설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고성을 지르는 모습은 결코 아름다워 보일 수 없습니다. 친구들과 내 삶을 정신적으로 누려 보기 위해 소속된 단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난 늘 혼자서 주스를 마시거나 사이다를 마시곤 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 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항상 내가
평소 보여 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던 건 어쩌면 내 잘못이었는지 모릅니다.
깊숙이 박혀 버린 내 모습이 그들의 유쾌한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만의 테두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살아온 것이 잘한 일인가? 나를 지킨다는 어설픈 이유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못 마시는 술을 더이상은 마다하지 않았고, 한 잔은 비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지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에게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서기가 참 힘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식 변해 가는 나를 보며 이제는 내가 편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내가 너무 내 테두리를 고집하기에 가까이 다가오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던 언니는 내 손을 가만히 잡아 주면서 해맑게 웃어 주었습니다. 사라믈과 어울리는 것이 순수를 잃어버리는 타락의 지름길이 될 수는 없다고 충고해 주던 언니. 어느 상황에 놓여 지든 자기가 서 있는 마음자리만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가시덩굴 속에 던져저도 상처 입지 않을거라는 언니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머리로 하는 이해가 아니라 가슴으로 뜨겁게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진 말자는 생각을 합니다. 내 마음 자리가 어디에 놓여 있느냐를 직관할 수 있다면
어떠한 상황이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원인이 되어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삶에 대한 집착. 쓸데없이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 정말로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을 외면해 버리고
세월이 흘러 비로소 그 소중함의 값어치가 결코 돈이나 그 어떤 것으로도 따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란 이름의 도장을 추억 위에 선명하게 찍고 있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이기에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더라도 후회란 말은 그 누구를 향한 원망의
화살촉이 되어 날아가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이 가서 박혀야 할 곳은 내
심장 저 깊은 곳입니다.
책임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행동하는 결과의 후회가 되기보다는 한 번 정도 되돌려 생각하는
삶의 깊이를 가져야 합니다. 더위와 추위에 너무도 무기력한 현대인들은 함을성이라곤 없습니다.
약간의 자극에도 금세 얼굴을 붉히고 내 몫으로 주어져야 할 대가에는 철저히 따지고 들면서
정작 남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베품에는 너무도 인색합니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우리들 주위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 옳게 세상을 사는 사람이고, 남에게 한없이 나눠 주고 양보하는 사람은
바보 같은 사람이고 현실주의자이기보다 이상주의자라고 따돌림을 당합니다.
순수함을 사랑하는 사람이 멍청하게 보이고 참을성 있고 인내하는 사람과 기다림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놀림거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순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웃음과 땀으로 인해 이렇게나마 살 만한 가치를 느끼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지쳐 가는
육신을 곧게 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