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위기란걸 맞이한다. 허나 사람은 못 이겨낼걸만 같은 위기를 곳잘 이겨낸다. 옛날을 생각해 보아라. 인생의 위기를 모면한 그 아름다운 모험담을. 지금 처한 위기에 당황하지 말고, 옛날 위기를 모면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용기를 가지자. 그나마 한결 마음이 놓이고 힘이 샘솟을 것이다.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자주 이런말을 한다. '지금보다 더 힘든 것도 이겨냈는데...'. 그렇다. 이겨내자. 또다시 위기를 모면하자. 난 위기가 오면 서슴없이 생각한다. 그 아찔한 위기를 모면한 영웅담을.
세상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의 하루는 늘 위기다. 단잠의 10분을 뿌리치지 못해 지각하여 오리걸음으로 아침운동을 하고, 골마루 쓸기로 봉사활동을 한다. 수업시간의 지루함은 참말로 말 못한다. 지루한 수업에 산만해져 친구랑 장난을 치면 선생님한테 불러 또다시 위기를 겪는다.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 '머리 박어'. 골마루 저편에 머리를 박으면서 위기의 절정이 시작된다. 나의 육중한 체중이 중력에 의해 이마빡에 모이면 뇌가 터질듯한 고초를 겪는다. 한마디로 생사의 문을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린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면서 결말이 끝을 맺는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다.
어느날 다시 위기가 날 찾아왔다. 수업이 끝나고 종례시간이 다가왔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교문을 빠져나오면 '난 해방이다'하고 목청높여 소리 치고 싶어진다. 기분이 최고조에 닿으면 만세까지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때였다. 나의 하복부에서 '꾸루룩'하는 경고음이 발동한다. 나의 두 눈동자엔 적색경보가 번쩍인다. 심판의 날이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서서히 바삐 걷는다. 이마엔 어느새 식은 땀이 방울방울 굴러 떨어진다. 아침에 왠지 뒤가 찜찜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터져 버린것이다.
오늘은 운좋게 공장의 문이 다 닫혀 있었다. 평소처럼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면 나는 얼굴을 못 내밀정도로 수치스러울 것이다. 사실 이 일이 모든사람이 겪는 통과의례이긴 하나마는. 정말 하굣길이 멀고도 험했다. 학교에서 그리 가까웠던 집이 왜 이렇게 먼지. 걸음걸음이 점차 무거워 지고 있음을 느낀다. 숨이 가빠온다. 신체 구석구석에 전율이 맴돈다. 걸음을 멈췄다. 터질것 같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 최고의 위기다.
엉덩이에 더욱도 힘을 줬다. 폭발할것만 같은 것이 다시 잠잠해 졌다. 지금이다. 스파트를 내고 빠르게 걸어나갔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높은 고갯마루를 넘는것 같았다. 벌써 바지 뒷부분은 축축해졌다. '오 신이시여'. 역시 사람이란 나약한 존재는 어려운 상황속에선 절대자의 힘을 구원 할수 밖에 없는 구나.
드디어 집이 보였다. 하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선 오르막길을 거쳐야 한다. 이 오르막길을 '마의 20M'라고 부르고 싶다. 오르막길을 걸어 오를때 마다 엉덩이에 강력한 자극이 주어진다. '마의 20M'를 걷느니 차라리 평지 200M를 걷고 싶다.
그치만 용하게 오르막길을 끝마쳤다. 속이 후련했다. 하지만 절정이 끝났으니 무서운 결말이 남아있다. 집 대문을 열었다. 물론 엉덩이에 강한 근력을 불어 넣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집어 던지고 화장실로 몸을 던졌다. 문을 열고 변기에 몸을 바쳤다. 외마디 자그러지 비명이 터졌다.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이마에 탐스럽게 영근 땀방울을 휴지로 닦았다. 아 이것이 유토피아 로구나.
위기를 모면하는 것은 그리 쉽지 만은 않다. '마의 20M' 같은 상상치도 못한 걸림돌이 못살게 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운도 작용할 것이다. 요상하게 닫혀있는 공장처럼 말이다. 그런 운과 묵묵하게 자신의 걸음을 한번씩, 두번씩 옮길수 있다면 위기를 모면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기를 모면했다면 '씨익' 웃으며 달콤한 유토피아를 즐길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