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연이란 게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연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우습긴 합니다만, 우리의 인연은 그보다 더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이든 인연이든 필연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 그저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 한 순간이라도 함께하는 것.. 소망은 그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파묻혀 지내는 동안 뭐 그리도 바쁘고 힘들었던지 길에 널린 공중전화를 볼 때가 아니면, 너무너무 힘들어서 눈물조차 흐르지 않을 때가 아니면 특별히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지냈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머무르며 가끔 생각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그 또한 크게 신경쓰지 않고 넘겨버려야 했을만큼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바빴습니다.
우주의 어느 별인가를 떠돌고 있을지, 아니면 자신의 별로 돌아갔을지 모르는 어린왕자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빨간 버섯이라고 화를 냈을지도 모를만큼 바빴고, 바쁜 척 했고, 바빠야 했습니다.
언제나 분주함 속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를 마감했고, 곤히 잠든 꿈 속에서조차 혼잡하고, 복잡한 형상만이 펼쳐질 뿐이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전혀 단조롭지 못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공간은 나를 잊어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를 대신할 뭔가를 찾아냈을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이란 건 그렇게 돌아가는 게 옳은 일일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어찌나 용납이 되질 않는지, 지금도 그런 모습이 너무나 싫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데.. 그렇게 믿고, 그렇게 믿게 하고,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데..
참 쉽게도 엮였던 인연이니 그만큼 쉽게 풀려지는 게 그리 별스런 일로 느껴지지 않아야 할 텐데 어찌나 그렇게 마음이 아프던지, 그 일로 마음고생이 참 심했다고 얘기해두고 싶습니다.
하기야, 내가 마음이 아프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영원이란 단어로 나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에서 설레임을 간직할 수 있었고, 너무나도 짧은 순간을 예측하면서도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내며 행복했습니다. 짧은 순간을 즐겼다고나 할까요..
역시 창의력, 상상력은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난 그저 쓸데없이 떠벌리는 저런 능력들이 단지 부모들의 욕심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굳이 그렇게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창의력과 상상력은 내가 행복할 수 있게 아주 큰 응원을 보내줬던 정말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영원이란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 있기에 그 꿈처럼 현실을 끌어가려다 다치기도 하고, 상처를 내기도 하고, 결국은 그렇게 아플거면서도 그만큼 어려운 모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만 허락되는 말도 안되는 꿈이었을는지는 몰라도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지금도 인연이란 저 먼 우주의 우리은하 밖으로 멀어져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쉽게 떠나가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아니 믿어야겠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내 웃음속에도, 내 눈물속에도 머물지 않았던 우리 모두를 주기적으로 태양을 돌아 나타난다는 핼리 혜성처럼 자유롭게 떠나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내가 깨달아야 했던 진리였나 봅니다.
진리란 건 원래부터 이렇게 아픈 것이었던가요.. 난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진리를 자꾸만 찾아내고 있었던 바보같은 그 모습으로 그냥 남아 있을것을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찾아올 혜성같은 기억이 있으니 견딜만 할거라 믿습니다, 아니 믿어야겠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이제는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공중전화박스 속에서 자꾸만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고민하는 일도 없을겁니다. 이젠, 걱정 없을겁니다, 우리 모두.
진리라는 게 아프긴 하지만, 나 하나 바뀌어서 이렇게 모두가 좋을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찾을 걸 그랬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아팠으면,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덜 아팠을 것을..
하핫.. 진리라는 게 아프긴 아픈 건가 봅니다. 이렇게도 가슴이 쓰리다니.. 크게 웃어봐도 어찌나 아픈지 쿠션을 끌어안고 바닥에 뒹굴어봐도 아무런 효험이 없습니다.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물기를 훔쳐내고 이불속에 파묻혀 하루를 또다시 거두어내야 하는 건가 봅니다.
요즘은 어찌나 진리를 많이 찾아냈는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한꺼번에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가 다 되는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다움이 아버지가 다움이에게 말했지요. 무슨 책이든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책이 아니더라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일이 좋은 건가요.. 난 그럼 너무 좋은 일을 겪고 있는 걸텐데.. 어서 이렇게 기쁜 일을 알려주고 싶지만.. 그래요, 알고 있습니다. 인연이 닿았던 거지, 인연이 닿아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난 지금 너무나도 많은 진리를 깨우쳤고, 너무나도 좋은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데 더 이상 부족한 건 없을 겁니다.
그동안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공간도, 사람도, 의미도, 기억도, 마음도..
참 우습게도 너무 허술하게 엮인 인연의 끝자락에 닿아 이렇게 좋은 것들 다 얻어 가게 되는군요. 일이 이렇게 되고 마는거군요. 이젠 더 이상 엮인 매듭이 없으니 내가 잡고 있는 인연의 끝자락을 놓아야 하는 건가봅니다.
집착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았고, 미련이란 건 혜성처럼 주기적으로 다가올 기억들과 함께 가끔씩만 들춰내렵니다.
우연이든 인연이든 필연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 그저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 한 순간이라도 함께하는 것.. 소망은 그 뿐이었습니다.
그래요, 그 뿐이었지, 그 뿐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그 뿐이었다는 거.. 그것만 알면 다 아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