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만 줍쇼. 한푼만 줍쇼" 늘 신학교 정문곁에 앉아서 구걸하는 아저씨는 조그만 목소리로 학생 들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신학생들의 대다수는 그 걸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실 신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들은 거의 차비와 식비가 돈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예수전도단(YWAM)에서 훈련을 받았던 탓에 제법 기독인의 사랑을 체험한 일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속칭 불량조직에 가담하지 않고 착한 학생들과만 어울리고 있던 터라 많은 학생들이 나를 좋아했다. 교회에 가면 중, 고등부 학생들도 많이 따랐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사랑의 은사가 조금은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내 속에서 자만심이 싹틀 무렵, 하나님은 나의 사랑을 은연중에 시험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날, 평소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던 신학교 정문 곁의 걸인한테 눈길을 멈추게 했던 것이다. 그 순간 하나님은, "너는 하루 종일 저 걸인과 함께 지낼 수 있느냐?" 라고 묻는것 같았다. 그와 같이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는 등 그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앞으로 선교사가 되려고 한다면 그 걸인과 하루 정도는 함께 먹고 자고 지낼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주님은 나를 위해 죽기까 지 하셨는데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결의 같은 것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약간 두려움이 앞섰다. 주님이 사마리아 땅에서 한 여인을 만났던 것처럼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꺼려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모든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는 개같은 사람이라고 천대하며 기피했던 그 시대에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가서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거의가 사막지대라서 샌들을 신고 다니거나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녔다. 그러므로 손님이 오면 종이 손님을 맞이해 발을 씻겨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만유의 주님이시며 모든 왕중의 왕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이다. 그날 나는 이와같은 주님의 사랑을 되새기면서 내 주머니에 있는 천 원 짜리 몇 장과 백 원 짜리 몇 개를 그 걸인에게 던져주고는 도망가듯이 강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 때 나에게는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너 정말 저 걸인을 사랑할 수 있느냐? 네 안에 주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고 또 사랑의 은사가 있다고 한 것이 사실이냐?" 그 질문은 수업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내안에 있는 사랑을 확인하기로 했다. 어느덧 나의 발길은 이미 그 아저씨 앞에서 멎었고 내 얼굴 앞에는 크고 더러운 손이 놓여져 있었다. “한푼만 줍쇼!”언제나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그의 몰골은 정말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그야말로 어떤 유행가의 가사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상대였다. 누더기 옷에 목과 얼굴은 몇 달간 씻지 않았는지 까맣게 땟국이 흘렀고, 더덕더덕 엉킨 머리칼은 겨우 모자 속에 감춰져 있었다. 손톱에는 까만 메니큐를 바른 것 같았고 몸에서는 하수구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님!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기도를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말을 건넸다. "저... 아저씨! 오늘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 걸인은 이상한 듯 몸을 움츠리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빨리 말을 이었다.“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아저씨와 함께 식사도 하고 목욕도 하고 같이 교제하라고 하셨거든요. 그러니 오늘 하루는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은 한 참동안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나의 본심을 알아차렸는지 나를 따라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면 몇 천원이라도 더 벌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와 함께 지하철을 탈때부터 일은 벌어졌다. 그 때는 마침 여름날이어서 온갖 악취가 뭇사람의 코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피해 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내 얼굴은 금새 홍당무가 되면서 창피한 생각이 몰려온다. 정말 아찔한 시간이었다. 지하철을 탄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몇 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그 걸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시선둘 곳을 잃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자존심이 박살이 나는 순간이었다. 비좁은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은 내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설상가상이라 할까. 마을버스에서 내려 동네에 들어서니 나와 친분이 있는 동네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멀쩡한 청년인줄 알았는데 걸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니, 저 사람도 약 간 돈 사람같애... 아이구 냄새야. 쯔쯔" 내 마음은 몹시 어지러웠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더 오만해져 갔다. "내 안에는 이런 사랑이 있습니다." 라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우리집은‘사랑의 공동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서로 성장 환경과 신앙의 색깔이 비슷하고 교육정도와 사고방식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우리집은 많은 교회의 청년들과 중, 고등부 학생들이 와서 내면의 상처를 치유 회복시키고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집의 열쇠는 모두가 알 수 있는 곳에 보관함으로써 아무나 들어와서 쉬거나 먹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단 걸인만은 제외하고..... 이것이 사랑의 종교를 믿고 있는 우리들의 사랑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걸인과 함께 집에 도착했을 때 다시 갈등이 밀려왔다. 집 열쇠를 놓아두는 곳을 이 걸인이 알면 어떻게 하나...? 문 앞에서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열어제첬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재촉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의연하게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주님을 닮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기도를 했다. 그러고나니 오랜동안 갈등하고 있었던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마치 막힌 하수구가 뚫리듯이... 그때부터 주님께서는 나에게 용기를 주시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깨끗한 옷가지들을 그 걸인에게 갈아입히고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 주인은 그 걸인이 문 앞에 들어오기도 전에 그를 막았다. 나는 그 주인에게 사정사정하여 겨우 들어 갈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기쁜 마음 설레이는 가슴으로 목욕탕에 들어갔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저씨! 때 밀어 드릴까요?”그는 쑥스러웠던지 잠잠히 미소를 흘리면서 머리만 끄덕였다. 목욕탕에 가본 기억이 이십년도 더 되었다는 그와 서로 알몸으로 때를 밀어주는 사이, 우리는 영락없는 가족이나 이웃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걸인과 비걸인의 벽도 완전히 무너지고. 사람은 누구나 목욕을 하면 깨끗해진다는 이 사실을, 내어찌 일찍이 깨닫지 못했을까... 그 날 그 걸인의 때를 밀어주다보니 내 마음속의 때도 조금은 씻겨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