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부. 옛날 이야기
끼이익.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를 깨우면 나는 '또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젯밤 내 소원은 또
다시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밤사이 잠든 채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내가 살던 곳
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이 두눈을 떳으면 좋겠다고..잠들기전에 간절하게 기도를 했는데 두눈을 떳을때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어제 아침과 다를바없는 하얀 천장이다.
말없이 일어나서 화장실로가 세면대의 수도꼭지 방향을 틀어본다. 쏴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시원
하게 하수구를 향해 직진하고있다.나는 말없이 손가락을 가져다 되었다 다시 떼내었다 하면서 물의 온
도를 맞추어본다. 얼굴을 적시고 머리의 정수리부분을 세면대에 박고서 머리가 흠뻑 젖도록 내버려둔
다. 뿌옇게 가려져있던 안개가 개이듯이 정신이 또렷해지고.. 또 다시 확인 하게 된다. 지독한 하루가 다
시시작되고 있음을..
처음에는 너무 괴롭고 슬프고 서러웠는데.. 지금은 덤덤해져버렸다.
그렇다, 나는 꽤 오랫동안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처음 괴롭힘이 시작되었을때는 투명한
에메랄드처럼 슬펐던 내 마음은 점점 푸른빛이 진해지면서 투명함을 잃어 파랗게 변하다가 어느샌가
남색으로 변하게 되고 다시 검게 그 색이 변하게 되었다. 검은색으로 마음이 멍든 후로 부터는 어떤 색
을 덧데어도 검은색에서 변하지않고 점점 더 어둡고 가라앉게만 되었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그토록
진했던 검은색도 어느 순간 회색 잿빛으로 변하더니 기어이 아무런 색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색이 느껴지지 않는, 덧칠조차도 할수없게 색 자체가 사라져 버린것이다.
감정은 매말라가는데 반해 육체의 감각은 날로 예민해져서 고통은 더해갔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조차 말
라버린 나는 그들에게 아무말없이 덤덤해져 가고있었고, 덤덤해 하는 내 모습이 그들을 더욱 자극했는
지도 모른다. 슬프지도 않았고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수없게 되었다. 미움이나 증오보다는 죽
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마음에 남았는데. 그저 피하고 싶었고 멈추고 싶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쉬워하는것은 금방 빠져 나가기 마련이라, 어느새 등교해야할 시간이 되어 버렸다.
거울에 비친 나를 쳐다보니 아무런 표정이 남아있지 않았고 마주친 눈동자의 색에는 빨려 들어갈것 같
은 느낌이 들었다. 책가방을 등에 매고 신발을 신고서는 말없이 대문을 빠져 나온다. 엄마가 부르는 소
리가 들리지만 애써, 걸음을 재촉해서 학교로 향한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내가 설곳이 사라진
것같은 기분이 든다. 단순히 내 위치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점으로 사라져 버리는것은 아닐까하고 생각
된다. 하나 하나씩 내게 주어진 영역을 포기하다 마지막에는 나 자신마저 놓아버려 자그마한 점이 되어
버릴것 같은 예감... 무엇인가를 지켜야 한다는것이 내게는 그저 너무나 힘든일이 되어버린것이다.
하지만 지킬것이 사라지면 나는 빼앗길것도 없으니 자유로워 질수있지 않을까.. 그것은 이 괴로움에서
해방될수있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문득 나는 세상에 무언가 빚을 지고 태어난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그 이유를 납득할수가 없기때문이다. 나는 벌을 받고 있는것일까? 스스로는 기억 못하
고 있는 큰죄를 지어서 이제서야 그 벌을 받고 있는것일까? 나를 괴롭히는 그 자식들은 무슨 기분일까.
나에게서 무엇을 찾기 위해 나를 궁지로 내모는 것일까. 수컷의 본능일까.. 다른 수컷보다 위에 있다는
그 만족감? 나는 고개숙이고 그들은 웃고 있고.. 그 녀석들은 매일 매일 그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나
는 단지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하다. 이 녀석들과 헤어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게 되는걸까.
사실 그 조차도 내겐 자신없었다.나는 이 세계에서 이런한 역활을 가지고 태어난 녀석이면 어떻게해야
하지, 어쩔수없는 내 운명같은것 그래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그런것이라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항상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서둘러 출발하는데 언제 또 끌려갈지 모르기 때
문이다.하지만 집에 도착했다고 해도 내 마음이 편해지는것은 아니다. 집에서 내가 고작 하는일이라고
는 거실에서 tv를 보는것이 전부,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시기 때문에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누군가
에게 인사해야 할일은 없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때는 그저 혼자 있고 싶은 마음뿐이다가도 이렇게
혼자 집에 있으면 나는 극도로 외로워져서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땅히 누가 있어주었으면 하는지는 나 스스로도 알수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바라는 그 상대
방은 언제나 상상속의 그 누군가일 뿐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본다, 왜? 왜? 왜?
한번은 건물 옥상에 서본적도 있다. 내가 도망칠수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자살을 택한것이었는데, 하지
만 그날 난 뛰어 내리지 못했다. 유서를 써서 신발밑에 눌려두고는 두발을 난간위로 올렸을때, 갑작이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순간 내 몸이 살짝 기우뚱했는데 나는 악!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지면서 쓰
러졌다. 시멘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고 넘어진 나는 꼼짝도 할수 없었다. 두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몹시도 떨렸고, 나는 누가 들을까봐 입술을 깨물고 끄윽 끄윽 목젖으로 울었다. 내게 남아있던 마지막
자유조차 본능이라는 것에 밀려 자유로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말없이 끌려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했다. 난 한번도 죽어본적이 없는데, 본적도 느껴본적도 없는 것을 나는 두려워 하고 있는것이
다. 그저 내 본능이라는 녀석이 죽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나의 본능'인데도 그것에 떠밀려서 살아있
다는것, 결국 내게 주어진 자유라는것은 없다는 사실이..너무나 슬펐다.
어느새 나의 기도는 죽여달라는것과 혼자가 되고 싶다가 전부였고, 가끔 나를 괴롭히는 녀석들이 다리
가 부러져 학교를 나오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기도 했으나, 죽여달라고는 할수없었는데 정말로 죽
어버리면 큰 죄책감이 들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죄를 감당할 자신조차 없었던 것이다.
만약 다시 시작할수있다면 나는 아무하고도 나를 연관시키지 않고 살고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손내밀지 않고 다른 누구도 나에게 손내밀지 않음으로서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고 아무
것도 얻어내지 않고, 완벽히 혼자 일수 있다면 그저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할수있다...
나는 간절하게 소망했다.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게 나를 놓아달라고..
시간이 지나고 내가 성인이 되었을때 한번도 나를 안아준적이 없던 신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누구
의 손도 닿지 않도록 나를 만들어 준것이다. 내 마음은 색을 완전히 잃어 버려 누구의 색도 와닿지 못하게 되었고, 그저 나를 통과해 지나칠뿐이였는데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누구와도 마음이 닿지 못하는 순간이 계속되자 그때 나는 내소원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된다. 그리고 신은 선량한 그 무엇이 아니라 그저 냉정한 저울이라는것도..
내가 내인생의 저울에 추를 하나씩 하나씩 올려 놓을때,
올려놓은 추의 방향이 바람직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신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저울을 들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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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글쓰는건 쉽지 않네요-_-;;
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