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하늘이 파랗다. 파아란 하늘에 구름 한점 없는 겨울날이다.
겨울. 전기장판 빼고는 다른 난방시설이 존재하지 않지만
버선? 그래. 버선처럼 두껍게 나의 두 발을 감싸고 있는 따스함이
이 차가운 한파에서 골방을 격리시켜주었다.
구름 한점 없이 파란 하늘, 파란 벽지로 둘러싸인 나의 파란 방의
파아란 창문 너머 펼처진 블루는 우울함을 상징한다.
어느정도 세련되게 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나 자신은.
그러나 이 세련되다고 하는 기준은 나 자신이다.
모든 나의 자유, 행복의 기준은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다. 그런데 너, 자신 있냐?
......
인간의 이상한 본성이라는 건 고독함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의 자유, 행복을 자랑하고 보여주고 함께하지 못하면
안달을 못하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태생적인 한계다.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이 한계에 도전하며 살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살아왔다. 응? 최면이라고?
나의 외면적인 인격이 붕괴되고 난 다음엔, 나는 어릴 적에 그래왔듯이
도망쳤다. 그래, 도망쳤다. 이 세상으로부터.
그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나는 도망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왕따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누군가와는 소통하길 바라는 게 또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인데,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나는 지금 그 누구와도 소통할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하려고 하고 있다.
왜 그러는 걸까? 왜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이제 핵심적인 것을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그런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 이거냐?
......
요즘 부쩍 자문자답이 많아졌다.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 왜 이럴까.
옛날에는 그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만족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요즘 들어와서 이 삶에 후회를 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후회? 그럼 지금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다시 세상에 나가라고?
내 모순적인 이 골방 속에서의 삶은 지금까지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나는 우울한 것에서 행복함을 구했다.
기쁘기 위해서는 치뤄야 할 고통이 너무 컸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보여줄 만한 사람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소심해서 사람이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다.
그럼 나 더러 어쩌란 말이야?
이 세상은 나의 자유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이 세상은 나를 짓밟으려 들었다.
짓밟히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나를 짓밟아야 했고
이 무모한 노력 또한 결국에 가선 부질없는 짓으로 판명이 났다.
자신감이 상실된 채로 나는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늘 익숙했던 대로 도망치면서 사는 건 아닐까.
자살자의 허풍? 누군가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논했을때 언급된 말이다.
자살자 유형. 그는 그저 전쟁, 파괴, 신세계를 위해서
더럽고 비열한 정치적 능수능란함을 마음껏 이용했던 사람이다.
동시대 그 누구도 그가 결국 이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의 측근들 마저도. 히틀러는 처음부터 전쟁과 파괴를 염두에 두고 모든 걸 걸었던 것이다.
나는 히틀러가 아니다. 히틀러도 실패자였지만 그는 그가 추구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일어섰다.
나는 목적이 없다.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먹고 살 수는 있고
나에게 허용된 세상의 작은 공간에서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그런데 뭐가 불만인 거야? 왜 나는 만족할 수 없는 거야?
......
티 포트에서 찻잎이 춤을 춘다. 투명한 티포트를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는 이 찻잎들의 하염없는 춤사위를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차츰 붉게 변해가는 물 속에서 찻잎들은 부들부들 떨고 있다.
마침내 찻잎들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서 토해낸 붉은 빛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불을 끄고 또로로록 - --- 찻잔에 홍차가 나선형을 그려가며 추락해간다.
모카 빵의 커피 향이 입 안 가득 퍼지고 있는 와중에
홍차향이 슬며시 불려져 나간다. 모카빵의 딱딱한 겉 속에는 부드러운 건포도가 숨겨져 있다.
홍차의 은은한 향이 커피의 맛과 합해지는 순간이 건포도를 덮쳐온다.
쩝, 물론 나는 이 순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몇 년 째 나의 주식은 모카빵과 홍차, 우유, 가끔 삶은 계란 뿐이었으니까. 이제 익숙해 질 만도 하지.
익숙해 질만도 한 데, 이 아련하게 맛을 내는 게 나는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다. 아주 익숙한 거지만.
하지만 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기 시작한 걸까. 왜?
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모카빵의 은은한 맛과 다를게 뭐 있는가.
인생의 즐거움을 차지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이런 모카빵의 맛이라는데
왜 나는 모카빵의 맛을 남에게 자랑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남에게 나의 인생을 나눠주지 못해 안달하는 걸까.
대답을 얻는 순간
나는 내 인생을 나눠주려고 달려들다가 다시 영혼이 무너져 죽거나
아니면 영원히 내 삶을 내 자유 속에 가둬버리거나.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