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 내 영혼이 다치고 싶지 않아서, 내 맘대로 살고 싶어서. 내 자유가 억눌리는게 싫어서.
내가 그 누구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 건 모두들 내 자유를 억누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 모두들 나를 억누르려고만 했지. 억눌렀지 그리고. 내가 병신이 되기 전에도, 병신이 된 후에도.
하지만...
내가 병신이 된 건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였다. 그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저 돈을 위해? 명예와 권위, 권력을 위해? 남들보다 더 잘나서 폼 잡고 살기 위해? 그래, 그런 거였다.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다음 늘그막을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고? 그래, 그런 거였다.
그러나. 내가 그땐 너무 어려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너무 컸다.
자유란, 단 1분 1초도 중간에 정지될 수 없다는 것을. 미래의 자유를 위해 오늘의 자유를
억압한 다는 것은 내일 살려줄테니까 오늘 죽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의 어린 시절로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간 눈물이 흐른다. 아련해서 그렇냐고? 아니다. 너무 무서워서 또 어린애처럼 훌쩍대는 것이다.
한참을 울고, 또 울고, 부들부들 떨며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이불을 움켜쥔다. 너무 무섭다.
내가 왜 강해지려고 했는지, 왜 남들보다 잘나고 싶었는지에 대한
그 끔찍한 기억들이 나의 기억을 다시 휘젓고 있다.
... ... / 누구야... 또 저 녀석들이야? 야, 누구냐고! /
거기 너, 수업시간에 뭐하는 짓이야? / 서, 선생님, 그, 그게 아니라요.../
듣기 싫어! 저 뒤에 나가서 손 들고 있어! / 서, 선생님... 흐흐흑... /
주위에서는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사이렌 소리처럼 나를 엄습한다. / 조용히들 해! / 선생님께서 거드신다.
윗옷을 바지 밖으로 뺀다. 어김없이 등짝에서 지우개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온다.
익숙한 솜씨로 등 뒤를 훑는다. 대 여섯 장의 포스트 잇 종이들이 떨어져 나온다.
왠지 축축하다. 끈적거리는 느낌을 보니 침이 아니면 딱풀이다. 훌쩍, 콧물을 닦는다.
쉬는시간 종이 울린다. 나에게는 지옥의 문이 열리는 신호음이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대 여섯 명의 녀석들이 나에게 실내화를 던진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웅크리고 있다. 한 녀석은 나의 필통을 가져와 쓰레기통에다 내용물을 부어버린다.
나머지 녀석들은 그저 멀뚱 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제 할 일 하기에 바쁘다.
나는 쓰레기통으로 뒤뚱거리며 달려간다. 어림도 없다. 잽싸기로는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녀석이다.
내가 무슨수로 뒤쫒나. 그래 만일 잡았다 해도 어쩔건데. 괜히 안경만 또 부러뜨리고 말게.
일통이라고 불리우는 녀석이 실실 웃으며 다가온다. 다짜고짜 내 뺨을 갈긴다.
나보고 뭐라 뭐라 물어본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다. 나는 또 병신처럼 질질 울고만 있다.
K-1이 한참 유행하던 때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고스란히 그 녀석의 로우킥의 정확도와 힘을
온 몸으로 측정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나는 다시 내 자리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교과서가 없다.
어제는 화장실 좌변기 뒷구석에서 찾아냈었다. 오늘은 어디에 어느 녀석이 숨겼는지 감이 안 온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거지. 또 눈물이 밀려온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또 부들부들 거리고 있다.
점심시간이다. 밥과 김치, 나물 외에는 딱히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남아 있지가 않거든.
그마저도 시간이 별로 없다.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넣고 있자면 어김없이 욕설과 주먹이 날아들어온다.
밥에 국물을 부어버리고 달아나는 건 예삿일이다. 침까지 뱉고 달아난 적도 있었다.
어쨌든 배가 고프니 빨리 밥을 먹고 나는 운동장을 향해 미친듯이 달아난다.
달아난다. 그래, 달아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