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로로로로로록 -----.
소주잔 속에 투명한 약물이 방울을 굴린다.
난 이 약물의 놀라운 효능과 함께 그 유독한 후유증에 대해 항상 놀라고는 한다.
내가 과거로 향하는 몇 안 되는 통로. 내가 취해버렸을때 내 모습은
정말 내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을 연출하고는 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 맘에 안드는 장면들을 아주 조금밖에 기억할 수가 없다. 하지만 돼지가
바라는 건 이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늘상 불만인 녀석이니까.
왜 이렇게 되었는지 라고?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그러는 거지?
난 별로 바뀐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믿고 있는데 말이지.
그렇잖아, 별로 바뀐 게 없잖아. 그저 나의 골방으로 들어가게 된 이후로 말이야.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건배 한 판에 바삐 알코올이 내 두뇌를 농락한다.
돼지 녀석은 예전부터 주당이었다. 쉴 새 없이 알코올이 넘어들어간다.
야 이 또라이 같은 색히야. / ...? / 너 정말 왜이래? 원래 너 이런 놈 아니었잖아? / ... /
너 같은 녀석이 왜 이런 폐인 같이 살고 제끼냐, 이 말이야 이 자식아. / 그만해... /
야, 이 자식아. 내가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너 다치고 난 다음에... / 그만해! 이 색히야! /
소주잔은 몇 백원 안 하지만 꼭 이런 자리에서 깨지면 주인장은 안 좋은 눈초리로 쳐다본다.
아드레날린이 알코올과 혼합반응을 일으킨다. 쳇, 오늘은 그냥 조금만 마시고 말려 했는데.
물컵에 소주를 가득 부어서 원샷 해버린다. 돼지는 적잖이 당황한 듯 하다.
쩝...
야, 이 돼지 색히야.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란 말이야.... / ...? /
나 병신 되고 짤렸을 때 사람들이 나보고 뭐라 했는지 알아? / 뭐라 했는데? /
에라이 이 병신 새끼, 너 같은 쓰레기 있어봤자 아무 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새끼가
진작에 뺨 한대 더 갈겨줬어야 했는데.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져 이 자식아! 였어... / ... /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병신 취급했어. 그래, 병신이니 병신 취급 하는것도 당연하겠지.
모두다 내 잘못이다, 너는 퇴물이고 민폐다, 너 때문에 모든 게 잘못되어 버렸다. / 야, 그건 오해야! 난../
알어 알어 이 색히야 난 너희들은 믿어. 아니, 믿었어.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하지만 너희들도 내 속은 몰라. 내 타들어갔던 속은 너희들도 몰라.
아니, 내 부모님도 몰랐을 거야. 너도 사슴도 백곰도 턱돌이 쥐돌이... 다 몰라. 알 수가 없었을 거야.
햐.. 오랜만에 이름 나오니까 보고 싶기도 하네. / 하긴. 요즘은 연락도 잘 안 된다만. /
그래... / 그러니까, 니 말은 사람들이 싫어졌다는 거 아냐? 그래서 이렇게 골방에 짱박혀 산다는 거 아냐? /
그래. 맞는 말일거야. 하지만 아무도 내 속은 몰라. 아무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어. /
야. 애 색히야. 말해봐. 너 나 알잖아. 응? 이 색히야. 어쩌다가 자만심의 상징이었던 니가
개폼잡으며 남 앞에 나서지 못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고 지는거 죽기보다 싫어했던 니가
이렇게 병신이, 참 이거 말이 이상하네, 하지만 진짜 병신이 되었는지 말해보라고! /
...... 나도 모르게 돼지 녀석이 맥주를 추가 시켜놨다. 맥주잔에 1:1의 비율로, 아마 1:1 이었으리라.
소주와 맥주를 골고루 섞어 준 다음 그대로 입 안에 갇다 부어버린다. 코트에 다 묻어버렸다.
에이.. 썅... 너, 자유 란 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어? / 뭐? 자유? .......? /
난 말이야, 골방 안에서 드디어 자유라는 걸 찾았어. 내가 미쳤었지. 그 바닥에서 내 자유가
어떻게 병신이 될 건지 생각도 안 해보고 그런 선택을 했다니 말이야. /
슬슬 돼지 녀석이 뭐 저런 미친 색히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다.
난 자유를 찾아 헤메고 있어. 옛날 부터 그랬고 우리 어렸을 때 같이 놀던 그 때도 그랬을거야.
난 도망쳐 나왔어. 그리고는 나의 파란 방으로 들어갔어. 그 곳은 아무것도 날 건드리지 못해.
나를 괴롭히지 못해. 나의 자유를... 나의 자유를.... 내 맘대로 할 자유를...
나의 영혼... 그래, 그 아름답던 거... 이제서야 다시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던 거...
순간 욱 하고 올라온다. 비틀대며 화장실로 달려들어간다.
운 좋게 좌변기가 비어있다. 조준을 잘 해야 한다. 조준을....
....
....
....
....
....
어?
아... 젠장... 하고 일어나려니 또 끊어질 듯이 아파온다.
이번엔 머리까지 빠개질 것 같아서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침대다. 파아란 벽지가 정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침대 옆에 하얀 봉투랑 견디셔, 그리고 쪽지가 굴러다니고 있다.
돼지... 걔가 남겨 놓은 거 겠지...?
햐얀 봉투에는 20만원이 들어있다. 어... 돼지 얘 그렇게 잘 살지는 못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쩝.
견디셔. 견디셔 가지고 내 머리가 맑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래도 정성이니 일단 들이켜본다.
쪽지... 둥글둥글하게 생긴 글자체를 보니 돼지가 쓴 게 맞는가보다.
83, 난 네가 정말 사람들이 두려워서 이렇게 숨어 사는 건지, 아니면 니가 정말로 바라는 뭐가
더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계산은 내가 해놨으니 걱정 말고 푹 쉬어.
다음에 연락할게, 그 때는 사슴이랑 쥐돌이 도 함 모아볼게. /
으.... 그 전에도 가끔 이런 적이 있었지만 역시 기분이 나빠진다.
고마워한다는 감정이 오래전부터 어색해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제 무슨 말을 내 뱉어 버린 거야... 쪽팔리게...
왠지 어제 한 말은 기억에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다.
돼지 그 녀석이야 괜찮겠지만 그 녀석한테 말해봤자 이해시킬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당연히 이해시킬 수가 없지.
이건 나 스스로도 아직 이해하지 못했거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왜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지.
그러면서도 왜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는지.
그런데 왜? 옛 친구들도 믿지 못하면서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는지.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