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났다.
통장에 70만원이 어김없이 적립되어 있다.
70만원은 아주 적절한 돈이다. 난 적립일자 전날에 돈이 만원이상 남게 한 적이 없다.
알뜰하게 사는 거지. 알뜰하게 벌어서. 더 이상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난 그저 행복하면 될 뿐이다. 행복하면, 그래 행복하면.
내일 행복하기 위해 오늘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나에겐 견딜 수가 없다.
행복이라는 단어, 자유라는 단어는 앞서 얘기했다시피
1분 1초라도 중단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공상, 아니 망상이라고 해야하나.
이는 1분 1초라도 중단되지 않는 시나리오를 전개한다.
베이스 기타의 중저음을 칠 만한 새로운 노래가 나오는 날짜를
기다리는 것, 새 홍차 잎들이 택배로 도착하는 것,
그래 그런 날짜들만이 나의 달력에 조금이라도 다른 특성을 부과한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테레비에서 무슨 방송을 하고 있는지 정도다.
그러나 나는 테레비를 보는 걸 싫어한다. 테레비는 바깥 세상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테레비 속에서는 사람들이 나온다.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물론 대답은 듣지도 않고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자기들끼리 희희낙락거린다. 나는 왜 구경꾼으로 세워둔거지.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데 나를 또 무시하는 듯하다.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걸 원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주장할 자신이 없다.
자존심, 우월감. 그런 단어는 스스로 지워버렸다.
이런 단어들의 파편마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남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나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뭐가 불안한 거지? 목적이 뭐지? 나의?
나의 목적은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하루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뿐인데
행복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 중에
목적의 달성이 아주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하더라.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과 웃음이 더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하더라.
그럼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행복은 반쪽짜리인가?
지금 내가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나에게?
이에 대한 대답을 얻고 싶다.
나 스스로 자문 자답해서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면제 한 통을 통째로 부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수면제의 유통기한은 앞으로도 몇 년 더 남았다. 내 서랍 아래 몇 통이 고이 보관되어 있다.
언제라도 나의 마지막 날은 내가 스스로 정하겠다는 마지막 오만함이 발동한 과제겠지?
액체, 알약, 링거까지 고루 갖춰놨다. 불법이라고는 말 안하겠다.
하지만... 사람은 너무 행복해지면 죽는다고 했다.
살아갈 이유를 상실하면 살아가지 않을수 있는게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골방 속에서 몇 년을 너끈히 살아오고 있다.
앞으로도 몇 십년이고 더 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놨다.
내일이 오늘과 같다라는 사실만 보장이 된다면.
그래, 내일은 오늘과 본질적으로 같아야 한다.
나는 해답을 얻는 걸 두려워하면서 해답을 얻으려 하고 있다.
해답을 얻게 되면 나는
죽거나
영혼이 부서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해답을 얻지 못하면
나는 언제까지나 이러한 모순 속에서 우울함을 노래할 것이다.
뭐가 더 좋은 거지?
이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에 별로 불만은 없다.
파란 나의 골방은 나에게 언제나 아늑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해가 질 때면 보랏빛으로 물든 나의 시간들에
나는 언제나 기뻐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찾아다니고 있다.
모임을.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을.
사람의 따뜻한 가슴이
과연 내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나의 행복에 포함될 수 있을지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