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강해지려고 했을까? 단순히 무시당하기 싫어서? 남들한테 괴롭힘 당하는게 싫어서?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당하는 것이 어느 것에서 문제가 되었을까..?
문제가 되었을까? 남들에게 괴롭힘 받는게? 그래서 도망치며 살아왔던 게?
그 녀석들이 짓밟았던 것을 지키고 싶어서 그랬을 거 아냐? 그럼 그게 뭐지?
그래. 그게 나의 자유. 자유다. 영혼의 자유. 순수함. 아름다움. 그거 였다.
그걸 그 녀석들은 짓밟았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대인관계가 단절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끊임없는 공상 속으로 빠져들어야만 했고 나의 영혼의 자유는 이 공상 속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친구들이 많아지고 강해져야 한다는 욕구에 사로잡힌 뒤에는
난 우습게도 나의 영혼을 바라보지 않고 살았다. 아니, 바라볼 틈이 없었다. 너무 바빴거든.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나는 이중인격자라고 불리웠었다. 이중인격자.
일하거나 놀때, 친구들과 있을때는 그냥 쾌활하고 자기 자랑 잘하고 지기 싫어하는 83이 나타나고
혼자 있을 때, 우울할 때는 나의 잠재되어 있던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왕따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둘은 통합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 절대로 이 둘은 하나가 될 수 없는 나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되었다. 적어도 그 곳에 가기 전에는.
그 곳에서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어릴 적의 지옥이 조금 다른 형식으로 나를 덮쳐왔다.
아무리 강해지려고 해도 강해 질 수가 없는
그래서 끊임없이 나의 영혼이 짓밟히는 순간들이 나를 무너뜨려왔다.
그저 몸이 무너지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이 곳은
나의 영혼에 족쇄를 채워 현실의 벽 안에 가둬버렸다.
나의 자유를 이 곳은 직접적으로 말소시켜버렸다.
그래, 말소당했다. 나의 자유는. 나의 영혼은.
그래서 나는, 비록 강해진 모습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서서히,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내려가고 있었다.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그러던 와중에 나의 병이 구체적인 양상으로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이른 바 병신 이 되어가는거지. 구체적으로.
결국 나는 이 곳에 남아있을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사표를 내고 떠나버렸다.
몸은 병신이 되고 남들은 병신이라 욕하고, 그럴거면 뭐할려고 여기에 왔냐고 물었다.
너 같은 쓰레기가. 있어도 짐만 되던 너 같은 쓰레기가. 잘 생각했다. 당장 꺼져라.
내가 이 바닥에서 들은 마지막 한 마디였다. 나는 도망치듯 그 곳을 떠났다.
내가 무너져내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이미 사표를 쓰고 도망쳐 나오는 과정 속에서
과거의 당당했던 나, 잘난 척하고 강해보이려고 발악하던 나는 산산히 부서져가고 있었다.
오직, 그 옛날 처럼. 괴롭힘에서 도망치고 있는 왕따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을 뿐.
그리고는 십 몇 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차츰 옛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하게 되었다. 하물며 별로 호감도 안 가지고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집중하지 못했고 나의 마지막 학업의 길, 먹고 살 길을 뚫기 위한 길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주목 같은 건 필요없었다. 그저 나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필요했다.
상처받고 족쇄에 발이 부어버린 나의 작은 새, 작은 영혼이 그 갸냘픈 날갯짓을
멈추지 않도록, 나의 품에 안겨 부들부들 떨때 꼭 안아 줄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 두길 바랬다. 실제로 남도 나를 내버려뒀다.
나의 지식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 학업에 대한 능력은 내가 유일하게 건져 낼 수 있던
나의 붕괴된 자아에서의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굳어버린 채로 남아있다.
세상은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다 봤다. 아무도 나를 집적거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를 통제하려고 들지도 않았으며 나를 괴롭히지도,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은 끊임 없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끊임 없이. 나의 영혼을 엿보려는 듯. 그렇게. 그래.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준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한 때 살아있었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의 나는 보여준 적이 있었다. 친한 친구들한테
그러나, 남아있는 잔재들로 지은 나의 집은 더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