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Lord of flies)
-윌리엄 골딩
나는 이 책을 읽고 전에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난 무조건 문명을 옹호한 것 같다. 사실 나에게 그때는 문명은 나의 지표였고, 야만이란 한 낱 쓰레기같이 사라져야할 인간의 잠재의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문명이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인가? 문명이 제공하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쾌락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문명은 악이요, 독일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문명이 제공하는 물질에 휩싸여 정신과 육체를 잊고 있다. 여기서 육체는 쾌락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힘이고 건강이다. 무탄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 소위 문명인들은 그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며 괄시하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유한 문화를 무시했다. 그러나 한 ‘문명인’이 느낀 그 ‘야만인’들은 문명인보다도 더 높은 정신의 소유자였다. 자연을 느끼며 자연을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자연 자신의 것으로 보며 살아가고 아주 작은 일에라도 고마움을 느끼고, 어떠한 나쁜 일이라도 자신에게 좋은 일로 생각하려하는 그들은 우리에게 없는 모든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난 이 ‘파리대왕’에서 오히려 문명이라는 것이 인간 내부의 본성인 ‘야만’을 억눌러 오히려 그 내부에서 더 크고, 정말로 잔인한 ‘야만’을 만드는 것이다. 잭의 성가복. 잭의 야만성을 무참히 짓밟지만, 매우 커진 ‘잔인한’야만의 힘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문명.(사실, 이 소설에서도 처음에 성가복이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만일 잭이 무인도에서 살지 않고, 문명세계에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야만이 잭에게서 뛰쳐나왔을 것이다. 난 순수한 야만, 즉 인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간이 가장 야만스러울 때가 어느 때인가? 그것은 문명에 멍들지 않은 아기 때이다. 누가 말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그 순수한 야만의 시절인 유아기 때 가장 선할 것이다. 결국 그 아기가 자라나면서 겪는 문명의 어두운 면들. 그것들이 인간의 순수한 야만을 억누르고 변질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처음에 나온 야만, 즉 Jack의 야만은 문명이 변질시킨 야만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야만들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행동을 의미하는 야만이다. 그러니까, 나는 야만을 순수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읽었고, 그 야만은 잔인함이나, 인간의 짐승성(맞나?)과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