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을 읽고 나서 나의 생각
때로는 소설에서 인물 간의 성격이 그 당시의 사회를 대표하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이광수의 소설 '무정'을 읽고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한 남녀간의 애정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민족에 대한 각성으로
까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곧 이 소설 안의 인물간 사이의 갈등이 곧 그 당시 사회 당시의 대표적
인 이념간의 갈등인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
다. 그것은 바로 신교육을 통한 민족의 계몽을 주제로 한 부분이다. 앞서
이념간의 갈등이라고 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것은 바로 봉건
적인 이념과 반봉건적인 이 두이념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이념은 각각 과거의 '영채'(유교 교육을 받은 순종적인 여인)와
'이 형식'(가장 형식? 적인 인물), '김병욱'등의 인물들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이념이 신교육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그리
고 개화기의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 '이 형식'의 행동을 살펴보
면
첫째, 그는 진실한 사랑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선형'의 집안과 외모,
그리고 미국 유학에 눈이 멀어 그녀와 결혼을 택했고, 영채에 대한 사랑
은 우선적으로 자신의 스승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인 것이었다.
둘째, 그의 잘못된 사회 인식이다. 그 당시의 우리 나라는 식민지였다
(박진사가 애국지사로 체포됐다는 것으로 보아서 추측).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 우리민족을 계몽하려 했던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다시 말해 새
장 안에서 새가 날고 싶은 욕망에 날개를 파닥거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셋째, 그의 잘못된 교육인식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교육과 민족의 계몽
을 위해서 단순히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시고
있다. 뿌리가 있어야 식물이 지탱하듯이 우리의 문화에는 신경 쓰지 않고
우리 민족을 어리석게 생각하는 그는 오히려 문화적 사대주의를 가진 사
람이 아닐까?
이러한 그릇된 행동과 생각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면 신교육
을 주장하려 했던 작가의 잘못된 주관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더
욱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영채,선형,우선,병욱)을 보아도 그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이 오는 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
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현 실정에 맞지 않는 새로운 교육 환경을 우리사
회에 맞추려다가 얼마나 큰 낭패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학교를 예로 들어서 보면 수행평가를 들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미국의
교육방식을 떠온 것인데 환경과 조건이 맞지 않은 우리학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교육은 도박이 아니다. 교육
은 나라를 짊어질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하나의 젖줄이다. 또한 이것은 새
로운 것만이 존재해서도 안되고 보수적인 것만도 아닌 스스로의 적응이
요구될 따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교육은 무엇일까? 나에게 이런 질문이
온다면 조화된 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알차고
빛깔이 좋은 과실을 맺으려면 굳고 튼튼한 뿌리와 새롭게 뻗쳐나간 줄기
와 가지가 필요하다. 줄기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은 좋은 과실
을 먹기에는 힘이 들것이다. 물론 뿌리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마찬
가지 경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나무 전체를 보고 그 모든 부분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러한 시야
가 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알찬 과실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