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은 生의 기로에 선 여성들에게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의 가치, 사회공헌도,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면서 은근히 그렇지 못한 삶에 대한 "선택"의 위험과 불안정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에게 다시 새장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은근한 압력을 계속 넣고 있다.....하지만, 누가 강요한다고 맞지 않는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법.........
어느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
은 각 개인의 의사이며,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다. 그
러니까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라고 강요할 것도 없고, 남성들이 자신들에게
달갑지 않은 "선택"을 한 여성들을 비난할 필요도 우려할 필요도 없는 것이
다. 이문열은 아마도 <개인주의의 극단>이라며 또 비난할 지도 모르겠지
만...사회의 존속과 전통 가치의 보전이란 미명 아래 여성의 삶을 바치라고
하는 건 억지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가 싫어하는 일, 하고 싶지 않을 일을 위해 자신을 희
생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대표적인 속성이 이기심임을 볼 때, 사실 남을 위
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란 전 인류사에 걸쳐 수 명에 불과하며 그
래서 우리는 그들을 "성인"이라 일컬으며 존경한다.
"자기희생"이란 그렇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많
은 남성들은 '평범한' 한 인간에 불구한 이 땅의 여성들에게 온갖 미명과 '어
머니'라는 큰 이름을 하사하면서 "성인"되기를 강요한다. 더구나 이 나라의
손꼽히는 지성의 한 사람이라는 이문열씨마저도 서슴없이 남성들만을 위한
이기주의를 각종 이해를 동반, 미화하여 함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많이 슬
프다.
"선택"에는 여성에 대한 이해, 인정의 부분도 있는 듯 하기는 하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붙여진 온갖 오명이 억울하다 한다. 단지 자기는 극단의
페미니즘만을 비판했을 뿐이라면서........
정부인 장씨의 삶은 훌륭했다. 그 인내와 희생이란 훌륭하다 못해 거룩하기
까지 했다. 그녀는 분명 어질고 슬기롭고 현명했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성품
은 마땅히 후대에 귀감이 될만하다..그러나 모든 여성에게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취학 아동들이나 부릴만한 어리광이고 억지
다. 진중권 씨는 "선택"에서 말하는 선택이라는 것이 과연 선택의 여지나 있
었던 것이냐고 반박하면서 이문열의 긍정적 선택에 코방귀를 뀌지만..내 생
각은 다르다..
분명 긍정적, 능동적 선택은 수동적인 끌려감이나 어쩔 수 없었던..등과는 본
질적으로 다르고 따라서 결과의 차이도 확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인
장씨의 삶은 선택이라기보다 정해진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는 정부인의 삶을 인생의 여러 기로에서 선택한 삶이라고..고뇌
에 찬 결정이라 강조하는데..지금의 여성들이 서 있는 갈림길에서 보면 그게
"고뇌에 찬 선택'이라 하기에는 허전한 구석이 많다.
아까도 말했듯이 "선택"은...즉, 어떤 인생을 살지 결정하는 것은 그녀들 자신
의 몫이다. 어떤 "선택"이든 나름의 고심에서 나왔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만 하는데도 아직도 이 나라의 많은 남자들과 그들
중 대다수가 이끌어 가는 이 사회는 "선택"이라는 교과서까지 버젓이 만들어
'현모양처의 삶'에의 선택을 강요한다.
말하자면 일단은 여권신장의 의의, 타당성을 다 인정해 주는 듯 다독여 놓고
서 '정부인 장씨'의 행적을 거창하게 나열하고 그녀를 한껏 칭송하면서 그
안에 '현모양처로서의 삶'의 국가, 사회, 가정, 그리고 전 인류적 의미를 부여
하며 책을 마친다. 직접적으로 살던 대로 살아달라고... 그래서 자기들의 위
치가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쉽
게 택할 수 있는 '현모양처' 그것의 대명사격인 '정부인 장씨'를 내세워..그냥
하던 대로하면서 그 삶을 숙명으로 말고 국가와 사회, 가정, 그리고 전 인류
를 지속시켜 나가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라 한다.
참으로 대단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선택"이라는 책 자체가 덫이고 함정일 수도 있지만 마땅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눈을 가지고 깨어 있
기 때문에 함정과 덫은 피해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
을 테지만...그래도 이 덫이 무서운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지만 뿌리 없는 나무도 역시 살 수 없기는 마찬가지
다.
그가 내세우는 전통적 가치들...........모두 소중한 우리의 정신임에 틀림없다.
다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가는 융통성 있는 전통의 계승이어야만 고인 물
이 되지 않을텐데...몇 백년전의 양반 중심의 케케묵은 유교 사상을 전통인
양 가장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종용하는 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갑갑했
다. 뿌리 없는 사람들처럼 정신적 깊이가 약해 흔들리고 있는 현대인들도 많
기는 하지만, 아직은 과도기이고...5천년 역사를 가진 뿌리 깊은 민족으로서
우리가 이 시기를 언젠가는 현명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하지만 이처럼 무조건의 신뢰도 위험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위험이 두렵
다고 해서 자라나는 새싹들을 ..그들의 기회를 이처럼 무자비하게 밟아 버려
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부인 장씨'처럼 전통적 사고에 익숙해 그녀와 같은 삶을 택하는 사람들
도...아니면 불안정과 고독과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무소의 뿔'처
럼 혼자 가려는 사람들도...모두 자기 인생이고 선택이다...그 선택을 있는 그
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면 그만일 것을 어느 한 쪽의 선택만을 책까지 써
가며 응원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굳이 응원이 하고 싶었다면, 아직까지는 '무소의 뿔'처럼 가기보다는 "장씨
'의 삶을 택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그들은 덜 외로울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만..기존의 보수체제에 부딪혀 직접, 간접적으로 '현모양처'가 되기를 강요받
으면서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젊은 세대들이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격려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직 뚜렷하게 정해진 길도 없고..남편을 의지하고 아들을 의지하는 삶에의
교육에 익숙해 홀로서기가 아직은 낯선, 그래서 갈팡질팡 하는 그들...남성들
과 동등한 교육을 받아 그들과 똑같은 꿈을 꾸었으나 '현모양처'가 되지 못
하면 세상의 온갖 질타와 돌팔매를 당해야 하는 우리 세대의 여성들을 받아
안아 다독여 줄 수는 없었나..........안타까울 따름이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관도 변하는 법.......
우리의 10년 20년 후의 모습을 보려면 지금의 선진국을 보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여성이 사회의 한 주류로 당당히 제 몫을 하게 될 것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여성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야 할 앞
세대가 될 것이라면... 그리고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뒤따라가기 바쁜 우리가
될 것이 아니라 후대에는 앞서가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우리도
시대의 흐름을 바르게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쇄국정책처럼 매번 시도 때도 없이 역행만 할 게 아니라, 점점 다변화하는
사회의 다양한 사고들을 각각 존중해 줄 수 있고 든든한 뿌리(전통)을 바탕
으로 흔들림 없이 신사고,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해야 할 때
어느 한 유형만을 권장하고 격려하고 있다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다.
그보다는 미래 사회를 위한 준비와 후대들 위한 기회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지금 이 사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많은 여성들을 '무소의 뿔'처럼 외롭게 가야 하
는 고독한 "전사"로 만들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들도 현모양처들처럼 사회의 한 부류일 뿐임을 잊지 말아, 그들의 존재가
사회의 붕괴인 것처럼 떠벌리고 과장하며 지레 겁먹어 싹도 자라기 전에 고
사시키려 하는 어리석음은 이젠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꿈을 꾼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설령, 그 꿈이 나의 이상에는 안 맞더라도 그 꿈은 각자의 것이며 따라서 그
성취여부도 각자의 몫이다. 지레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할 필요도 만류
하고 반대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生.... 나름의 꿈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존중해 주는......... 내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고와 기준으로 그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 현실의 불안정에 대한 질책과 훈시도 분명 값진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음 세대에 대한 준비...변화에 대한 능동적 수용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
다. 그리고 넋두리 섞인 시대 한탄보다는 후대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넓혀 줄
수 있는 진지한 사고와 격려, 그 방법을 모색하는 깨인 지성...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특정 유형의 '선택'만을 권유하고 격려하기 전에 다양성과 각자의 개성이 존
중되는 사회..그리고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따라서 그들의 인생(선택)도 존
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특정한 인생만을 칭찬하고 독려하기보다는 후대의 모든 삶들이 저마다의 길
에 충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 이문열씨가 이 시대
의 '큰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