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권이라는 양의 책을 지루함 없이 읽어치우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긴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재미있게 잘 쓰여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해방을 맞고 민족이 분단되기까지의 상황을 사실감 있게 그려놓은 태백산맥은 진한 뭉클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렸을 때 북한공산당은 무조건 나쁜 사람들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 받아왔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을 배척했던 사람들의 실태가 더욱 나빴고 비열하기만 했다. 수탈 받는 소작민들의 한과 핍박받는 농민들의 분노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빨치산이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대립과 갈등은 한나라에 두개의 이념을 서게 만들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를 내세워 타당성을 부르짖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민족끼리 외세의 힘에 의해 조정 당하고, 급기야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 전쟁으로까지 야기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상처받는 건 우리 자신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몰지각한 유지들과 검은 속으로 권세를 누리는 친일 반민족 세력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모른다. 빨치산들의 사상과 산에서의 생활이 더 인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빨치산을 만들게 한 건 부패에 물든 사회와 가진 자들의 비양심이었던 것이다.
빨치산들의 치열한 투쟁은 평등하게 살길 원했던 그들의 피가 뿌려진 역사였던 것이다.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하고를 떠나서 우리민족의 문제를 우리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서구 열강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데에 심히 울분을 참지 못했다.
자주권을 갖지 못한 나라가 어찌 제대로 지탱할 수가 있었겠는가. 한탄만 나올 뿐이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폐허만 남게된 불쌍한 민족의 땅덩어리가 아직도 허리가 끊긴 채 신음하고 있다. 수많은 피를 흩뿌리고 간 곳엔 휴전선이라는 철책만이 휑-하니 남게 된 것이다.
앞으로 올 세대에는 그런 부조리함이나 더러운 양심이 힘을 갖는 사회가 철저히 배격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결국 또 한 명의 염상진과 하대치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핍박받는 국민의 편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다시 투쟁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차라리 어느 한편에 서서 자신의 이념에 확신을 갖고 대치하는 건 그나마 낫다.
책을 보면서 제일 안타까웠던 것이 바로 두 개의 이념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양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두 이념사이에서 핍박받는 양민들을 보았을 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무지하고 순박하기만 한 사람들이었는데..중간에서 모든 고초는 그들이 다 겪어야 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힘없이 당하고만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서구 열강세력에 밀려 자주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사회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고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데올로기란 것은 그저 배부른 자들의 어리석은 사상에 불과한 것임을..
민중에겐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세상만이 전부였다.
경찰서와 빨치산의 사무실을 오가며 애매한 고초를 겪는 것 보단 서로 하나 되어, 힘겨워도 한세상 싸움 없이 살아가는 게 그들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진정, 그들이 바라는 건 웃으며 맘졸이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자행되는 만행마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여버리는 것을 보았을 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힘없는 양민들의 피를 빨아대는가 말이다. 그들의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죄 없는 양민들만 죽어갔지 않은가. 왜 늘상 여리고 약한 사람들만이 희생되어야 하는 건가..힘이 없다는 건 짓밟혀도 될 만큼 큰 잘못은 아닌데.. 당하는 건 힘없는 사람들뿐이니..
강한 것이 다 옳고 그른 것은 아닐 진데.. 세상은 아직도 힘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서글픈 일이다.
모든 악행도 강자 앞에선 무마될 수 있는 힘의 원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힘없고 여린 사람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얼마나 많은 눈물로 홍수를 이루어야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이 올 것인가....하고잠시 속절없는 상상을 해 본다.
소리 없이 죽어간 양민들의 한을 지금에 와서 그 누가 알아줄 것인가.
작가 조정래는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일을 한 분이라고 본다. 진정 그들의 한 많은 삶과 고된 일생을 적나라하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깨우는 역할을 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태백산맥이 금서로 지정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회주의를 미화시키는 내용이라는 평을 들어서서였을 거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금서라...금서라.....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게 되 있는 법이다. 지금의 내가 금서였던 태백산맥을 읽고 독후감까지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빨치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 빨치산의 생성 이유, 빨치산이 되어 하나의 이념을 갖게 된 과정, 그리고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다시 분단으로까지 치달아야 했던 과정까지 아주 잘 그려져 있었다.
그건 작가의 역량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용에 배여 있는 진실성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이념은 좋고, 어느 이념은 나쁘다'라는 흑백논리를 따지기보다는 둘로 양립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발생한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안타까움...아쉬움... 나의 뇌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두 단어였다.
그 상황에서 역사가 그렇게까지 흐르지만 않았어도, 지금의 분단은 없었을 거라는 아쉬움..
우리가 주권을 가지지 못하고 우리자신의 현실을 자각하지 못해 결국 우리 스스로가 비극을 자초한 것이라는 안타까움....
휴전이 된,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풀어야할 문제만이 남겨져 있다.
북에 있는 가족을 다시 찾는 것.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형제를 다시 찾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다 해도 같은 핏줄을 타고 맺어진 한 동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맘을 지니고 있어야겠다. 이념보다 더 강한 핏줄로 연결되어진 우리는 하나이기에...
어쨌든 그들은 하나였던 우리들이었으니까.... 다시 하나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만약 이념이 문제가 된다면 이념이라는 것을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 싸우고 격론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이념의 존립에 우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이념을 넘어서 한 민족으로써의 정분을 다시 새기는 것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선을 긋고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손을 맞잡고 가슴을 맞대어야할 한 민족이니까..
내게 생소한 남북의 분단을 자각하게 해준 조정래 작가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작가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남북분단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여지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빨리 남북통일의 날이 다가오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