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책 위쪽 모퉁이에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쓰여 있었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왜 강물 냄새가 나는 걸까?
연어 무리는 자신들의 고향인 강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짧은 여행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바닷물과 동화해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등이 검푸른 보통의 연어들 사이에는 온몸이 은빛비늘로 둘러 쌓여 있는 은빛연어가 있다.
보호받으면서 따돌림당하는 것보다는, 보호받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은빛연어는 누나연어가 자신을 위에서 보는 것이 아닌 옆에서 보길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간섭하지 않기를
그렇지만 은빛연어는 적인 '물수리'로 인해 자신의 하나뿐인 누이연어가 자신을 대신하여 그의 먹이가 된다.
은빛연어는 슬퍼하며 무리를 떠나려고 했지만 누이연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은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빛 비늘 때문에 항상 위험을 받는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를 만난다. 눈맑은연어는 마음의 눈으로 은빛연어를 바라본다. 그리고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와 친구가 된다.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와 자주 만나면서 아주 조금씩 변해간다.
연어무리들은 그들의 고향 초록강 입구에 도착한다. 은빛연어는 적을 피하거나 먹이를 구하는 데 주로 쓰었던 청각을, 이제 세상의 미세한 움직임을 모두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통로가 되고 있었다.
그런 은빛연어의 곁에는 언제나 눈맑은연어가 있었다.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에게 고백을 한다.
두 연어의 몸에는 붉은 주홍색반점이 생겨난다.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할 때가 되면 모든 연어들의 몸 빛깔이 붉게 변하는 것이다.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에게 말한다.
『우리는 알을 낳기 위해 지금 우리가 태어난 상류로 가는 거야』
은빛연어는 태어난 상류로 올라가는 이유가 고작 알을 낳기 위한 것이란 것에 머리 속이 혼잡해진다.
은빛연어는 초록강과 이야기를 한다. 나뭇잎이 강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거슬러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고, 연어들이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었다. 꿈, 희망. 힘겹지만 아름다운 것.
그런 은빛연어에게 초록강은 강물이 하류로 흐르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은빛연어는 거슬러 오를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록강은 크게 웃으며 연어들이 거슬러 오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해 준다. 강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자신의 물살과 체온을 연어들에게 가르치며 길을 가르쳐준다고. 연어들이 반드시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또한 거슬러 올라야 하는 이유를.
은빛연어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초록강에게 듣는다. 그의 아버지 또한 은빛연어와 같이 은빛 비늘로 온몸이 빛나는 연어였다. 마음을 훤히 읽을 줄 아는 연어였으며, 500마리나 되는 연어들을 이끄는 연어 무리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쉬운 길이 아닌 폭포를 선택하는 두려운 장벽을 선택했다. 한순간의 희생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먼 훗날을 위해서 폭포를 뛰어 올라야 한다는 것. 하지만 폭포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생겨나자 반대세력의 비판을 받고, 지도자 자리를 내놓았다.
상류를 향해 가는 은빛연어는 강에게 묻는다. 이유 없는 삶이 있는가. 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이유 없는 삶이란 없다고 답해준다. 은빛연어가 강의 삶의 이유는 무엇이냐 다시 묻는다. 강은 자신이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강은 배경이란 지금 여기서 너를 감싸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은빛연어는 다시 묻는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에.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에.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냐고.
강은 은빛연어를 대견스럽게 여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뜻이다. 다만,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신을 얕보는 지상의 인간들이 그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은빛연어는 깜짝 놀란다. 눈맑은연어와 초록강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눈맑은연어는 초록강이 조금씩 앓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초록강은 강물 속의 물방울 하나하나 숨구멍, 핏줄이 아팠다. 인간들이 강을 병들게 한 것에 눈맑은연어는 화를 낸다.
초록강은 눈맑은연어에게 인간이 미워하냐고 묻는다. 눈맑은연어는 당연히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대답한다. 초록강은 인간들이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낚싯대를 가진 인간과 카메라를 가진 인간. 초록강은 카메라를 가진 인간을 믿는 다고 말한다. 눈맑은연어는 혼란스러워한다. 초록강이 그들을 어째서 믿는 것인지.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은빛연어는 등이 아주 심하게 굽은 연어 한 마리를 만난다. 은빛연어는 등굽은연어에게 말을 걸었지만 등굽은연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화를 낸다. 등굽은연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연어인 것을 안 은빛연어는 마음으로 말했다. 미안하다고. 등굽은연어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은빛연어는 인간의 마을에서 흘러나온다는 색깔도 냄새도 없는 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등굽은연어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연어 무리들은 폭포를 발견한다. 그에 대해 연어들은 전체 회의를 연다. 무리들의 대장인 턱큰연어가 폭포를 통과할 수 있는 방안들을 자유롭게 토론해달라고 말을 한다.
첫 번째로 빼빼마른연어가 말을 했다. 그는 늘 연구하는 데 시간을 보내느라 몸이 허약했다. 하지만 연어들의 삶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일에 몰두하는 과학자였기에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볼 틈이 없어 빼빼마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꼬리지느러미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폭포를 뛰어올라야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러 회의장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두 번째로 말한 이는 주둥이큰연어였다. 그는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웅변가였다. 그의 말솜씨는 언제나 논리적이고, 발음 또한 정확해서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그의 연설이 시작되자 연어들은 잠에 빠진다. 연설이 끝나갈 무렵 듣고 있던 연어들은 하나 둘 잠에 깨어 환호성을 내지른다. 눈맑은연어는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은빛연어에게 말을 한다.
세 번째는 지느러미긴연어였다. 그는 연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였다. 그는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삶이란 시험의 연속이라고 말을 하며 나약하고 게으른 연어는 낙오자가 된다고. 그러면서 등굽은연어를 비난한다. 은빛연어는 등굽은연어는 인간이 흘려보낸 물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한다. 지느러미긴연어는 교훈으로 삼는 것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은빛연어는 생각한다. 선생님은 교훈을 받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네 번째로 나선 것은 쪽집게 연어였다. 그는 연어들의 이름을 짓기도 닥칠 앞날의 운명을 알아맞히는 운명철학자였다. 그는 하늘이 폭포를 건너갈 시간을 정해준다고 말을 할 뿐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
문득 누군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빼빼마른연어였다. 그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길이 쉬운 길이라 말을 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연어들은 죽은 연어를 위해 비석을 세우지 않고 죽음을 묵묵히 바라봄으로써 슬픔을 삭였다.
은빛연어가 연어들 앞으로 나오면서 이야기를 한다. 비록 연어들이 알을 낳는 게 중요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 보다는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자식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지 않을까. 고통의 한 순간이 먼 훗날 자식들의 뼈와 살이 되고 옹골진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연어들은 깨달았다. 깨달은 연어들은 폭포를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은빛연어는 한 어린 인간을 보게된다. 마음으로 대화를 하며 은빛연어는 소년에게 크면 카메라를 들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년은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연어들은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눈맑은연어 역시 알을 낳을 준비를 한다. 지느러미에 힘이 다하면 배지느러미로, 배지느러미에 힘이 빠지면 주둥이로 땅바닥을 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산란터를 다 만든 눈맑은연어는 알을 낳고, 은빛연어의 배에서 흘러나온 하얀 액체가 앵둣빛 알들을 하나하나 적시기 시작한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풍경이다. 장엄하고, 슬픈 풍경이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오 년 전 연약한 어린 연어의 몸으로 긴 여행을 하였다.
초록강에는 겨울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는 봄이 올 때까지 어린 연어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은빛연어가 왜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가. 왜 연어와 사람인 우리들의 삶과 비교가 되는 것인가.
삶의 이유란 무엇인가. 특별한 삶의 이유는 없다. 희망이란 것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이란 것은 멀리 있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은 있을 것이다.
처음에 그러니까 학교에서 연어에 대한 지식을 접했을 때 나는 왜 바보같이 바다까지 나가서 고생을 하고 다시 돌아와 알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냥 다른 물고기들처럼 강에 머물러 편안한 생활을 해도 되는 것일텐데.
이해는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연어가 아닌 이상 연어들의 삶에 대해 알 수는 없겠지만.
작가가 말한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바다에서 약 5년, 강에서 채 1년도 되지 않는 생활을 지내는데.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연어들은 짧지만 그들의 고향에서 태어나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