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래왔듯 책은 내게 까달음을 준다. 내가 잘 모르는 것-사랑에 대한, 혹은 내면에 대한 여성작가들의 책을 즐겨 읽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책은 깨달음을 주므로.
주인공이라는 스피커를 통해 작가들이 교묘하게 세뇌하는 이야기를 곰곰히 듣고 그 중 일부는 버린다. 내가 필요한 부분, '아!'하는 탄성이 나오는 대목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늘 지니고 다니는 작은 수첩에 촘촘히 적힌 그 파편들을 통해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과정이 내가 바라는 독서의 형태일 것이다.
이틀동안 읽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이전까지는 신경숙의 소설을 읽었다. 삶의 무미건조함을 내부에서 방어하려는 신경숙의 분신들. 그리고 인간에게 내재된 여러 욕구들을 너무나 객관적이게(1인칭이어도 상관 없을만치), 혹은 건조한 말투로, 분명 떨리는 필치로 썼을 것 같은, 또 세상을 향한 수줍은 연서(戀書)와 같은 글들을 읽고 그러한 주인공들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 대한,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을 지닌 주인공들처럼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숙 그리고 은희경. 두 사람은 꽤나 다른 스타일의 작가이다. 성찰하는 마음으로 내면을 깊숙히 바라보는 신경숙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은희경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 진희는 자신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조금은 계산적이고 약은 여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러한 상태로 독자인 내게 자신의 사랑관, 인생관 등을 들려준다. 그녀는 어린 내가 잘 몰랐던 사랑에 대한 진실을 내 앞에 펼쳐준다. 그녀를 통해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사랑(어쩌면 자신을 너무 방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한 마디 충고를 던졌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나의, 또는 상대의 배신으로 들뜬 기분이 가라앉고, 그때서야 비로소 사랑이었는지아니면 단지 좋아하는 감정이었는지 판가름 할 수 있다는, 나도 어렴풋이 느끼는 사실을 은희경은 단 한 마디로 그려냈다. 그녀가 생명을 불어넣은 '진희'라는 한 여자를 통해 들려준 말 중 가장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 말로. 아마도 '진희'는 늘 가볍게 살자는, 신경숙 소설의 깊은 고민과 갈등들로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작가의 소설에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두 부류의 모습이 인간이라는 개체 안에 다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은희경의 작품을 그다지 읽어보지 않아서 작가의 경향에 대해서는 무어라 한 마디로 표현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아내의 상자'에서는 주인공이 결코 가벼운 삶을 살지 않는다는 점은 꼭 언급하고 싶다. 어쨌든 나는 은희경이라는 작가-2년전에 읽은 '아내의 상자'의 기억으로 남아있던 작가-에 대해 매력을 느꼈고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들을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