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듯이 딱 꼬집어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묘한 제도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판 모르던 남녀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사랑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는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한번은 꼭 거쳐가게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나이에 도달하게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골몰히 생각해 볼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라는 시기가 오면 말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결혼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 하는 사람들이 끈이지 않고 나오는 걸 보면 대단히 중대한 일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그러니 이만교라는 사람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면서 책을 썼으리라.
주인공의 결혼관은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미친 짓'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 이미 예정되어진 각본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찍는 것처럼 주인공(=대상)과 스토리가 다르다는 차이밖에는 없는, 획일 된 구성으로 찍혀지는 영화 말이다.
주인공은 그렇듯 누구나 똑같은 만남으로, 똑같은 연애 패턴을 거치고, 똑같은 환상을 품고, 똑같은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는 우리네 삶을 잘 짜여진 시나리오라고 간단히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음을 한번 던져보자. 과연 결혼은 미친 짓인가?
주인공이 그리고 작가가 강력하게 부르짖을 만큼, 진정 결혼은 미친 짓일까?
'인간사 다 그렇고 그런데, 그저 되는 대로 살다가 나이 들면 죽어 가는 것'쯤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확신하는 어조로 '결혼은 미친 짓'임네 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만교가 결혼이란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결혼의 부정적인 모습을 부각시켜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까지는 수용할 수 없었다.
이만교의 글을 들여다보면 인간생활이라는게,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똑같은 패턴의 모습으로 연출되는 텔레비전의 연속극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남녀가 만나고, 결혼으로까지 가는 과정, 그리고 결혼후의 생활들은 'TV속의 드라마와 같은 모습 그대로 답습하는 삶을 차용하는 것밖엔 없지 않느냐. 그런데도 결혼을 한다고 하니, 미친 짓밖에 더 되겠느냐'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사람일지라도, 결국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유행이라는 하나의 동일 패턴을 따라가는 무리의 일원이상은 아니라는 것. 개인의 생각이나 표현은 완전히 무시된 채 남의 말소리만 따라하는 앵무새처럼 천편일률적인 생활패턴을 따르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결혼을 부정하고 있는 것."
물론 언뜻 보면 타당성 있고,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상당부분 설득력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가고 있는 것을 인정은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만교가 간과하고 지나친 것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출된 TV연속극의 형태는 처음부터 있어왔던 고유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사의 모습에서 차용되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정해진 시나리오를 답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있어왔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대중화되고, 일반화 된 모습일수도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화 시켜서 드라마라는 무대에 축소시켜 놓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주객이 전도된 듯한 그의 언어에 약간의 불만을 품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극화된 것들은 인생사를 모델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작가 이만교는 현실에 놓여진 인간사의 모습을(전부 짜여진 각본이 있고, 연기자와 스토리만 다른) 영화나 드라마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 이상은 없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의 모습도 크게 다를 건 없다는 그의 주장은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 된 것 밖에는 안 된다.
인간을 단순히 유행이나 쫓아가는 생각 없는 하찮은 것쯤으로 치부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었겠는가. 이만교는 인간에게서 감정과 이성, 순수한 애정, 삶에 대한 열정 등을 배제시켜 놓고, 단순히 객관화 시켜 바라보지 않았나 싶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처럼 지루하게 만나고, 애정은 없으면서 조건만 보고, 충동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외간남자와 불륜행각을 벌인다거나 하는 생활을 일상적으로 행한다면, 당연히 결혼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미친 짓일 수 있다.
내 남편이, 혹은 아내가 나 모르게 일탈된 행동이나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한다면, 결코 좋다고는 말못할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만 아니라면 속끓일 이유도 없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결혼을 통해 파생되는 문제나 괴로움을 안고 사느니, 혼자 살겠다고 버티는 것이 백번, 천번 나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토리로 상황이 치닫게 된다면, '죽어도 못살아' 이혼하는 이들이 속속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이리라.
그러나 현실 속의 인간들 모두가 그러한 사상으로 그러한 행위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고 달콤한 결혼생활에 축복 받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들이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너 아니면 난 죽는다'고 한강 물에라도 뛰어들 태세로 연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이의 감정은 현실 속에 확연히 존재하고 있다. 진정을 지니고 순수한 감정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현실 곳곳에 숨어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넌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을 뿐이야'라고 말한다면,
달콤한 신혼을 꿈꾸는 연인들에게 "니네들 낯간지러운 사랑행각들은 다 연속극에서 나온 거랑 별반 다를 거 없어. 뭣하러 결혼하니? 결혼은 미친 짓이야" 라고 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고 맥빠질 것인가?
'우리네 사는 게 인물과 내용만 틀릴 뿐이지 다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 이상은 아니라는데, 우리, 될 대로 살아 볼까?' 이런 맘으로 쉽게 사랑하고, 쉽게 이별하고, 쉽게 살아 버린다면, 또 얼마나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인가?
인생사 속속들이 펼쳐보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진귀한 이야기들이, 사람들 맘속에 각각 감춰져 있을진대, 이만교는 그 진심을 무시하고, 단순히 인생사를 커다란 무대이상으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생활상만을 보고선 그런 논리를 펼쳤을지도 모르겠다.
이만교는 모든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모델이 되는 인간사의 다양성을 인정해야만 하며, 그들 속 깊은 진심의 마음을 이해했어야만 했다. 똑같아 보이는 생활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 틀리다는 것은 금새 알아 챌 수 있을 것인데, 왜 그걸 간파하지 못했는지.
결혼과 연애는 별개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어느 정도 수긍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제목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선택되어진 이야기인 만큼 너무 억지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제목을 질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미친 짓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윤활제가 될 수도 있다."고 지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 있는 자들은 선택을 하라. 모든 정황에 미루어 자신의 판단에 의거해 결혼을 할 것인지, 독신을 고집할 것인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지 않은가. 어차피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후회하기는 매한가지일 테니,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말을 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