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프려진 도시위를 걷고 달리는 사람들..
나역시도 그 도시위에 살고있지만..나에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마음속의 또다른 세상이있다..
내가 초등학교시절, 방학 식이 끝나자마자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갔던 시골의 조그마한 외딴집 살매.
그곳에는 옥수수를 쪄 놓고 기다리시는 할머니와, 손녀 올 때만을 손꼽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하늘색, 흰색, 분홍색, 그 색색의 코스모스들이 양쪽으로 심어져있던 길을 따라가면, 초록빛으로 눈부신 햇살을 가려주던 밤나무의 그늘을 지나, 딸기밭과 배추밭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갈라진 나무대문 사이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집안으로 들어선다.
내 작은 목소리로 반가움에 불렀던
\"할머니~\"
라는 말이 개 짖는 소리에 묻혀 한참 시끄러울 때면 부엌에 계시던 할머니는 쌓아놓은 나무더미 사이로그 펑퍼짐한 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시며 단숨에 달려나와 먼 길 온 어린 손녀를 한 품에 넣어 안아주시곤 했다.
저녁이 되면 파란 그물망이 쳐진 모기장 속에서 마당한가운데 채송화의 붉은빛에 반사되어 다시 할머니집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총총한 별빛과 달빛들..
입이 심심할 때면 할머니와 함께 바구니를 들고 나가서 바닥에 빨갛게 내려앉은 딸기를 따고, 날씨가 너무 무더워지면 가까운 곳에 사촌들을 불러 굵은 계곡줄기에 물을 튀겨가며 하얗게 떠오르는 물방울의 시원함도 느끼곤 했다.
까치의 반가움을 안 것도 그때였다.
배추밭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보고 있을 때면 까치가 시원한 소리를 내가며 내 머리 위의 하늘을 빙빙 돌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는 말을 꼭 해주시곤 하셨다.
그러면 꼭 마술처럼...
그날저녁에 보고싶던 엄마아빠가 날 데리러 온다던가, 오랜만에 사촌들이 온다던가, 하다 못해 엄마의 전화라도 한 통 걸려왔었다.
따가운 햇살도 풀이 죽고, 시원한 바람이 할머니 댁을 자주 찾을 때면, 아쉬운 방학의 끝과 함께 보고싶던 엄마가 오시곤 했다.
보고싶은 엄마의 방문으로 서울로 가게된 어린 손녀는 마냥 즐거웠다.
그런 손녀 뒤에서 가는 걸음 끝을 살펴주시면서 팔 아픈 것 도 모르시고 흔들어 주시던 그 손을 생각지도 못한 채, 엄마 손을 잡고 나왔던 푸르름과 햇살로 가득했던 그곳.
내 마음속에 세상이다..
까만 밤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별이 각지지 않고 동그랗게 빛난다는 사실을 알려준 곳도 그곳이었고, 소가 꼬리를 흔들어 파리를 쫓아 버린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 도, 밤송이 가시의 따가움과 그 속의 빼곡한 알맹이의 실체를 알려준 곳도 그곳이었다.
안개의 고요함과 신비로움도, 한밤중 화장실의 무서움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던 그곳에서 배워왔다.
코스모스의 키가 나보다 컸을 때 말이다.
이제 난 그 코스모스보다도 할머니보다도 더 커졌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어린 손녀가 만들어 냈던 추억이 가득 담긴 동화 같던 그 외딴집 살매는 포크레인으로 갈아엎어져 도시의 회색빛을 닮은 건물들 속으로 사라졌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심어주신 그곳은 손녀의 마음속에 투명한세상으로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오직 내 맘속에만 존재하는 투명한 그 세상.
사랑으로 가득찬 그곳이 맘속에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교복을 입고 있어도 나만이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꽃을 바라봐도, 내 눈에 들어오는 그 꽃은 어릴 적 투명한 그 세상에서 할머니와 함께 바라보았던 그 꽃으로, 눈부시게 밝은 빛을 띄고 있다.
차가운 건물과 까만 아스팔트 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내 친구들에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세상이 내 안에 있다.
책을 보고 공부하지 않아도 모든 자연이, 사랑이 함께 있는 그곳.
그리고 그 곳도 모자라서 어린 손녀의 몇 자 안 되는 편지글에 다섯장이 넘는 답장을 보내주셨던 할머니의 편지 속에는 내가 담아 내지 못한 너무나 예쁜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다.
내 맘속에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옮겨다 주신 그 투명한세상은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도 아주 오랫동안 투명함을 지킬 것 같다.
할머니와 할머버지가 주신 그 투명한 세상은 나만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중한 곳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랑으로 전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내 맘속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 세상을 옮겨다 주고 싶다.
모두가 투명한 세상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01.08
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투명한 세상?. 아마도 님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 작지만 큰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