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방학이라 게으름에 잔득 젖여 있는 자신을 나무라면서
오랜만에 외출을 하려고 부지런히 준비을 하고 나서려다
문득 창밖을 내다 보았다.
솜털처럼 하얀 함박눈이 보기 좋게 내리고 있다.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아이처첨 큰 소리로 \"눈 온다 \" 라고 외치고 나니 왠지 괜시리 쑥스러워 혼자 멋젖게 웃어 본다.
이렇게 눈이 오니 어쩌지? 밀린 일들을 보러 나가야 겠고
운전에 미숙하다 보니 눈이 오는날 운전하는 건
여전히 큰 부담감으로 다가 오고
그래서 짝의 전화 번호를 꾹꾹 누른다.
전화기 저 편에서 낯잊은 목소리가 대답한다.
\" 여보세요 누구 누구 입니다 \"
\" 여보세요 전 데요.지금 눈오는데... 눈 오는날은 어떡해 운전해야 되요?
\" 되도록 이면 눈 오는날은 움직이지 말아요.. 꼭 나가려면... 히터를 세게 틀고.. 천전히 저속으로 운행하고 ..\" 라고 몇가지 주의 사항을 들려준다.
\" 그래요 ..조심해서 운전 할게요..너무 걱정 말아요\"
전화를 끊고서 엘리베리터를 버튼을 누르고 내려 와 일단 밖으로 나와 보니
생각보나 날이 많이 춥고 바람도 매섭게 분다.
포근하게 내리던 함박눈이
금방 매서운 바람에 힘입어 눈보라로 바뀌고
쌩쌩 바람을 일으키며 날린다.
잠시 또 망설여 진다..
오늘 나가지 말고 내일 나갈까?
택시 타고 나갈까?
아니야..이러다 눈오는날 영 차을 가지고 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
처음에 비오는날에도 그렇게 두려워하고 긴장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천둥번개가 치고 폭포수 처럼 쏟아지는 비속도 뚫고
잘 하고 있잔아?
그러니까... 오늘만 잘 이겨내면 앞으로 눈이 내리는 날도 극복 할수 있을거야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아 본다.
몇일 동안 차을 잠재워 두었던 지하 주차장에 내려 와 보니
하얀 차위에 먼지가 부옇게 앉아 있다
몇일전 부터 세차를 하려고 했는데 마음뿐 여전히 여기 저기에 이렇게
게으름만 몽당 피우고 있는 자신이 좀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동을 건다.
내차는 97년식 누비라 흰색 오토메틱이다.
이 놈은 늘 내가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나와 같이 동행한다.
매일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전주 에서 군산간 일상의 출.퇴근길을 ...
그리고 늘 혼자 돌아 다니는것을 즐겨하는 내 곁에 이놈은 언제나
제일 가까운 벗의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다른 어떤 물건 보다
늘 나와 함깨 하는 내 차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마 운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 하리라 생각한다.
분명히 이놈은 살아서 숨쉬는것도 아니고 내가 저을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만큼이나 이놈을 애지중지 한다..
난 솔직히 기계치 이다.
말하자면..기계 다루는일에 늘 미숙하다
그래서 늘 실수투성이에다 차분하지 못한 덜렁대는 성격탓에
기계를 다루다 다치는일이 내겐 언제부터인가
부끄럽게도 자연스러운일 되어 버렸다.
그래서 늘 내가 무언가을 만지고 있을 땐 행여 또 다치게 될까봐
아이들도 남편도 늘 안절부절 한다.
그러다..나의 외마디 비명소리에 가족들은 매번 놀라기 십상이다.
난 언제나..그렇게..
우리 가족들 말을 빌자면 움직이는 폭탄이다.
그러나 다행이 아직은 운전을 하면서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언젠가 작은 아이을 태우고 순창에 다녀 오면서 택시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는데..그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다행이도 상대차에 탄 사람도 내 차에 탄 사람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차만 조금 망가져서 얼마나 고마운 생각이 들던지.
전화를 받고서 달려온 남편도..
나의 잘 잘못보다 나와 아이의 안전부터 걱정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던 기억들..
아마 그때 남편이 호되게 나를 나무라거나 몰아 세웠다면 다시 핸들을 잡기가 어려웠을텐데..
항상 너그러운 성격으로 날 이해하고 감싸주는 남편에게 참으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운전면허를 취득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올해로 12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면허 취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주행 연수를 할때 강사에게
얼마나 많은 지적사항과 꾸지람을 들었는지...
지금도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가씨! 반듯이도 못가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면허증은 땄어요?
시험 다시 봐야 되는거 아니예요? \"
아휴...정말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 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그 때을 떠올리면서 웃고 있다.
살아가면서..나이를 더해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힘들 일도..슬픈일도.. 가슴 아픈일도..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도..
시간이 흐른뒤엔 이렇게 다 추억이 되나 보다.
시동을 건후..난 늘상 FM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오늘도 습관처럼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아까 ...남편이.. 들려주던 주의사항을 하나씩 머리속에 되뇌이면서
나는 내차와 하나가 되어 거리를 나선다.
지하 주차장을 나서자 마자 차 유리창에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진다.
와이퍼를 조심스럽게 작동시키고 좌우를 잘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나의 눈오는날의 첫 외출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진
한 여인의 사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여자의 이야기..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엄마가 된 그녀의 이야기..
궁핍한 생활에 대한 그녀의 넋두리..
철없는 남편이지만..어린 아내와
아직 뱃속에 있는 새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고생하는 그녀의 남편 이야기..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녀의 이야기..
잠시 그녀의 사연을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 그래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해야해..
함께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 볼수 있다는건..
얼나마 아름답고 큰 축복인가 \"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차을 주차시키고..은행에 먼저 들려서..몇가지 일을 보고서
오랜만에 시장에 들렸다..
이렇게 추운날에도 상인들은 나와서 전을 벌리고 있다.
요즈음 대형 마트가 많이 생기고 쇼핑하기 편하다는 생각 때문에
시장에 잘 오질을 않는다.
갑자기 아구탕을 좋아하는 남편이 생각났다
바로 옆에 있는 생선가게를 한참 돌아 좌판을 벌리고 갖가지 생선을 팔고 있는
생선 아줌마에게 가서 아구를 샀다.
늘 생선을 살땐 커다랗게 무슨 상회라고 간판이 붙어 있는 생선 가게보다
이렇게 시장 귀퉁이에 있는 생선 아줌마에게 생선을 사는게 나는 좋다.
아줌마의 푸근한 인심으로 덤으로 한마리 더주는 행운을 얻을수도 있고
별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냥 우리네 세상 살아가는이야기도 나누고..
아줌마의 한숨 섞인 자식들 걱정거리도 들을수 있고 우리네 삶의 항기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과일이나 생선을 고를 땐 늘 고민을 한다
늘상 물건 고르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주인 아줌마나 아저씨가 권하는 물건을 담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끔은 속이 상할때가 있다.
가게 주인들 말만 듣고 가져온 물건들이
내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게 좋은 물건을 변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니 누구를 탓할수도 없는일인듯 하다. 야무지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탓해야지...
생선 아줌마가 건네주는 아구를 들고..
주차장에 있는 차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 왔다.
이렇게 눈오는 날이 두려운 나의 첫 외출은 마무리 되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나의 차를 주차시키고 콧노래를 부르면 집으로 돌아오는길...
까만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싱싱한 아구를 보니 오늘 저녁 아구탕으로 웃음꽃을 피울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리고 늘 나의 좋은 친구인 내차와 오래 오래 안전운행을 하고 싶다는 커다란 소망을 가슴속에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