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시절의 한때, 지금의 아내와 헤어져 마음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던 때가 있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듯 원형탈모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헤어짐에 대한 후유증으로 삶에 대한 의욕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 나 혼자 내버려진 듯한 텅 빈 심정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 당시 아내는 나의 지친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주춧돌 역할을 해왔고,
나의 언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화로와 같은 구실을 하였다.
그러던 아내와 갑자기 헤어졌으니
내 마음은 닻을 잃은 배처럼 의지할 곳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탈출구로 택한 것이 소위 노가다(막노동)였다.
새벽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봉고 차의 앞쪽에 앉아 있는 십장인 듯한 사람이
눈대중으로 인부로 쓸 사람을 골라가곤 했다.
나는 몸도 건장한 편도 못 되었고 안경까지 쓰고 있어
누가 봐도 막일을 할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기에,
그 한여름에도 두툼한 예비군복으로 치장하여 나의 왜소함을 가렸다.
이윽고 봉고 차가 도착하여 어떤 사람이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내 옆에 서 있는 후배만 뽑아가고 나 혼자 댕그라니 거리에 남았다.
그런데 저만치 앞서 가던 봉고 차가 다시 후진하여 내 옆에 멈춰 서더니
\"타시오\" 하는 것이었다.
혼자만 뽑혀간 후배의 표정이 안 돼 보였는지,
아니면 거리에 미아처럼 홀로 버려진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차에 올라탔다.
나를 태운 사람은 공사판의 목수였는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보아 하니 막일할 사람으로 뵈진 않는데, 뭔 사정이 있겠지.
인원은 이미 꽉 찼지만 내 술 한잔 안 마시면
그 돈으로 총각 일당이야 줄 수가 있지 않겠나.\"
젊은 나이에 노가다판으로 흘러온 내 신세가 딱해 보였는지
덤으로 나를 거둬들인 것 같았다.
그 분은 배운 것 없이 평생을 공사판을 전전하며 일만하신 분 같았는데,
의외의 속 깊은 따뜻함에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나는 그곳에서 약 스무 날을 일했다.
벽돌을 나르다가 요령을 몰라 벽돌더미에 깔리기도 하고
발이 못에 찔리기도 하면서 땀의 소중함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아침이 되면 몸은 천근 만근 무거웠지만
남의 일이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도 굶고 공사판을 따라다니면서 노동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돈을 벌어본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일하는 손끝마다 묻어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손을 빌어 용돈을 타 쓰는 처지인지라
한 푼 돈의 고귀함을 알지 못했다.
남의 돈을 자기의 소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옷을 벗고 남의 일부가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쯤이면 옷에서 배어나던 구수한 땀 냄새가
나를 삶에 대한 의욕과 열망으로 다시 일어서게 했다.
무엇보다, 그때만큼은 그녀를 잊을 수 있어 좋았다.
막일에 대한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보고 싶은 책도 사고
탈모증 치료도 하고 안경도 새로 하나 맞췄다.
그때 후배로부터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일을 하는 요령이다.
몸이 튼실했던 후배는 남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도맡아 하였고,
몸이 약한 나에게는 하기 쉽고 편한 일만 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후배가 시키는 대로 일을 분담해서 하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공사판 일이 다 끝난 다음에야 깨달았으니
나의 어리석음에 화가 날 정도였다.
어떤 조직사회든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남이 하기를 꺼리고 힘든 일일수록
자기가 맡아 일을 처리할 때 주위 사람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것이지,
편하고 쉬운 일만 골라 하다가는 결국은 사람들의 눈밖에 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오히려 후배에게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있었으니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른 셈이었다.
그후 후배는 그 목수를 따라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며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반면에,
나는 그 공사판 일을 끝으로 더 이상 나에게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 때면 노가다할 때의 그 아침을 상기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문을 나서던 그 때를 생각하며 나태해지려는 내 자신을 추스른다.
자전거를 타고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그 어떤 것을 다짐하곤 했던 그날을 생각하며 느슨해지려는 내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면서 땀내 묻은 예비군복에 코를 킁킁대며
생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면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치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어떤 일이 주어지면 쉬운 일보다 궂은 일을 먼저 선택해서
일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의 노가다 일은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값진 보약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회는 배움의 항아리다.
보잘것없는 일터라 하더라도 몸소 부딪치며 시행착오 속에서 익힌 경험과 지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삶의 연장선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때의 체험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그때 같이 막일을 하던, 나에게 작은 가르침을 주었던 후배가 생각나는 그런 밤이다.
01.02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지요. 그렇다고 아무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그럴땐 제가 해야지요. 조금 고되더라도 마음만은 편하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1.02
젊음은 돈으로도 못사는법이지요.젊은날에 좋은 경험으로 인생 공부를 하셨군요.값진공부라 하겠습니다.좋은글잘읽었습니다.
01.03
님의 글을 읽으면 나 자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꼭 내 얘기인 듯...
01.04
^^ 좋은경험... 누군가를 잊기위해서라기 보단... 나를 위해 한번을 해봐야겠네요...노가다...^^;;;
01.10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이 있죠. 기초를 튼튼히 다졌으니 분명 모든일에 자신을 갖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