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성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내 고장 사람들도 더러 끼여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프로필과 사건내용을 읽으면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존파의 살인행각처럼 이미 세간에 알려진 것이라면 몰라도
국가든 개인이든 아무리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신상과 죄상을 함부로 만인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공개하는 행위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디에서 어떤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지 하는 것 등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 법이 청소년보호법이다.
이 청소년보호법은 몇 년 전에 발효된 미국 뉴저지 주법(州法)에 그 모태를 두고 있다. 이 주법이 만들어진 사연은 이러하다.
뉴저지 주에 살고 있는 한 소녀의 이웃에 성범죄 전과자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녀는 물론 그 부모들도 이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소녀는 무참히 강간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 소녀는 당시 7살이었다.
이에 분개한 소녀의 부모는 입법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만약 이웃 사람이 성범죄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연에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법이 시행된 후로 미국에서는 성범죄자의 대문 앞에 성범죄자의 집임을 공지하고 그가 이사할 때마다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불과 5년 전에 미국에서 시행되었고 우리나라도 작년부터 시행되었으며 일년이 지난 올해 여름에 그 명단이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그 신상공개는 강간이나 강제추행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와의 원조교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국가가 이렇게 과감하게 공개까지 결단한 것은 미국의 소녀사건처럼 주변 사람에게 그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 조심토록 하는 효과와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사람들이 아예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예방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이다.
그 명단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내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사람이야 주마간산격으로 눈이 지나갔지만
내 고장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 나이와 사는 곳 그들의 행위까지 유심히 살피면서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만약 이들이 내가 아는 지기(知己)이거나 내 이웃이라면 과연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채울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를 아는 사람이나 이웃들에게 파렴치범으로 소문이 나고 낙인이 찍혀 얼굴을 들고 나다니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게 되어 직장과 동창회를 비롯한 모든 사회 생활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현대판 주홍글씨를 이마에 달고 다니는 셈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강간과 강제추행과 같은 성범죄는 그렇다 하더라도,
원조교제까지 뭉텅이로 가정과 사회 밖으로 매장시키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생각의 여지를 남겨 주었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돈을 매개로 하여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사회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조교제가 미성년자가 돈을 필요로 하여 이루어지고 강제성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는 매춘이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상대방이 처벌되고 신상이 공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부모의 동의를 받긴 하지만 여자 나이가 16세가 되면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가 있다.
자기 스스로 인생의 동반자인 배우자를 결정하고 가정과 부모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격을 16세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같이 미성년자에게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혼인까지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면서,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 원조교제에 있어서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성관계 하여서는 안 되는 미숙한 존재'로 못박아 두는 것은
법의 논리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성에 관한 한 미성년자를 너무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은 우리 어른의 시각이 아닐까.
비록 미성년자가 그 대가를 유흥비 등 바람직하지 못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 성관계를 하였다 해도 말이다.
물론 신상공개의 취지에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이들의 죄상을 공개하여
사회에서 독버섯처럼 만연해 가는 원조교제의 뿌리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국가의 의지가 담겨 있겠지만,
사회의 일부분이 이렇게 병든 것은 국가의 무관심과 왜곡된 사회구조 내지 우리의 도덕적 양심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의 병리적 현상의 치유에는 소홀히 하면서, 개인의 책임만을 추궁하여 명단까지 공개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과는 달리 우리 사회가 유독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사회적 유대와 남을 의식하는 체면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공개로 인하여 미치는 파급효과가 외국과는 다른데도 불구하고 외국의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가 있다.
더구나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할 범죄인 살인, 방화, 강도 등을 범하거나 패륜이나
가정파괴를 저지른, 소위 인간이기를 거부한 자의 신상은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여 인격적으로 보호해주고 형사적 처벌에만 그치면서,
별다른 피해자가 없고 합의 하에 이루어진 원조교제는 형사처벌에다 신상까지 공개하니 그 공개의 파급효과를 고려해볼 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신상공개로 인하여 그 본인이 만천하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은 자기 잘못 없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며
그 자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원조교제자와 가족들이 이만큼의 부작용을 짊어질 만큼 원조교제가 불법적이고 책임이 크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언젠가 어느 누가 청소년보호법 중 원조교제 부분의 처벌과 신상공개에 대하여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12.31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 참으로 우울한 화제이군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이지만 정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라져줬으면 하는 바램이 크네요.
01.03
8월말 제가 토론방에 성범죄자 신상공개에 관한 질문을 던졌었지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어요. 대체적인 의견이 타당하다!!!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 원조교제라... 미성년자가 돈을 필요로 한다... 별다른 피해자가 없고 합의하에 이루어진 원조교제라... 기막힌 발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