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봄
모의 고사 시험준비로 복습을 하던 나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조금 전부터
창가로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까닭에...
아직은 밝은 초저녁이었다.앞뜰에선 부자간에 야구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소리지르며 게임을 하고 있는 그들의 놀이는 초저녁 아파트 분위기를 전등
처럼 밝히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나는 지금 집앞 신록이 바람결에 출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
었다.
목련이 지는 4월이었다. 몇몇 사람이 지나가지만 목련꽃에 관심을 주는 이
는 없었다. 나는 며칠 전 근처 산에서 본 산 목련의 자태와 집 앞 목련꽃의 자태
를 비교해 보았다.꽃의 자태가 조금 추해보인다.속세에 발딛고 있는 것들은
그 모습이 무엇엔가 더럽혀져 있다고 느껴서일까?
어디서 노래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노래하는 목소리로 보아 20대 후반의 남자
일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들려오는 노래를 조금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의 끝자락 `그것만이 내 세상` 을 따라 부르던 나는 순간 동네 아저씨
의 노래소리가 멋있다고 생각했다.노래 부르는 정경을 상상하며 멋진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나의 감성이 살아있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나는 얼굴을 볼 수 없는 미지의 아저씨가 또 다른 노래를 잇달아 불러 줄 것
을 기다렸으나 노래소리는 그치고 말았다.
좀더 창가에 다가갔다.나뭇잎은 계속 출렁거렸다.
희미한 노래소리가 다시 흘러나온다.그의 친구가 부르는지 톤이 달라져
있었다. 밝은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좋게 들렸다.
그 아저씨와 나는 같은 시각에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다.
몇 소절 들려오던 노래소리는 섭섭하게도 그쳐버렸다.그쳐버린 그의 노래소
리에 마음이 쓰였다.가사를 잊어 버린 것일까. 나이는 몇 살일까. 호흡이 곤란 해진 것일까.어린시절이 떠올라 그만 할 것일까. 건강하지 못한 음성에 자신
이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괜스런 걱정을 해봣던 나.
멈춘 노래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일요일, 밖에서 들려오던 노래소리는 나의 마음을 잠시 여유라는 기차에
몸을 실게 해주었다. 그러나 노래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 내릴 때가 된 것일까. 하지만, 나는 바라고 싶다. 그와 같은 노래소리
가 자주 우리 집안으로 이어져 들어왔으면 좋겟다고. 묵혀지고 찌든 우리
의 현실이 잠시라도 씻어주는 노래가 더욱 크게 들려왔으면 좋겟다고.
그리하여 퇴색되어진 우리들의 마음에 한 줄기 꽃을 피울 때,
집 앞의 목련꽃은 산목련의 자태를 닳아갈 것이며, 날마다 높이 아우성
치며 살아가는 우리네 목소리들도 차츰 낮은 소리로 바뀌어져 갈 것이다.
밝고 깨끗한 삶의 소리로 바뀔 것이다.
다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여유가 이웃에 산느 한 아저씨의 노래소리
로 일깨워지는 저녁이었다.
어두워졌다. 멀리 약수 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야구하던 아들과 아버지는
방망이를 어깨에 매고 콘크리트 숲속으로 사라졌다.
신록이 검게 탈색되어졌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10시까진 안 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일,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면, 나는 당장 방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