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상담을 요청해 왔다. 진학지도 때문일 것이다.
오후의 햇살이 내리쪼이는 교무실 안은 잠잠하다. 수능이 전보다
어려워서일까. 너무 고요해서 침체된 느낌마저 든다. 힘이 넘실거리던
과거와는 대조적이다.
나는 지금 고3으로서 지금 고등학교 교무실에 와 있다. 나의 담임선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역시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 아마도 소위 `우등생`이라는 족속들과
막바지 합의를 보는 거겠지..... 참으로 `행복한 족속`들이구만...
과연 난 몇 분만에 끝날까?.. 어제 상담한 내 친구는 5분도 안 되어 나왔다...
그녀석은 날 기다리게 하기 싫어 일찍 나왔다고 큰소리쳤지만..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그 때 내 맘이 어땠는지 그는 알까...?
30분이 지났다. 초조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올 걸. 옆에서 보던
평소 친분(?)이 있던 수학선생님(개인적으로 엄청 존경함)께서 보기 딱했는지
자신이 상담을 해주신다고 하셨다.
수학선생님께서는 내 점수와 대학을 비교하면서 진지하게,열성적이게 상담을 해 주셨다
자신의 반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 잘하는 우등생도 아닌, 1년 내내
당신의 팔이 저리도록 몽둥이로 때린 학생을....
상담을 하고 보니 의외로 내 점수로 지원가능한 대학이 많았다.
\"일당 경대를 한 넣어보자꾸나,전부 하향지원하는 추세니까, 그틈을 노리면 돼\"
\"녀석, 농땡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공부도 좀 하는데..?\" 선생님께선 그 말씀을 끝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면서...왜일까..
왜 자꾸만 눈 앞이 흐려질까.....
문 밖까지 배웅해주시던 선생님의 엶은 미소를 떠올리며 교무실에서
빠져나온 내게 친구가 나직히 말했다.
\"지금 우리선생....xxx집에 있다더라..xxx 그 애가 아이들 있는데선
집중 안된다며....근데 따라간 선생은 또 뭐냐? 너 오늘 1시간동안 바보짓한거야 알아?..\"
친구의 푸념섞인 말에 나는 그냥 웃었다.건물에서 나올 때까지 그 녀석은 계속 담임을 씹었지만
이상하게 내겐 아무런 느낌도 주질 못했다. 평소같았음 내가 더 열을 낼 텐데..
계속 중얼거리는 친구를 뒤로 하고,내 눈 앞엔 언제나 싱그럽고 새로운 교정이 펼처지고,
내 머리 위엔 구름한 점 없는 하늘이 가슴이 시리도록 새파랗다.
문득 난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아까 수학선생님께서 내 어깨를 짚으시며
하시는 말씀을 자꾸만 되뇌였다.
`세상은 살 만한 거라고...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아니, 지금부터가 시작
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