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태어난 핏덩어리인 상태로 포근한 애정의 보자기에 싸여 세상에 태어남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토실토실한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사람들의 사랑을 온 몸으로 화답하였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말랑말랑한 나의 두 볼을 꼬집어보고, 조그마한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며 사랑을 확인하고 표현했습니다. 응아를 해도 사랑스러웠고 쉬아를 해도 앙증맞게 웃어제끼는 나의 환한 얼굴에 모두들 넘쳐나는 기쁨에 겨워 몸서리를 쳤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렇게 태어남과 동시에 폭포수와 같은 사랑의 봇물을 세상으로부터 선물받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조그만 보금자리를 조금씩 넓혀갈때쯤 자신이 영원히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일깨워갑니다. 사회의 틀에 싸여 때로는 혼나기도 하고, 다툼이 시작되고, 나 자신을 나 자신이 사랑하는 방법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부지불식간 배우게 됩니다. 때로는 학교선생님을 흠모하기도 하고 같은동네, 같은 반 이성친구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TV속 유명 연예인들에게 사랑의 추파를 던져보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사랑 이어받기 과정속에서 때로는 시린 아픔의 상처를 안기도 하고, 이를 이기고 견디어낼 수 있는 참을성과 인내심과 겸허함을 배우기도 합니다. 어떤이는 사랑의 결정체를 사물에 투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을, 바다를, 책을, 이념 등등을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의 목표와 결부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오랜시간이 흘러 깨닫습니다. 사랑은 받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때와 장소의 차이만이 근소하게 날 뿐 어느 누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느낌니다. 어릴적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의 시선들이 하나 둘 멀어져 갔다는 사실과 이제는 자신이 또 다른 무언가에 사랑의 시선을 주어야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모든 것이 조금씩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흔적만을 남긴채 변해가듯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사랑은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며 언젠가는 변색되고 또 다른 의미의 무언가로 변해갈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의 무언가는 또 다른 사랑일 수도 있고, 미움일 수도 있고, 방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의 대상이 되고자 자신의 삶을 마약으로 버텨가며 끝내 죽음으로 치닫는 일부 연예인들과 모든 남성들의 사랑의 대상이었던 마를린 먼로의 외로움에 둘러싸인 싸늘한 결말처럼 받기만 하는 사랑은 정신적인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며 그 수명이 현저히 짧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해전, 송년특집이라며 방송되는 장애인 노래자랑을 우연찮게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푹신푹신한 쿠션에 기대어 고정시킬만한 채널의 부재로 인해 보게 되었던 그 프로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장애자들이 자신들의 장기(대부분 노래였습니다.)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무대였습니다. 객석에는 가족이라든가, 친지라든가, 관련업계에 종사하시는 걸로 추정되는 많은 분들이 계시었고, 틈틈히 같은 장애가 있으신 분들의 환호하는 함성도 있었습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나른함을 달래기위해 멍하니 TV속 사람들의 잔치를 구경하며 나는 연일 \"참 안됐다\", \"어쩜 저렇게...\"를 대뇌이었습니다. 버겁게 열창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선율에 도취되었다기보다는 그 형태와 모양이 안쓰러워 얼굴을 찡그리고 금방이라도 한숨을 내뺕을양으로 말입니다. 마치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불행에 감사하기라도 하듯 그렇게 비겁하게 말입니다.
어느 순간 나는 느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리송한 상황을 느꼈습니다. TV 속 사람들은 너무나도 천진하고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힘겨운 자태만 보았을뿐 그들의 행복어린 웃음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평탄한 안위만을 생각한 채, 더 깊은 내면의 사랑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의 진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저들은 저렇게 행복해하는데, 난 왜 저들을 보며 안타까와 하고 있지?\"라고 말입니다.
썰물처럼 밀려오는 마음속의 허전함과 썰렁함이 텅 비어있는 나의 육체를 한바퀴 돌아 다시 정신을 차렸을땐, 저들이 아닌 바로 내가 장애인임을 알았습니다.마음이 비어있는 장애인. 사랑을 받을 줄만 아는 장애인, 사랑을 받기 위해 세상속에서 처절하게 실패하고 아파하고 우는 장애인, 숲을 보지 못하고 가녀린 나무만을 한없이 탓하는 속된 장애인, 내가 먼저 사랑을 나누어 줄줄 모르고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언제나 투덜대며 짜증내는 바보같은 장애인임을 깨달았습니다. TV속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맑은 하늘같은 따뜻한 파란색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있던 것이다.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었던 겁이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에는 너무나도 인색합니다. 갓 태어난 핏덩어리에게 쏟아지던 사랑의 일부만이라도 다시 돌려주고 간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봅니다.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나에게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졌으면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영국의 시인 베를린이 자신의 싯구의 한 구절인 \"너는 내 청춘을 가지고 무얼했니?\" 라며 나를 향해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웃고 다녔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라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도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