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절정기를 그림자처럼 늘어뜨린 늦가을은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하기만 하다.
하늘도 바람도 쉬이 잠이 들지 못하는 늦은 가을밤이 당신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을까..
언제나 변함없이 얼굴조차 서로 마주보지 못하는 엇갈리는 시간을 걷고 있는 나의 아버지와 나는 오늘도 변함없는 일요일이 되었어야 할것을..
늦은밤 독서실에서 돌아온 나는 집안의 적막속에서 엷은 황토빛 불빛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식당의 비상등 하나만을 켜놓은채 피로에 눌린 모습으로 앉아계시던 나의 아버지.
식탁위에 가장 사랑하노라고 당신께서 입버릇처럼 말하시곤 하던 투명한 액체와 작은 빼빼로 한상자를 올려놓은채 당신은 그렇게 나를 기다린듯 잠들어 계셨다.
가을..
당신의 엷게 주름진 눈가와.. 까맣게 죽어있는 입술에서 나는 문득 가을을 느꼈다.
여름한철을 그 신선함과 푸르름속에서 반짝였던 나뭇잎이 어느 한순간 낙옆이 되어 발치에 바스러지던 그 안타까운 느낌이..
당신의 불규칙한 숨결이 처절하도록 서러운 아픔이되어 나의 가슴에 박혔다.
그 불규칙한 숨결속에 반평생을 딸자식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신 아버지의 외로운 심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당신의 거친 나무껍질 같은 볼을 쓰다듬어보며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매서운 추위를 생각했다.
차가운 눈속에 자신의 존재조차 잃어버리고 사그라들 낙옆을..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순간을 사랑할줄 모르는 나는, 언제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불안을 가슴안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미래는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언제나 우리는 지금을 걷고 있으니.. 내일이란 그저 말장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단어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당신의 숨결속에 나의 숨결을 섞으며 오늘 처음으로 나는 순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않을 이 순간을..
처절하도록 가슴저리는 시간이지만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 하리라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