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창작과비평』 2001년 겨울호 당선작 최금진의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과 2005년 동아일보 시당선작 '이영옥의 단단한뼈'의 비교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최 금 진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 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 …… 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 제 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창작과비평』 2001년 겨울호
<2005년 동아일보 시당선작> -
단단한 뼈 - 이 영 옥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
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
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
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
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 펀단은 스스로 하시기 바랍니다. -
2. ‘밥이 부끄럽지 않은 심사위원들을 위해’
신춘문예 당선시의 문제점에 대해
2005년 부산일보 당선詩 ‘항해’의 모티브 및 이미지 模作 혐의
새해 벽두면 문학인들과 문학청년들은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특히 신춘문예에 응모를 한 문학청년들이라면 그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훌륭한 신인들의 작품세계를 보며 경이를 표하기도 하며 또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작품 앞에 실망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표절시비다. 표절시비는 당연히 심사위원들의 자질문제와 관련돼 문학청년들을 실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내몰기도 하는 현실이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일부 능력 있고 재능 있는 문학청년들에게 문학에 대한 회의감을 줄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한국문단의 퇴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 2005년 신춘문예 당선(시부문)된 일부 작품의 경우도 이 같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ㅈ일보와 모 중앙지의 표절시비와 마찬가지로 올핸 부산일보에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부산일보 시부문 가작으로 당선된 ‘항해’의 경우 시문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선 지난해 표절시비에 버금가는 것으로 읽혀져 충격적이다. 이는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나름대로 시공부를 하고 있는 문학청년들이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들 또한 마찬가지라고 사료된다.
우선 ‘항해’의 경우 기성시인, 그것도 꽤나 문단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두 작품의 모티브와 이미지를 모작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부산일보 당선작 ‘항해’와 지난해 한국문단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중의 하나인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과 2003년 신춘문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던 마경덕 시인의 ‘신발論’을 비교해보자.
올해 부산일보 당선작 ‘항해’의 1연 ‘비린내 그윽한 다대포 바닷가/꼼장어 구이집 방문 앞에/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뒤엉켜 있다.’는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작품 첫 행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에서 모티브를 빌려 ‘喪家’를 ‘꼼장어 구이집’으로 치환, 풀어썼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이 같은 혐의는 2연으로 이어진다.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놈 /물끄러미 정문만 바라보는 놈 /날씬한 뾰족구두에 치근대는 놈 /신발 코끝 시선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의 2연은 유홍준 시인의 작품 3행‘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에다 7-8행‘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의 화법을 변조, 풀어쓴 것이다.
여기에다‘에라 모르겠다’는 유홍준 시인의 4행 ‘젠장,’이란 화법과 대비, 詩作의 어법마저 흉내를 내고 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주고 있다.
‘항해’의 3연‘ 어느새 젓가락 장단 끝이 나고 /사람들 한 무더기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다대포 앞바다 썰물 빠지는 소리가 /꼼장어 구이집 창 너머로 아득하다.’는 구절도 자세히 읽고 음미해보면 교묘하다.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13-17행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를 변조한 인상이 짙다.
2003년 신춘문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던 마경덕 시인의 ‘신발論’에서 차용한 이미지는 거의 모작이라고 봐야 한다.
‘항해’4연 중 마지막 두 행‘잠시 정박했던 배들이 /저 푸른 바다로 떠난 것이었다.’란 구절은 ‘신발論’의 마지막 구절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란 이미지를 그대로 도용한 것으로 읽힌다. 덧붙이자면 ‘신발論’2연의 마지막 부분‘한 척의 배 과적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인 나는 짐이었으므로,’에서 발아된 착상으로 ‘잠시 정박했던 배들이’이란 표현이 만들어졌다는 혐의 또한 지울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과 2003년 신춘문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던 마경덕 시인의 ‘신발論’을 훌륭하게 짜깁기한 모작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당선작품이 모티브와 이미지를 모작했다는 혐의가 있음에도 불구, 모델로 삼은 유홍준 시인과 마경덕 시인의 작품보다 그 완성도나 작품 수준이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다.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참신성은 물론 어법 문제 등에 있어서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2005 부산일보 당선작 ‘항해’를 쓴 시인을 폄하하기 위한 글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시공부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모티브나 이미지를 모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년에 한번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는 신춘문예란 점을 감안, 심사위원들의 성의 없는 심사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기성시인의 이미지 원형을 지적하면서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차선으로 떨어진 문학청년들의 심정은 어떨까.
수천 편 가운데 오직 한편만 당선이 되는 신춘문예 공모전 심사를 맡은 시인들에게 좀더 공부를 하고 성의 있게 심사를 해달라는 이 나라 문학청년들의 뜨거운 가슴을 대신 전하고 싶을 뿐이다.
―시를 사랑하는 문학청년 닥터 K
2005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작) 과 유홍준 시인의‘喪家에 모인 구두들’과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경덕 시인의 ‘신발論’을 비교.
항해 / 손병걸
비린내 그윽한 다대포 바닷가
꼼장어 구이집 방문 앞에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뒤엉켜 있다.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놈
물끄러미 정문만 바라보는 놈
날씬한 뾰족구두에 치근대는 놈
신발 코끝 시선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어느새 젓가락 장단 끝이 나고
사람들 한 무더기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다대포 앞바다 썰물 빠지는 소리가
꼼장어 구이집 창 너머로 아득하다.
연방 뭐라고 중얼거리는 꼼장어 안주 삼아
슬며시 쓴 소주 몇 잔 들이켜고는
담배 한 개비 입에 문 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잠시 정박했던 배들이
저 푸른 바다로 떠난 것이었다.
그 순간, 꼼장어 구이집 안으로
환한 웃음 실은 만선(滿船)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들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식구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몇 개
신발論 /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심사평:정진 가능성에 높은 점수
응모된 시들 중에서 1차로 20여편을 건져올리면서,우리 시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예비 시인들의 관심이 서정시에 가 있다는 점,소재는 일상적 체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발랄하고 참신한 이미지는 내보이나 내면의 깊이가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응모 시의 전반에서 실험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이는 패기 있는 개성적인 시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잘 꾸며진 소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1차로 걸러진 20여편은 시 공부를 한 흔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시편들이었다. 그러나 소품이 갖는 한계를 시적 응집력을 통해 극복하고,새로운 세계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는 시적 정신을 토대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출해 보려는 의욕보다는 시의 기교 습득에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결과로 보였다.
이런 아쉬움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첩자''소라''항해'였다. 그런데 '첩자'는 너무 기계적인 구도와 시적 언어가,'소라'는 너무나 단정한 틀과 일상화된 이미지가,'항해'는 기성 시에 나타난 이미지의 원용이 각각 문제로 지적되었다. 힘들게 '항해'가 지닌 긍정적 세계 인식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어,이 작품을 가작으로 뽑았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시인 이시영·최영철,문학평론가 남송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