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축구를 보기위해 새벽까지 TV를 틀어놓는 것과 같아. 축구를 보며 환호하는 것과 같아. 당신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괴성"으로 치부되는 나라. 한국."
- 언젠가 나우누리 H.O.T 팬클럽 게시판에서 발견한 소녀팬의 글
"안티 특징 - 대부분 군대 갔다온 20대 중반 남성 (고로 정신 다 차린 인간된 사람들 대부분)
팬클럽 특징 - 거의가 10대 여고생(친구따라 강남갈 나이..) "
- 네이버 지식iN '무뇌충' 검색에서 발견한 안티문희준의 글
왜 문희준인가
문희준 일명 '무뇌충'에 대한 비하와 희화화는 이미 유행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가학적인 합성사진과 만화들이 인터넷을 나돌고, 문희준은 '목을꺾고 혀를빼고 팔을 부러트릴 X새끼' 등의 아무리 잔인한 욕을 퍼부어도 마땅한 대상이 됐다. 그는 네티즌들의 가학적 욕구를 공공연하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제물이다. 많은 이들이 환호하며 그 제물을 이빨로 잡아뜯으면서 행복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문희준 어록은(그것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덧붙여지고 윤색되면서도) 많은 안티-팬들에 의해 전파되고 술자리의 즐거운 안주감으로 역할을 한다.
'대중문화 발전에 저해되는 운운'의 말도 안 되는 명분은 집어치우자. 지금 안티들의 반의반의반 만이라도 대중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이미 예전에 대중문화 환경은 변혁되었다. 덧붙이자면, '대중음악발전' 운운하며 문희준이라면 눈을 뒤집고 싫어하는 남자들이 쥬얼이나 효리라면 눈을 뒤집고 좋아하는 모습들을 적잖이 보곤 했는데, 쥬얼과 효리가 대중음악 발전에 어떤 공헌을 했기에 좋아하는지,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참 미안해지곤 한다.
뭐, 그러니 피차간에 솔직해지자. 그냥 재밌게 후려칠 인간이 필요하고, 거기에 문희준이 적절히 들어선 거 아닌가. 하나의 유행이 쉬이 퍼지는 이 인터넷 강국에서 연예인 한 명 매달아놓고 돌로 치며 즐거워 하는 현상은 사실 언제나 있어왔다.(이는 어쩌면 과거 화형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인파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을 지 모른다.)
내가 궁금한 것은 왜 그게 문희준이며, 왜 안티문희준 현상이 이토록 광범위하고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생긴 게 이상하고 말도 재수없다' 개인적 취향이 그렇게 공공연한 테러를 일으킬 이유가 되다니 한국은 정말 무서운 나라다. '별거 없는 놈이 너무 잘난 척 한다' 별거 없으면서 잘난 척 하는 연예인이 어디 한 둘인가? '그 놈 때문에 정신적 상처를 받은 락매니아들의 복수다' 한국 남자들은 참으로 섬세하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도 그토록 쉽게 정신적 상처를 받다니. '빠순이나 끌고 다니던 아이돌 댄스가수가 감히 락을 한다고 돌아다닌다' 오호라, 나는 그 대답이 이유를 일부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소년팬은 매니아, 소녀팬은 그루피
안티 문희준들의 공격 대상에는 '무뇌충'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양념처럼 껴있는 것이 바로 '빠순이'다. '빠순이'는 본디 성매매 된 여성이나 '성을 밝히는' 여성을 가리켜 부르는 남성들의 은어였는데, 이것이 소녀팬을 비하하는 은어로 자리잡았다는 것 역시 주의할 만하다.(안티문희준의 글에 반박하는 자 역시 '빠순이'로 낙인 찍히며 욕을 듣게 된다. 그러니 내 운명도 정해져 있을 것이다. 나는 H.O.T 해체 이후 TV에서 문희준의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람임에도, 감히 안티 문희준들의 기괴한 성벽에 뭐라 뭐라 했다는 이유로 빠순이라 불리며 성폭력적인 욕설 메일들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기실 안티들이 문희준의 소녀팬들에게 행하는 폭력 때문이다. 그들이 넷 상에서 배설하는 언사들은 명백히 성폭력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폭력적 언행에 대한 반성도 비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 '빠순이는 음악계와 연예계를 개판저질판으로 만드는 x년들이니까.'
효리 이야기가 또 나와서 미안하지만, 섹시한 효리에 환호하는 수천명의 소년팬들에 대해서는 '음악엔 관심없이 외모만 보고 날뛰는 음악계 망치는 골빈 사내 자식들'이란 욕이 결코 나오지 않는다. 이 차별 지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국사회에 만연해있는 소녀비하, 여성혐오다. 락콘서트장을 돌아다니며 환호하는 소년들은 '락매니아'로 불리지만, 소녀들은 '그루피'가 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앞에서 인용했던 나우누리 게시판 글 앞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난 당신들이 증오스러워. 우리를 에쵸티 외에 머리 속에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백치로 만들어놓으면 기분이 좋아?" 한국 남자들의 본성이 표출되는 인터넷문화는 불행히도 지극히 여성혐오적이고 마초적이다. '빠순이'에 대한 가학적 욕설을 포함한 안티문희준 현상 역시 '기형적대중문화에 반발하는 정의로운 네티즌'의 구도보다는 '여자아이들의 것이라면 만만하고 우습게 보는 마초네티즌'의 구도에 더 닿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대한 건아들은 사나이다운 것이라면 깜빡 죽는, 귀엽지만 유치찬란한 습성이 있다. 그것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가 '헤비하고 야성적인 음악을 하는 락커'다. 그런데 소녀팬들의 것인 아이돌 가수가 감히 남자들의 장르인 락을 한다고 돌아다닌다, 이 얼마나 재수없는가, 이것이 안티문희준들이 몰려들게 한 주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상처입은 락'의 실체는 마초성
소녀들은, 그리고 소녀팬들은 언제나 변방에 있다. 그들은 광적인 백치로 취급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구원 받아야 할 가련한 희생물로 취급 받는다. 자아 없는 인형 취급을 받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다. 대중문화가 수용자를 직접적으로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와 상호소통하면서 변화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아이돌 스타와 십대 소녀팬의 관계를 읽어내는 데 있어서는 어째서 그토록 단순한 도식만을 사용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팬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무엇이 생성되는가는 관심 밖이며, 일단은 조롱과 무시 잘 해봐야 동정이다. '안티문희준'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문희준과 그 팬들이 '락팬들에게 정신적 폭력을 행사해 보복을 받고 있다'는 식의 말을 거의 믿지 않는다. 한국의 락음악 수용자들에 비해 안티문희준들의 수와 정도는 지나치기도 하거니와, 그 정도 발언들로 상처 입을 '락스피릿'이란 정말 초라한 것일 거다. '상처 입은 락'의 진정성과 전형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 거창한 말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다만 가학적 쾌감과 결탁한 마초성이 아닌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홍문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