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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며칠이 지난 후였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나오는데 유미가 도서관 앞에서 남자랑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왼쪽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있었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나는 다 들을 수 있었다.
“무의미한 일은 그만 두랬잖아? 이 상황에 공무원 시험 공부라니? 그게 말이 돼?”
“뭐가 말이 안 돼? 난 어렸을 때부터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공부를 하는 건데 뭐가 문제야?”
“넌 점점 앞을 못 보게 되잖아? 그건 누구보다도 니가 제일 잘 알잖아? 이 다리도 너를 살리려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
“그래서... 그래서 헤어지자고 하잖아? 다음엔 너 죽을지도 몰라.”
“그런 말이 어딨어?”
“아무튼 우린 끝났어. 그러니 귀찮게 하지마. 난 내 방식대로 살 테니까. 난 꼭 사회복지사가 될 거라고.”
유미는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가다가 나랑 마주쳤다. 유미는 조금 당황해 했다.
“다 보셨군요.”
유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유미의 눈에 눈물이 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날 저녁, 학교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간 나는 유미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식판을 들고 유미한테로 가서 앉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있었던 일 말인데 앞으로 앞을 못 보게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역시 다 들었군요.”
“미안, 엿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교수님, 잘못이 아니에요. 큰 소리로 싸웠으니까 들리는 게 당연하죠. 저 베체트병에 걸렸어요.”
“응? 베체트병이라니?”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병명이었다.
“저번에 눈이 좀 이상한 거 같아서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가 저한테 3년 안에 실명 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치료법도 없대요.”
나는 충격적인 말에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젊음을 마음껏 누려야 할 학생이 실명을 한다니? 그건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남자친구가 낮에 그런 것도 솔직히 무리는 아니에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이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없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수님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내가 이제껏 맞닥뜨린 질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저 그래도 한 번 해 볼래요. 꿈이니까요.”
나는 놀란 눈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 유미의 말은 내가 20년 동안 학생들한테 가르친 게 무엇이었나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교수님, 전 그만 일어날게요. 아직 해야 할 공부가 남아서.”
“응. 시험이 언제지?”
“11월이요.”
“합격하길 빌게.”
“예. 열심히 할게요.”
유미는 떠났다. 나는 유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