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를 정리하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쓴 단편 소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문장력도, 맞춤법도 엉망인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수정없이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내 어린 날의 순수한 열정과 꿈이 담긴 글이기에 본래 그 모습 그대로 올리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전에 쓰셨던 글을 읽을 때면 저와 같은 아련한 그리움과 가슴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쨌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 '작가'라는 꿈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나도, 이십대 중반에 나도 여전히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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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그렇게 좋아? ”
나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그럼, 넌 돈 싫으냐? ”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 말을 툭하니 내뱉고는 가계부에 몰두하는 그녀다. 더 이상 그녀와 마주앉아 할 말 같은 건 없었다. 방을 나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을 그녀는 듣지 못했나보다. 아니, 어쩌면 듣고도 그냥 무시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핸드폰을 손에 집어 든다. 익숙한 번호가 액정에 찍히고 다이얼이 간다. 몇 번의 다이얼이 가고 번호만큼이나 익숙한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 왜? ”
요즘 발신자 번호가 뜨면서 ‘여보세요’라는 예의 그 말은 사라진지 오랜 듯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역시 그 말을 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로 보아 분명 집은 아닌 듯 했다.
“ 어디야? ”
“ 나 지금 돈 벌고 있는 중이야. ”
대충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익숙한 목소리는 나의 오래된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이다. 우리는 서로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생리 날짜가 몇 일인지 정도의 세세한 것까지 알만큼 빤한 사이였다. 나의 친구는 교육자 집안의 1남 2녀의 막내이다. 오빠는 올 해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삼수생이고, 자신과 3살 터울에 언니는 아버지와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걷기 위해 교육대에 다니고 있다 했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라면 방황이었고, 녀석의 말대로 용기 있는 도전이라면 도전이었다. 하지만 분명했던 건 그 돈을 번다는 것이 빨간 불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도 짙은 화장과 독한 향수로 자신을 숨기며 돈을 벌고 있을 녀석이었다. 아랫도리만 간신히 가린 치마를 입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것이다. 자신의 나이에 몇 갑절은 된 사내놈들의 품에서 놀아나야 했을 것이고, 윗도리는 물론 아랫도리로 숱하게 빼앗겼을 것임이 확실했다. 나의 오래된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인 녀석도 그녀만큼 돈을 좋아하는 걸까? 뭐, 가만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말대로 나 역시 돈이라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건 확실했다. 지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 나도 갈래. ”
내게도 빨간 불이 생겼다. 잠시 후면 빨간 불이 깜빡이기 시작할 것이다.
녀석은 굳지 나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정쩡한 태도는 녀석의 속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이유가 뭐냐는 물음의 눈빛을 던지며 담배를 입에 문 나의 친구는 금세 뿌연 안개를 만들어냈다. 나는 안개를 가르듯 입을 열었다.
“ 돈이 좋더라고. ”
나의 말에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따라 오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긴 복도를 중간에 끼고 양옆으로 문이 쭉 나있다. 복도의 제일 끝 오른 쪽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안으로 들어가자 행거에 옷가지들이 너저분하게 걸려있었고 화장대 한 가득 화장품이 놓여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돌아보며 가라앉은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 맘에 드는 옷 골라 입어. 화장은 네가 못하면 내가 해 줄게. ”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행거에 걸린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친구는 행거에 등을 돌리고 놓여 진 소파에 앉아 낮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손바닥만한 천 쪼가리를 옷이라 만들어 낸 사람이나 이런 걸 옷이라고 산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 옷을 입고 있는 나. 다들 제정신의 사람이 아니었다. 손바닥만한 천 쪼가리로는 아랫도리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젖가슴께 까지 패인 민소매 티와 코흘리개들이 목에 메고 다니던 하얀 손수건 길이 정도에 치마를 가장한 천 쪼가리를 나는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옷차림에 못지않은 분장인지 화장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은 천생 도깨비 꼴이다. 내 눈에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속눈썹을 붙이고 쥐라도 잡아먹은 것 같은 입술. 화장으로 퍼렇게 변해버린 눈두덩이, 족히 긁어내면 2센티는 될 듯한 파운데이션. 거울에는 20살 초아가 서있었다.
“ 잊지마. 지금부터 너는 20살이고, 이름은 초아야. 알겠니? ”
“ 그래. 알고있어. ”
녀석은 아직도 어정쩡한 태도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방금 전 화장을 하는 내내 나의 눈을 피했다. 지금은 일부로 그렇게 피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나와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 들었다. 녀석의 태도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크게 개의치 안았다.
긴 복도를 녀석이 나의 몇 발자국 앞에서 걷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오늘 보니깐 녀석의 체격이 참 작다. 키만 컸지 몸은 약골인 녀석이다. 복도를 걸으며 양옆의 방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를 끼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벌쭉 해서는 술을 마시는 사내, 여자와 히히덕 거리는 사내, 여자의 몸을 더듬는 사내까지 천차만별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춰서고 한 방문 앞에 녀석이 섰다. 녀석의 가슴이 올랐다 내려가는 걸 보면 숨을 깊게 들여 마셨나 보았다.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 준비 됐니? ”
“ 준비? ”
나의 되물음에 녀석은 빤히 나를 바라본다. 비록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여전히 태도는 어정쩡했다.
“ 준비랄 거 있어, 뭐? 그냥 들어가면... ”
“ 그럼, 들어가자. ”
녀석이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 중년의 사내 둘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두 사내 중 한 사내는 뭘 그리 잘 먹고 다니는지 얼굴에 기름기가 잔뜩 흐르는 게 아무래도 밥에 버터를 비벼 먹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들 정도였다. 또한 땅만 넓은 줄 알고 옆으로 퍼진 살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고, 우리가 들어가자 반가워하는 기색이란. 나머지 한 사내는 보통의 체격에 옆으로 쪽 찢어진 눈매에 두툼한 입술, 주먹만한 코. 그들의 모습에 실소가 터질 정도였다. 그들은 내 그 웃음이 이 방면의 여자들이 자신들에게 흘리는 예의 그것으로 생각했지만 말이다.
“ 어서 와서 앉아! ”
“ 네. ”
자신의 옆자리를 치면서 반기는 살찐 사내의 손목이 금시계 덕에 빛이 났다. 저런 걸 두고 돼지 목에 진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신히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는 그 사내의 옆자리에 앉았다.
돈이라는 게 참 희한 한 것이었다. 잠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는 이와 같이 있고 싶게 만들고,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우러러보게까지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난 돈 10만원에 온갖 가진 애교를 짜내어 사내를 홀려대고 있었다. 자신의 딸 뻘이 되는 여자아이의 젖가슴에 아랫도리가 닳아 올랐고, 탱탱한 궁둥짝에 욕정을 들어냈다.
“ 너 나랑 나갈래? ”
“ 어딜? ”
“ 걘, 안돼요! ”
사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되물음을 막아서는 녀석이었다. 앙칼진 녀석의 목소리에 사내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 그건 얘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야!! ”
“ 얜 못 나가니깐 그렇게 아세요! ”
“ 뭐야?! ”
기어코 사내의 손이 올라갔다. 그때서야 나는 방금 전 사내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사내에 손을 막아섰다.
“ 좋아요! ”
“ 야! 너 미쳤어?! ”
“ 대신 난 비싸요. ”
“ 오호, 그래? 좋아! 얼마든지 주지!! 얼마를 원해? ”
어떻게든 나를 말려보려는 녀석을 무시해 버리고 나는 조소 띈 얼굴로 사내에게 말했다.
“ 100만원. ”
그날 나는 사내를 따라 2차라는 것을 나갔다. 막상 여관방에 들어서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분명 내 입으로 사내를 따라 가겠다 그랬고, 사내는 내게 벌써 100만원이라는 돈을 쥐어 준 후였다. 그렇게 사내는 2시간 동안 자신의 욕정을 채웠다. 100만원이라는 돈을 두고 볼 때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고, 길 다면 긴 시간이었다. 어찌되었건 내 손에 100만원이라는 돈이 들려있었고 이 시간 이후로 나는 그 사내를 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거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내가 나를 다시 찾으면 달라지겠지만.
사내는 여관방을 나서며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있는 내게 말했다.
“ 너 정말 20살 맞아? 뭐, 아니어도 난 아무 죄 없다. 분명 네가 네 입으로 20살이라고 했으니깐. 쿡, 이건 팁이야! 다음에 또 보자고. ”
사내는 바닥에 만 원짜리 몇 장을 던져 놓고는 방을 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침대에 똑 바로 누울 수 있었다. 마치 허리 아래는 모조리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내의 그 육중한 무게를 받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침대 시트에서 아직도 사내의 욕정이 뿌리고 간 정액 냄새가 진동했다. 비릿한 그 냄새에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밀려오는 피곤에 나는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잠에서 깼을 때 녀석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침대에 걸터앉아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그 큰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 기세였고, 입을 벌려 욕지거리라도 할 듯 입술을 악다물고 있었다.
“ 어떻게 알고 온 거야? ”
“ 괜찮니? ”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녀석에 표정에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반쯤 일으키다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다. 허리가 잘 구부려지지 않았다.
“ 앗! ”
내 짧은 비명소리에 녀석은 많이 놀란 듯 보였다.
“ 많이 아파? ”
“ 조금. ”
일그러지는 녀석의 표정. 녀석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빤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녀석은 나를 껴안고는 토닥여 줄뿐이었다.
일주일 만에 들어간 집은 여전했다. 그날 역시 가계장부 정리에 정신이 없던 그녀는 나를 보고는 버럭 소리부터 질러댔다. 뭐, 그럴 그녀의 반응은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당황하게 했던 건….
“ 자, 이거 받아. ”
“ 이게 뭐야? ”
“ 엄마 좋아하는 돈이야. ”
역시 그녀였다. 돈이라는 말에 얼른 봉투를 받아 들고는 안에 들었던 돈을 빼내어 세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긴 돈인지 따위는 별 궁금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 되는 돈이지가 그녀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다.
“ 150만원이네? 이 큰돈을… 아무튼 잘 쓸게. 설마 네가 나쁜 짓해서 벌었겠어, 안 그래? ”
“ 상관있을까? 돈이어서 좋잖아. 그거면 된 거 아닌가? ”
그 말을 하며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그녀의 돈에 대한 욕심, 그리고 집착은 ‘설마’라는 말로 자신의 손에 들어온 돈을 지키려는 자기 합리화와도 같은 말이었다. 마치 그녀는 돈이 인생의 전부인 듯 행동했으며, 그렇게 인생 또한 살아갔다.
예전에 그녀는 지금처럼 이렇게 돈에 집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실패와 어마어마한 빚들을 갚아가면서 그녀가 변하였다. 그 많은 빚들을 갚자면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돈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보다도 독해져야 했었을 것이다. 모든 빚을 다 갚고 난 후 그 돈에 대한 독함이 심해져 지금의 집착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돈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임에도 또 한편으로는 참 무서운 것이다. 사람을 이토록 변하게 한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돈을 세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연스레 내 얼굴은 찡그려졌고 입으로 나오는 말 역시 고을 리가 없었다.
“ 엄만, 돈에 미쳤어! ”
갑작스레 들리는 내 목소리에 놀란 그녀는 세던 돈을 얼른 바지춤으로 구겨 넣듯 넣고는 앙칼지게 말했다.
“ 나 돈에 미친 거 이제야 알았냐! ”
“ 헛, 정말 미쳤어. ”
그녀는 나의 말에 아랑곳없이 종종걸음으로 나를 스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분명 돈을 숨기러 가는 것이었다. 그녀의 금고는 화장실 변기통이다. 비닐로 둘둘만 돈 봉투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워져야 그녀는 만족하는 걸까? 변기통을 돈으로 가득 채워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화장실을? 그것도 아니면 집안 가득?
그녀가 돈을 넣어둔 변기만큼 돈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난다. 아마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오면서 그 돈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체취가 묻어서 일 것이다. 물론 개중 향내가 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돈의 냄새가 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자퇴라는 이름으로 학교로부터 강제퇴학을 당하였다. 마지막 이미지 관리였을까?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갈 것을 권하였다. 눈물 나게 고마운 배려였다. 나는 그들에게 시원스레 퍼큐를 날리고는 교무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교무실 안에서는 동물의 소리인 듯 한 것에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왜 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곳을 자꾸 떠올리는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뭐, 굳이 내가 원해서 학교를 나온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그래, 미련일 수도…. 이런 생각에 머리가 아플 때면 나는 담배 한 개비로 답답함을 날려버리곤 했다.
이젠 나는 20살 초아라는 빨간 불 아이에 익숙해졌다. 초아는 더 이상 짧은 스커트에 민망해 하지 않았다. 화장하는 것도 능숙해 졌고, 사내들에게 흘리는 그 얘의 웃음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빨간 불에 너무 잘 어울리는 아이로 변해있었다.
“ 나, 임신했나봐. ”
나는 물고 있던 담배를 놓으며 녀석을 쳐다보았다. 정말 담담한 건지, 아니면 그런 척 하는 건지. 녀석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 역시 그렇게 놀라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콘돔, 피임약을 쓴다지만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많으면 하루에 4번 이상도 나가는 그 2차라는 것. 약발이 안 받을 만했다.
“ 어떡할 건데? ”
녀석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물음에 녀석은 한참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저 애꿎은 바닥만 툭툭 발길질을 해 대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쟤 혼자 반쯤 타 버린 담배를 깊게 빨아 드렸다. 그리고는 후 하고 내 뱉은 연기. 그 순간 웃기지도 않게 ‘담배는 임신부에게 좋지 않다’,‘흡연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라는 금연문구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훗 하며 짧게 실소를 터뜨리며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왠지 그렇게 계속 앉아 있기가 뭐했다. 속이 답답하기도 했고, 그 뭐랄까 금방 사우나에서 나온 그런 어지러움? 현기증? 아무튼 그런 느낌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아무런 대화도 오고가지 않는 분위기 역시 그렇게 탐탁치 만은 않았으므로…. 나는 치마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녀석의 건조한 목소리가 나를 잡아 세웠다.
“ 집에 전화하려고. ”
갑자기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 오는 것 같아 녀석을 돌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약간 떨리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 결정 봤구나. ”
“ 응. ”
그렇게 몇 분간의 침묵. 나의 현기증은 더욱 심해졌다. 서있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어지러움에 두 눈을 감고는 몸에 남은 모든 기운을 다 쥐어짜며 말했다.
“ 돈은 있니? ”
“ 어. ”
머리가 노래지는 게 금방이라도 쓸어 질 것 같았다.
“ 그..게 최,최선이니깐. ”
물기 어린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랬다. 울보인 녀석에겐 저런 모습이 훨씬 잘 어울렸다. 방금 전까지의 그런 담담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다.
“ 내가 따라가 줄게. ”
“ 고…고마워. ”
녀석은 소리 내어 펑펑 울어댔다. 서럽게 울어대는 녀석의 소리가 자꾸만 내 가슴을 콕콕 찔러댔다. 그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나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구멍을 만들어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아파 오는 가슴을 손으로 쓸었다.
그렇게 3일 뒤 녀석은 집으로 돌아갔다. 녀석의 어머니는 마치 두 번 다시는 녀석을 놓지 않겠다는 듯 녀석의 손을 꼭 잡으면 돌아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굳지 아쉬워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녀석의 눈에 고여 있던 그 눈물을.
“ 초아야 어서 서둘러. 박 사장님이 너 찾고 날리다. ”
마담은 호들갑스런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방을 나갔다. 여전히 나는 이 빨간 불이 가득한 곳에 있다. 녀석은 집으로 돌아갔고 초아는 빨간 불에 남아있었다.
녀석이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으른 손동작으로 간신히 분첩을 들었다. 한참을 얼굴에 분을 바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적-얼마쯤 바라봤을까. 내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눈물을 닦아 내지 않았다. 눈 화장이 지워지고 있었지만. 그 모습으로 멍하게 앉아있던 나는 한참 뒤 잔뜩 눈물을 먹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을 뱉어냈다.
“ 넌, 누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