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제는 잊혀졌을지도 모르는 칼스랍니다.
그냥.. 오랜만에 와서. 제 기억 중 일부를. 이곳 창작글이라는 디스크에 저장을 해놓고. 떠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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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하기는 싫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잠깐 논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매주 그 날의 주제를 정해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토의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장래 희망' 이라는 주제가 나왔었습니다.
자기의 장래희망은 무엇무엇인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것을 준비하고 있다- 따위의 평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 분석하라는 주제였습ㄴ디ㅏ.
학원생 중 한 아이가. 먼저 발표를 했습니다.
그 아이의 장래 희망은 '변호사' 였습니다.
억울에 처한 사람을 구해줄 수 있다. 정의를 위한 직업 인 것 같다. 개개인의 실력이 드러나는 직업이다. 외부에 억압을 받을 수도 있지만 또한 저항할 수도 있는 직업이다...
그 아이가 알고 있는 변호사는. 그런, 환상적인, 좋은. 변호사였습니다.
마침 학원 선생님이. 법대 출신이셔서, 내가 물었었습니다.
"변호사가 사람들 앞에서 설변하는 그런 직업이 아니지 않나요?"
"그래,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서류로 처리하지."
이 한 마디에, 그 아이는 '그럼 변호사 안 할래요.' 그따위 것인 줄 몰랐다는 얼굴로....
머리를 예쁘게 하고 곱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눈썹 위에 검은 허영이 발라져 있는 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그 반에서 이과는 저 혼자였기 때문에, '의사'를 선택한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의사는. 사람들을 기계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의학을 배웁니다.
누구에게 맞춘 형태가 아닌, '정상적 인간'이라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에 벗어난 사람들을 모두 '정상적 인간' 에 맞추어버리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치료라는 것은, 기계가 고장났을때, 기계의 부품을 새 것을 바꾸고, 기름칠을 하고, 잘못된 부품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치료에 감정이 들어간다면, 어떤 감기 환자에게는 A약을 주고 다른 감기 환자에게는 B약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사람을 해부학 책에 나와있는 대로 바꿔주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그러려면 사람들을 표준화시키고, 고장난 기계처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의사입니다.
'사랑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단지 '사랑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치료 이외의 곳에서, 따스하게 대하는 의사만이.... 저는 '환자를 사랑으로 대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발표를 끝나고 저는 놀랐습니다. 모두 입을 딱 벌어진 채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해하는 저에게, 당황한 논술 선생은 "의, 의대 지망생이 하는 말 같아보이진 않죠." 라는 말로 논평을 끝내버리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이해했습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장래 희망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 않는다는걸. 못한다는 게 아니라 않는다는 걸.
기껏해야 '부정적인 면' 하면 나오는 것은 '돈을 많이 못 번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다.' '부정적인 평판이 많다.' '실수 했을때 부담이 크다.' 같은, 모두 '자기에게' 부정적인 것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제가 만약 의사가 된다면, 제가 선택한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 하고 싶었습니다.
의사가 잘못하면 환자와, 그 가족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위해 있는 직업이 의사인 이상.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자를 위한 일을 해주어야 합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치료입니다.
그러면, 냉철한 가슴으로 치료 시에는 사람을 기계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치료를 한 후에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치료가 끝난 후에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것이 선택한 직업에 대한 '책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변호사라면 의뢰인에 대한 책임을 해야겠지요.
선생님이라면 학생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겠지요.
피고용인이라면 자기를 고용한 고용주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겠지요.
고용주라면 피고용인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겠지요.
그런 책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하고, 다시 '책임' 을 지기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위의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 을 버려두고 자꾸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드는건.
제가 너무 약았기 때문일 테지요.
허울좋은 말만 잘 하고 행동은 못하는 내가
못난이기 때문일 테지요.
이런 나를 이겨보고
싶습니다....